고가 매입 후 페이퍼컴퍼니 설립 ‘비자금 조성’ 작전 벌였나
검찰이 롯데그룹 본사와 신동빈 회장 집무실, 주요 계열사 등 17곳을 압수수색한 6월 10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앞에 취재진이 몰려 검찰 수사관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롯데쇼핑은 2007~2009년까지 1조 2000억 원을 쏟아부어 해외 유통 체인을 잇달아 인수했다. 관련 인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알려진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가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검찰은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2007~2009년) 이뤄진 대형 인수합병(M&A) 과정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롯데그룹은 현지법인의 지분을 직접 사들이는 방법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M&A 전략의 ‘첨병’은 그룹 내 ‘캐시카우’인 롯데쇼핑이 맡았다. 2007년 기준 그룹이 기록한 전체 영업이익 가운데 38.5%(7567억 원)가 롯데쇼핑에서 나왔다.
롯데쇼핑은 2007년 12월 중국 현지 대형마트(할인점)인 마크로(Makro) 8개 점포를 780억 원에 인수했다. 2008년 10월에는 인도네시아 마크로 점포 19개를 3920억 원에 인수했다. 두 마크로의 대주주는 네덜란드계 유통회사인 SHV다. 다음해 10월 롯데쇼핑은 “중국 내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겠다”며 중국계 대형마트인 타임스(대형마트 57개 점, 슈퍼 11개 점)를 7350억 원에 인수했다.
그런데 당시 인수된 해외법인의 ‘적정가치’에 대해선 여러 의문이 붙는다. 롯데는 중국 마크로와 타임스의 경우 점포당 97억~108억 원의 가격을, 인도네시아 마크로는 206억 원의 가격을 쳐줬다. 그러나 2011년 롯데마트의 경쟁업체인 이마트는 중국 내 6개 점포를 매각하면서 220억 원을 회수했다. 점포당 약 37억 원의 가격을 책정한 것이다. 또 당시 이들 점포의 총 자산가치는 490억 원으로 추산됐는데 이를 액면 그대로 반영해도 점포당 가격은 82억 원에 그쳤다. 때문에 롯데가 중국의 마크로와 타임스, 인도네시아의 마크로를 고가 매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검찰은 롯데 경영진이 관련 회사들을 고가에 매입하고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 측은 “해외 M&A는 경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이제 와서 당시 결정에 대해 따지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롯데쇼핑은 2007년 12월 중국 현지 대형마트(할인점)인 마크로(Makro) 8개 점포를 780억 원에 인수했다. 2008년 10월에는 인도네시아 마크로 점포 19개를 3920억 원에 인수했다. 두 마크로의 대주주는 네덜란드계 유통회사인 SHV다. 그런데 당시 인수된 해외 법인의 ‘적정가치’에 대해선 여러 의문이 따라 붙는다. 사진은 폴란드 마크로 매장 전경. 위키피디아 캡처.
롯데 측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해외 M&A를 포괄적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마크로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해외법인을 동원한 비자금 조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1990년대 무렵 ‘7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들고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롯데 전직 고위 관계자는 “롯데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롯데월드를 지으려 했으나 현지 금융 위기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롯데는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 비호 아래 있던 살림그룹을 사업 파트너로 선택했다. 정치권 로비 여부나 투자금액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정치권 인맥에 의한 비즈니스’가 심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롯데 측은 “인도네시아 투자 건은 오래된 일로 아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내에서 롯데의 이 같은 위치는 마크로 인수에도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적정가치’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은 2008년 현지 점포 수 기준 7위 업체인 인도네시아 마크로를 인수하면서 현지 유통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7년 기준 마크로의 연매출은 4889억 원인 반면 영업적자는 26억여 원을 기록했다. 전년도(2006년) 역시 167억여 원의 영업적자를 내고 있었다. 즉 당시 기준 마크로가 점포당 206억 원을 쳐줄 정도로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는 회사인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롯데는 마크로 인수 사실을 발표하면서 롯데쇼핑이 55%, 일본롯데가 20%, ‘Lotte Shopping Holdings(Singapore)’가 20%의 지분을 각각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Lotte Shopping Holdings(Singapore)‘는 롯데쇼핑이 2008년 싱가폴에 세운 투자회사다.
당초 롯데쇼핑은 일본롯데의 인수전 참여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나 뒤늦게 지분 취득 사실을 정정공시(2008년 10월 29일)했다. 롯데쇼핑이 일본롯데의 지분을 대리 매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정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해외에서 벌어진 M&A와 관련해서는 자금 흐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1일 오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당시 국내에서 마크로 인수를 자문한 변호사는 L 씨와 Y 씨다. 이들은 마크로 고가 매입 의혹 등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또 인도네시아 마크로 인수자문 주간사는 메릴린치증권이다.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아들 김형찬 씨다. 일반적으로 인수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주간사에 떨어지는 수수료는 그만큼 많아진다. 때문에 일각에선 롯데가 인수가격을 부풀려 대통령 측근에 ‘선물’을 준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한다. 이에 대해 김 씨의 비서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마크로의 최근 5년간 연매출은 7000억~8000억 원 수준으로 롯데쇼핑 인도네시아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롯데쇼핑의 인도네시아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롯데정보통신의 현지법인 ‘PT. Lotte Data Communication Indonesia’(2010년 11월 설립)는 지난해 특수관계자와 거래를 통한 매출로 단돈 ‘1억 원’을 기재했다.
인도네시아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회사가, 아무리 특수관계자와 거래라지만 매출이 고작 1억 원밖에 안 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롯데정보통신은 이에 대해 답변을 주지 않았다.
롯데의 해외 사업은 별도 현지법인을 내세워 추진됐지만 각 법인 간 자금 흐름은 긴밀히 연동돼 있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Lotte Shopping Holdings(Singapore)와 하루 차이(2008년 10월 28일)로 설립된 롯데쇼핑 자회사 ‘Lotte Shopping Holdings(Hong Kong)’는 중국 대형마트 타임스를 사실상 ‘관리’하는 업체로 알려져 있다. 롯데쇼핑은 이들 투자사를 설립한 직후 금융감독원에 인도네시아 마크로 인수 정정공시를 냈다.
그런데 2010년 기준 Lotte Shopping Holdings(Hong Kong)는 케이먼군도에 소재지를 둔 ‘Lotte Mart China Co.,Ltd’를 소유하고 있으며 Lotte Mart China Co.,Ltd는 다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 ‘Times Supermarket Ltd’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먼군도와 버진아일랜드는 대표적인 조세회피처다. Times Supermarket Ltd는 다시 홍콩과 버진아일랜드에 13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이들 페이퍼컴퍼니와 Lotte Shopping Holdings(Hong Kong), Lotte Mart China Co.,Ltd는 2014년에만 4500억여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검찰은 이 같은 천문학적인 영업손실을 비자금 조성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대환 유통금융경제연구소장은 “기업 오너들이 법인에서 올린 수입을 조세회피처로 보낸 뒤 페이퍼컴퍼니로 세탁하는 건 상속 문제와 연관이 있을 수 있으므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롯데 측은 “일부 해외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맞지만 고가 매입 의혹이나 비자금 조성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