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밖에선 “소모적 공방 말고 부작용 줄일 방법이나 연구하라” 주문
개헌 사항인 면책특권 제한을 놓고 벌이는 공방에 대해 정치권 밖에선 ‘소모적인 싸움’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헌법 제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른바 ‘면책특권’ 규정이다. 최근 정치권 핫이슈로 떠오른 면책특권에 대해 설령 여야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넘어야 할 큰 산(개헌)이 있다는 얘기다. 국회 밖에서 정치권의 면책특권 공방을 놓고 ‘소모적인 싸움’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면책특권 논란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허위사실 폭로가 도화선이 됐다. 조 의원은 6월 30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MBC 김 아무개 본부장 실명을 거론하며 “성추행 전력의 MBC 고위 간부가 대법원 양형 위원에 위촉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폭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조 의원은 하루 만에 정정 자료를 내고 사과했다. 조 의원은 잘못을 시인하며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질의한 것을 확인한 뒤 삭제조치 했다”면서 “앞으로 사실관계를 철저히 확인하고 질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 후 면책특권과 관련된 본격적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여야 간 반응은 다소 다르다. 우선 새누리당은 면책특권 폐지 또는 적극 개정 입장을 보였다.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4일 비대위 회의에서 “무책임한 허위 폭로나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폐해에 대해 국회나 소속 정당의 징계로 책임을 지우는 것은 면책특권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면책특권도 헌법 규정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정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또한 같은 자리에서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를 일삼는 것은 없어져야 한다. 허위사실 폭로도 국회 개혁의 중요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야당은 면책특권 개정에 반대하는 기류가 우세하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4일 “면책특권은 국회가 사법권을 쥔 권력자인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능이다. 이런 권한을 약화시킨다면 야당이 사법부가 두려워 어떻게 권력을 견제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같은 날 “야당이 청와대와 정부를 견제할 면책특권을 아예 없앤다고 하면 국회가 마비되고 국회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면서 “면책특권을 보장하되 사실이 아닌 허위 폭로라면 윤리위원회에서 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함께 이뤄질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원외 정당인 녹색당 또한 야당과 비슷한 입장이다. 녹색당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강력한 대통령제다. 이러한 상황에서 면책특권이 없어지면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면책특권은 보장해야 한다. 불투명한 예산 사용 등 다른 특권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면책특권이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국회의 자주성을 높여주는 순기능 역할을 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독재정권 시절 면책특권은 야당 의원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방패였다. 노회찬 의원의 ‘떡값 검사’ 폭로는 면책특권의 대표적 예로 꼽힌다. 2005년 17대 국회 때 민주노동당 소속이던 노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 실명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노 의원은 면책특권이 인정돼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새누리당의 면책특권 개정 움직임에 야당이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국회의원들이 면책특권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 역시 적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면책특권을 앞세워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 또는 상대 당을 향해 막말을 퍼붓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면책특권의 부작용을 방지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엔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모양새다.
시민단체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폐지는 반대하지만 개정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애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개회 초마다 ‘정치 개혁’ ‘특권 내려놓기’는 논의됐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이번엔 예년처럼 공허한 논의가 되지 않길 바란다”면서 “면책특권 폐지는 개헌을 통해 이뤄져야 하고 시기가 아직 이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선미 참여연대 시민감시1팀장은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면책특권은 독립적으로 의혹이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헌법에 규정돼 있는 맥락이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러한 제도들을 악용해온 일부 사례가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여야 간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는 공방은 비생산적인 언쟁이다. 여야가 합의한다고 해도 면책특권 조항을 없앨 수 있냐”고 반문했다. 헌법에 규정돼있기 때문에 수정이나 폐지하기 위해선 개헌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 평론가는 “문제 재발 방지를 위한 장치와 면책특권이 갖고 있는 순기능을 연구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