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강화에도 성적 줄줄이 추락…경영진단 소문엔 “사실과 달라”
삼성 라이온즈가 올 시즌 극도로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출처=KBO 공식 페이스북
삼성그룹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 2011~2014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 4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우며 ‘삼성왕조’를 구축했다. 지난해에는 페넌트레이스 1위 자리는 지켜냈지만, 이후 에이스 투수들의 ‘도박 스캔들’이 터지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 내주고 말았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삼성 라이온즈는 올 시즌 최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에는 10개 구단 체제 구축 이후 최초로 리그 최하위인 10위를 기록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온라인상에서는 ‘10성’ ‘L10NS’ 등의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축구단인 수원 블루윙즈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수원 블루윙즈는 창단 이후 그룹의 대대적 지원 속에 빠른 속도로 성장해 K리그 우승 4회, FA컵 우승 3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등 기록을 세웠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2014년과 2015년에는 K리그클래식에서 2위를 기록했다. 수원 팬들 역시 수원을 ‘축구수도’라고 부를 만큼 남다른 축구사랑을 보인다.
하지만 올해는 뒷심이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서 승점을 많이 챙기지 못해 19라운드가 끝난 현재 4승 9무 6패 승점 21점으로 9위를 기록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강등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지난 10일 ‘수원더비’에서 일부 팬들이 수원 블루윙즈 프런트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수원 팬들의 분노도 극에 달했다. 실제 지난 2일 수원과 울산의 경기에서 수원이 선제골을 넣고도 후반 추가시간 내리 두 골을 허용하며 역전패 당하자, 수원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분노를 표출했다.
배구구단인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2015~16시즌 V-리그 3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과거 슈퍼리그 8연패 V-리그 9회 우승에 빛나는 ‘압도적 최강자’의 위용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듯 종목을 구분 않고 삼성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과거의 위용을 뽐내지 못하는 건 팀의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간 이유도 크다. 삼성 라이온즈가 이렇게 급격히 추락한 데는 지난해 ‘도박 스캔들’도 있었지만, 팀의 중심타선에 버티던 나바로가 일본으로 떠나고 박석민이 FA(자유계약)로 팀을 옮겼기 때문이다.
수원 블루윙즈도 지난 3년간 정대세, 스테보, 라돈치치, 정성룡, 김두현 등 에이스들을 내보냈다. 그 빈자리는 아직 경기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유망주들로 채워졌다.
비난의 화살은 제일기획으로 쏠리고 있다. 출처=제일기획 페이스북
이처럼 팀의 중심선수들이 떠나기 시작한 것은 삼성 프로스포츠 구단들의 운영주체가 삼성그룹 광고계열사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시점과 묘하게 일치한다. 글로벌 마케팅 솔루션 컴퍼니를 표방하는 제일기획은 지난 2014년 4월 수원 블루윙즈를 시작으로 남녀농구단 삼성 썬더스와 삼성생명 블루밍스, 남자배구단 삼성화재 블루팡스를 차례로 인수했다. 지난 1월에는 삼성 라이온즈 지분 64.5%마저 인수해 대주주에 올랐다.
스포츠 구단을 인수하며 제일기획은 “지난 20년간 스포츠마케팅 사업을 해온 전문회사로서, 다양한 스포츠 관련 마케팅 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제일기획은 SNS 등을 통해 스포츠팬들과의 소통과 마케팅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마케팅 강화와 반대로 구단 운영에 있어서는 대형 영입을 통한 실적 올리기가 아닌 유망주 육성을 통한 내실 다지기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제일기획은 수익과 경영에 균형을 맞춰 자생하는 길을 찾기 위한 ‘긴축 재정’에 들어갔다. 뛰어난 기량의 고액 선수를 잡거나 영입하기 어려워졌고, 이는 경기력 저하로 나타났다.
실망스런 경기력과 성적에 화가 난 팬들로서는 비난의 화살을 제일기획에 돌릴 수밖에 없다. 축구계 관계자는 “프로구단의 마케팅에서 경기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건 기본 전제다. 결국 스포츠는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것”이라며 “눈을 사로잡는 멋진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승리해야 관중들이 찾는다. 팬들이 구단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팬들이 경기력에 실망해 외면하면 마케팅을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제일기획으로서는 이러한 비난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수원 블루윙즈는 삼성전자가 대주주로 있을 때부터 예산이 줄기 시작했다. 또한 운영비를 절감하고 자생의 방법을 찾자는 방침은 수원 블루윙즈뿐만 아니라, 한국프로축구연맹 차원의 전체적인 기조”라며 “삼성 라이온즈 역시 구단 내부에서는 부진의 원인을 부상자가 많고,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이 기대만큼 좋지 않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인수한 후 예산은 축소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외부 팬들의 비판과는 별개로 내부에서는 삼성 프로스포츠 구단이 이달 초부터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을 받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해졌다. 올 초 진행된 프랑스 광고사 퍼블리시스로의 제일기획 매각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여파라는 것.
그러나 제일기획 측에서는 프로 구단들의 경영진단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매각협상 결렬 이후 제일기획이 경영진단 및 외부 컨설팅에 들어간 건 맞다. 글로벌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며 “스포츠사업부는 대상이 아니다. 스포츠사업부는 그룹 차원의 일상적 점검만 있었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제일기획 스포츠사업부는 현재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이 이끌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 사장이 현재 ‘장인’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맡고 있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직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제일기획 스포츠사업부가 성적이나 경영지표에서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면, 김 사장의 스포츠사업 업무능력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돼 IOC 위원 도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제일기획 관계자는 “야구·축구·배구·농구 등 프로구단은 대표이사가 각각 따로 있다. 김 사장은 프로구단에 대해서는 운영을 일임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이나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등 국제스포츠에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웅기 비즈한국 기자 minwg08@biz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