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여행 위해 무엇까지 해봤니
이 아무개 씨(38)는 결혼하고 아내에게 말 못할 비밀이 생겼다. 이 씨는 총각 시절부터 ‘마일런’을 즐겼다. 결혼을 한 뒤에도 주말마다 비행기 탑승을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이를 아내에게 아직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씨는 “해외 출장이 있을 때도 무조건 한 항공사만 이용해 마일리지 적립을 한다”며 “10만 마일리지 적립을 눈앞에 두고 있어 며칠 전에도 미국에 1박3일로 다녀왔다”고 말했다.
‘마일런’은 항공사 마일리지 적립을 위해 항공기를 이용하는 이색적인 활동을 말한다. 마일런을 즐기는 사람들은 주로 비행기를 자주 타거나 여행을 즐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항공권을 구매하면 각 항공사별로 마일리지가 적립된다.
국내 항공사 가운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적립 마일리지는 비행거리를 기준으로 한다. 국내 항공사 기준 김포에서 제주를 갈 때 276마일리지가 적립된다. 인천에서 오사카까지 비행을 할 경우에는 525마일리지, 인천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는 5973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식이다. 적립된 마일리지는 10년간 유효해 이를 다시 항공권을 구매하는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저가항공의 경우에는 비행거리가 아닌 항공권 금액 비율에 따라 마일리지가 적립되기 때문에 마일런으로 이득을 보기 힘들다.
마일리지를 적립해 다시 항공권을 구매하는 것만으로는 그다지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일런의 이득은 마일리지를 많이 적립해 소위 말하는 VIP의 경지에 오르는 것에 있다. 마일리지를 많이 적립할수록 주어지는 혜택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항공사별 기준은 다르지만 일정 마일리지를 적립하거나 여러번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게 된다. 무료로 수하물을 추가할 수 있고, 상위 클래스로의 무료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이뿐만 아니라 탑승 마일리지를 두 배로 적립할 수 있고 각종 수수료를 면제받는 혜택 등이 주어진다.
한 항공사 관련 마일리지 적립 내역
이 때문에 우수회원 혜택을 알게 된 사람들은 목표하는 마일리지를 적립해 해당되는 회원 등급을 유지하려고 한다. 회원 등급에 해당하는 마일리지를 적립하기 위해 마일런을 강행한다. 이때 ‘달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마일리지는 사용하기에 따라 1마일을 10원의 가치로 사용할 수도 100원의 가치로 사용할 수도 있다. 마일리지를 활용해 평소 가고 싶었으나 티켓 값이 비싸 돈 주고 가기에는 힘든 여행지를 갈 수도 있다. 돈 주고 사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를 적은 돈을 들여 이용하는 등 호화로운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일런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SNS를 통해 얼마나 마일리지를 많이 적립하고 요긴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 노하우와 후기를 공유하기도 한다. 마일런 이용자들은 서로 저가 항공권이 나오면 알려주고 호텔 숙박과 외국 항공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A 씨는 미국 입국심사 당시 공항 직원이 ‘입국 목적이 무엇인지’를 캐묻는 상황에서 마일리지 적립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그동한 적립한 마일리지를 보여줬더니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무사히 입국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B 씨 역시 판매 마감이 임박한 특가상품을 저가에 구입했다. 통상적으로라면 5000여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상황이었지만 높은 회원등급인 A 씨의 경우 2만여 마일리지를 적립할 수 있었다. 저가항공권을 구매했음에도 이코노미석을 이용하지 않았다.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야 하는 항공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일리지를 이용해 비즈니스석으로 등급을 올려 이용할 수 있었던 것.
마일런을 즐기는 이들은 여행을 목적으로 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 짐 없이 편한 옷차림으로 공항에 간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즐기고 라운지에서 샤워를 하고 출국 심사도 하지 않고 바로 돌아오는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해외에 가도 기억에 남는 장면은 공항과 호텔, 편의점 정도다. 이들은 또 되도록이면 숙박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와서 시차 적응해야 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마일런이 성행한 지 오래다. 항공사들은 마일런에 대응하는 방침을 연달아 내놓고 있었다. 델타항공은 지난해 탑승 항공 거리가 아닌 탑승권 가격에 마일리지 적립을 비례하게 적립하는 방침을 내놨다. 유나이티드항공 역시 올해 같은 입장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두 도시 간 직항거리 기준에서 항공권 금액으로 마일리지 적립이 변경된 미주지역 항공사들과 달리 유럽, 아시아권 항공사의 경우에는 그대로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항공권 가격에 따라 마일리지 적립률에 차등을 두고 있어 할인율이 높은 항공권의 경우 적립되는 정도가 작다”며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항공거리에 비례해 마일리지를 적립하는 방침을 변경하려는 계획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스마트컨슈머들은 면세점 할인 및 상품권 사용과 라운지 이용 등의 여행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연회비가 있는 신용카드를 공통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연회비가 있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경우 사용하는 금액에 따라 마일리지가 적립되기도 했고 납부했던 연회비를 면세점 이용권으로 돌려받기도 했다. 카드사에서 항공사와 제휴해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또 면세점에서 구매한 금액이 크면 일정 금액이 할인되기도 한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