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친 술로 인해 입을 수 있는 최대의 피해는 간의 손상이다. 사진은 초음파를 이용한 간 검사 장면. | ||
그래서 연말이 지나면 과음으로 건강을 해쳐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다. 물론 적당한 음주는 인체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킨다. 식욕을 증진시키고 위액의 분비를 늘려 소화에 도움을 주고, 중추신경에도 작용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문제는 과음이다. 한의학 고전 <황제내경>에서도 ‘요즘 사람들은 술을 물 마시듯이 마시기 때문에 제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한다’고 했다니 예나 지금이나 과음으로 몸을 망치는 일은 흔했던 모양이다.
비싼 술이니까 괜찮겠지, 약주니까 괜찮겠지 생각해서도 안된다. 아무리 좋은 술도 술은 술이다. 중요한 것은 몸이 괴로울만큼 마셔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취하는 경우라도 그 뒤처리, 혹은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간 나빠지면 이런 증상이 ----------------------------------------------------------
술을 자주, 많이 마시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증상을 느낀다면 간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닌지 봐야 한다.
·잦은 피로감, 지속되는 무력감
·소화 불량, 구역질
·눈의 흰자위나 피부변색 (황달)
·소변의 색이 짙어지고 노란 거품
·오른쪽 갈비뼈 밑이 거북하거나 단단하게 느껴진다.
·체중증가, 배가 나오기 시작한다.
·정강이 앞부분을 누르면 자국이 오래 남는다.
·가슴 부위 작고 붉은 반점
·손바닥 일부가 유난히 붉다.
·남성의 가슴이 여성처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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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간에 무리를 주지 않고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알코올의 최대 허용량은 80g 정도. 체중이 65∼70㎏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맥주 2000cc, 소주 320cc(약 6~7잔), 양주 200cc에 들어있는 양이다(알코올 양은 술의 양×알코올 농도).
그러나 동맥경화나 심장병 예방 등 건강에 전혀 해가 되지 않게 마시려면 이보다 더욱 적은 하루 30∼50g 이내가 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민건강지침에 정해놓은 권장 음주량도 이와 비슷한 양인 막걸리 360cc, 소주 100cc, 맥주 600㏄, 포도주 240㏄, 양주 60㏄ 정도다. 이 양을 넘으면 ‘과음’이다.
특히 한 번에 마시는 양이 많지 않더라도 일주일간 섭취한 순수 알코올 양이 168g(여성은 112g)을 넘는 경우를 의학적으로는 과음으로 본다.
물론 알코올의 분해능력에도 개인차가 있는 만큼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는 적은 양의 음주로도 해가 될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이 있는 경우 하루 소주 1잔 또는 맥주 1,000㏄ 양이라도 며칠만 계속해 마시면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
여성의 적정 음주량은 남성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데, 알코올 분해효소가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다. 여성은 체구도 상대적으로 작고 지방질이 많은 탓에 술에 더 민감하다.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여성들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남성보다 20% 이상 높아져 더 쉽게 취한다.
지나친 술은 무엇보다 알코올 해독을 맡고 있는 간을 손상킨다. 우리 나라의 음주문화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알코올성 간 질환은 계속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 국내 간 질환의 85%를 차지했던 B형 C형 간염 등의 바이러스성 간 질환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예방접종을 하고 위생관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알코올성 간 질환은 꾸준히 증가해 전체 간 질환의 20%를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김병익 교수는 설명한다.
알코올에 의한 간 손상은 섭취한 알코올의 양이 많을수록, 섭취하는 기간이 길수록 심해진다. 김 교수는 “하루 40∼80g 이상의 알코올을 매일 10년 이상 마실 때 알코올성 간 질환이 올 수 있다. 알코올성 간경화가 생길 확률은 하루 순수 알코올량 20g(소주 1.7잔) 이하 음주를 기준으로 40∼60g을 마시면 6배, 60∼80g을 마시면 평균 14배까지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속이 불편하고 머리가 아픈 등의 증상은 흔히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증상 가운데 무심코 넘어가서는 안되는 적신호가 숨어있다.
▲피로 무력감: 유난히 피로와 무력감이 심하고 식욕감퇴, 구역질, 소화불량, 상복부 불편감, 가려움증 등이 겹쳐 나타나면 알코올성 지방간을 의심해볼 수 있다.
▲여성형 유방: 알코올성 간 질환이 심하면 배에 복수가 차거나 비장이 커지고, 가슴이나 목에 거미상 혈관종이라는 빨간 반점이 조그맣게 나타나기도 한다. 식사를 잘못해 영양상태가 나쁘고, 남성인데도 유방이 부풀어오르는 여성형 유방이 되는 것도 볼 수 있다.
▲설사 복통: 술을 마신 다음날이면 묽은 변을 보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이 안주로 먹은 고기 등에서 나온 지방의 장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배가 아프면서 두통 몸살 기운과 함께 열을 동반한 설사가 계속되거나 대변에 혈액이 섞여 나온다면 안주로 먹은 생선회나 육류 등에 의한 세균감염성 장염일 가능성도 있다.
▲심한 두통과 구토: 두통, 특히 심한 두통과 함께 구역질과 구토가 계속된다면 뇌혈관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보통 혈중 알코올 농도가 75㎎/㎗ 이상이면 심장과 뇌혈관이 수축되는데, 이때 뇌기능 저하나 뇌졸중 등 뇌혈관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심한 술냄새, 구취: 과음을 하면 코티졸 카테콜라민 같은 호르몬의 분비에 영향을 미쳐 어느 정도 술냄새나 구취는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유난히 냄새가 심하다면 치주염이나 설염 등 치과적인 원인 외에 알코올성 간질환, 고지혈증, 비만, 당뇨병 등의 가능성도 있다.
▲심한 복통, 흉통: 등 쪽으로 깊이 퍼지는 심한 복통과 황달이 나타나면 췌장염 췌도폐쇄 췌장낭종 등이 의심되고, 심한 가슴통증이 있으면 역류성 식도염이나 식도파열 허혈성 심장병 부정맥 폐질환 등을 의심해야 한다.
▲기억 단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인 중엔 술에 취한 후 일어나는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소위 ‘필름이 끊어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알코올의 독소로 인해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 메커니즘에 이상이 생겨 일어나는 현상이다. 필름이 끊기는 것만으로 알코올 중독이라거나 병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알코올성 치매 등이 초래될 수도 있다. 비타민 B의 일종인 시아민이 부족해 술을 마시지 않아도 필름이 끊기는 ‘베르니케 코르사코프 뇌증’을 의심해볼 수도 있다.
술에 취했을 때 후유증을 막기 위해서는 되도록 빨리 알코올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이 가장 확실한 제거법이다. 과음으로 인해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며 갈증이 날 때는 칡차나 칡즙이 좋고 쑥차도 권할 만하다. 인진쑥은 손상된 간세포를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어 한방에서 황달이나 간염 등 간질환 치료에도 이용된다.
인삼차나 생강차 유자차 녹차 등도 좋다. 녹차는 카페인의 중추신경 흥분작용과 비타민C의 상승효과로 간의 알코올 분해효소의 활성을 높여준다.
탈수현상이 일어날 때 물만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 박성욱 교수는 “갈증 때문에 물만 자꾸 마시면 구토가 날 수 있으므로 묽은 죽을 조금 짭짤하게 간해서 먹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귤이나 사과 감 등의 과일이나 과일주스에 들어있는 과당은 알코올의 체내 분해속도를 촉진한다. 당분과 수분을 함께 섭취할 수 있는 꿀물도 숙취 예방에 좋다. 술 마신 후 잠자리에 들기 전 타서 마시면 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북삼성병원 소화기내과 김병익 교수, 경희대 강남경희한방병원 순환기센터 박성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