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염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지만 자기도 모르게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진은 간염 감염을 조사하기 위해 혈액을 채취하는 장면. 사진제공=삼성서울병원 | ||
이처럼 중요한 간을 위협하는 요소로는 바이러스 감염을 무시할 수 없다. 국내에서는 특히 B형과 C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장 많은 것은 B형 바이러스로 보건복지부는 전 인구의 약 8%인 3백만명 정도가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의한 환자거나 보유자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0.2%, 일본 2.0%에 비해 크게 높은 비율이다. 20대의 B형 간염 환자와 바이러스 보유자만 해도 60만명이나 된다.
가끔 만성 간염이라는 사실 때문에 취업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B형 간염은 악수나 포옹 같은 일상적인 신체접촉이나 음식을 같이 먹는 것만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수혈 등 혈액을 통해서만 전염되며, 드물게 면도기 칫솔을 같이 쓰거나 성생활을 통해 전염되는 일이 있다. B형 간염은 예방접종이 가능하며 간염 환자라도 당뇨병, 고혈압처럼 초기부터 관리를 하면 중증 질환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자영업자인 K씨(47세)는 황달 증상이 있으면서 복수가 차기 시작해 병원을 찾았다 간경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0년 전부터 있었던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자신이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별 불편이 없다 보니 정기적인 검사를 게을리했던 탓이다.
이처럼 바이러스성 간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행돼 간경변, 간암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된 경우는 의외로 많다. 10명의 만성 간질환 환자 중 6~7명은 B형 간염이 원인이고, 1.5~2명은 C형 간염, 나머지 1~2명이 알코올이나 비만성, 자가면역성 간염에서 비롯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간염 바이러스는 A형 B형 C형 D형 E형 G형 등이다. 이 중 만성 간염을 가져오는 것은 B C D G형인데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B형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C형이 흔하다. A형도 적지는 않지만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으로 진행되지 않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는 “가장 흔한 B형 간염은 전국민의 5~8%가 보균자로 알려져 있다. C형 간염은 전국민의 약 1% 정도인데, 나이가 들수록 감염 위험이 커져 70대가 되면 약 5~6%에 이른다”고 한다.
만성 간염을 의심할 만한 증상으로는 피로감, 오른쪽 윗배의 거북한 느낌, 식욕부진, 관절통 등이 있다. 그러나 전혀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심한 간염이나 간경화로 인해 황달, 복수 혹은 혼수상태 등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B형 감염 만성 B형 간염을 오래 앓으면 간경변으로 진행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모두 간경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만성 간염이 좋아지지 않고 염증이 장기간 지속되면 간경변증으로 진행한다.
B형 간염이 무서운 것은 만성화된 지 10년이 지나면 전체의 약 11%, 20년이 지나면 35% 정도가 간암에 걸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간암에 걸릴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약 1백배 정도 높다.
예전에는 B형 간염 바이러스를 가진 산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70~90% 정도가 수직 감염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만성 B형 간염으로 발전하고, 만성 보유자가 된 신생아의 25% 이상은 40~50대에 다시 간경변, 간암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생아 때부터 B형 간염 예방접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면서 수직 감염에 의한 간염발생률도 낮아졌다. 만약 가족 중에 B형 간염환자가 있다면 나머지 가족들은 반드시 예방접종을 하도록 한다.
B형 간염은 혈액이나 정액, 침, 월경혈, 젖 등 보균자의 분비물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 성 관계시 침이나 정액, 질 분비물 등이 감염의 경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B형 간염을 성병으로 분류할 정도다. 만약 결혼을 앞둔 사람이 B형 간염 보균자라면 상대자는 결혼 전에 B형 간염 예방접종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C형 감염 예방접종의 확산으로 뚜렷이 줄어들고 있는 B형 간염과 달리 C형 간염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C형 바이러스 보균자인 산모에게서 신생아에게로 수직 감염되는 경우는 적고, 주로 환자의 혈액을 통해서 전염된다. 수혈 후 발생한 간염의 약 90%가 C형 간염과 관련이 있으며, 혈액에 노출될 위험이 높은 인공투석 환자나 혈우병 환자에게서 발생률이 높은 편이다.
C형 간염은 일단 감염되면 만성화되는 비율이 50~70%로, B형 간염보다 더 높아 문제가 된다. 만성 간염에서 간경변으로는 진행되는 확률도 25%로 높다. 감염 시기를 알면 간염 발병시기를 알 수 있지만 대부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접적인 혈액 접촉이나 타인과의 긴밀한 접촉에 의해 감염되므로 발병시기는 대부분 알기 어렵다.
B형 간염은 예방백신이 개발되어 있지만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아직 나와있지 않다.
B형과 C형의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는 정기검진을 꾸준히 받아 간의 상태 변화를 체크하고, 만성 간염이 된 경우에는 간경변, 간암 등으로 나빠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근본적으로는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는 치료가 없고 대신 몸의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B형 간염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고 궁극적으로 제거하도록 도와주는 치료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필요하다. 주사제인 인터페론이나 라미뷰딘, 아데포비어 같은 경구용 항바이러스제를 함께 쓴다.
C형 간염바이러스 치료에는 인터페론만을 쓰거나 인터페론을 리바비린과 함께 6개월 또는 1년 정도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1주일에 3회 정도 주사하는 기존의 인터페론보다 효과가 더 우수하고 1주일에 1회만 놓으면 되는 인터페론도 등장했다.
만성 간염 환자가 음주를 하면 간경화로 빨리 진행된다. 부득이한 경우라도 맥주 680cc, 포도주 280cc, 양주 80cc 이상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흡연 또한 간경화로의 진행을 촉진하고 간암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건강한 사람의 흡연보다 간염 환자의 흡연은 훨씬 더 안좋다. 간접 흡연도 마찬가지이므로 가족도 절대 금연해야 한다.
적절한 부부관계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간에 부담이 되지 않으므로 부부관계에 대해서 너무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 게 좋다.
만성 B형 간염 환자는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광협 교수는 “주변에서 간에 좋다는 소리를 듣고 특정한 식품이나 건강보조식품을 함부로 먹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것을 잘못 먹으면 오히려 간에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간단한 감기약도 해로울 수 있다. 따라서 약을 쓸 때는 병원을 찾아 간염 환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최소한의 처방을 받아 복용해야 안전하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고광철 교수, 신촌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