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유승민의 대권행 막으려 당권 도전 권유?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물밑 협상과 거래 시도는 실로 엄청났다. 7월 29일 당대표 주자군이 확정된 마당이니 봉인이 풀린 것으로 보고, 정가에서 무게감 있게 거론되는 ‘썰’을 질의응답으로 풀어본다.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7월 27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열린 친박(친 박근혜)계 의원 만찬회동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A.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난 7월 14일 자신의 지지자 1500여 명을 서울로 모아 대규모 세과시를 한 김 전 대표는 6월경 책사를 보내 유 의원에게 당대표 출마에 대한 견해를 청취했다고 한다. 책사로는 측근인 A 의원뿐 아니라 B, C 의원까지 차례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당대표 출마를 삼고초려했다는 얘기가 된다.
출마 권유 논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라고 전해진다. 총선에서 크게 패배했고 당의 쇄신과 혁신을 바라는 당원과 대의원들이 많다. 실체 공천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던 유 의원이 직접 나서서 당을 위기에서 구출해 달라. 하지만 유 의원은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정가에서는 “김 전 대표에게는 대권 가도에서 호랑이 새끼와 같은 유 의원의 대권행을 어떻게든 막을 필요가 있었고, 김무성 대선 후보-유승민 당대표 조합을 꿈꾼 것으로 보인다”면서 “유 의원이 김 전 대표 측의 수(手)가 뻔한데 거기에 넘어갈 리 있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현재 새누리당 당헌당규상 당대표는 대선 후보가 될 수 없는 것을 김 전 대표가 저차원적으로 활용했다는 얘기다.
Q. 출마선언 당시 총선 참패 친박 책임론을 거론했던 이주영 의원은 왜 입장을 바꿨나.
A. 이주영 의원은 박근혜 정부 들어 새롭게 친박계로 편입한 신박 내지는 범친박으로 분류된다. 세월호 참사라는 큰 사건을 겪기도 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지난해 원내대표 경선 당시엔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을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손잡고 친박 지원을 받았다.
그런 그가 7월 3일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총선 과정에서 계파 이익을 챙기면서 총선 패배 원인을 제공했던 분들이나, 앞으로 당의 통합을 이루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인사들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당 운영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을 밀려고 했던 친박계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됐다.
그 뒤 사달이 났다고 한다. 우선 각종 선거와 경선에서 잔뼈가 굵은 서청원 의원 측 실무진이 이 의원 캠프로 가기로 됐다가 없던 일이 됐다. ‘이주영을 세우면 되겠다’는 친박계 기류가 ‘서청원 형님을 앞세우자’는 쪽으로 돌변한 것이다. 친박계의 지원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 의원은 이후 특정 계파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쪽으로 말을 돌렸다.
서 의원 쪽 일부나 친박계 보좌진이 이주영 캠프로 일부 옮겨가게 된 것도 이렇듯 이 의원의 투항이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한 의원은 “2007년 경선 때도 그랬고 이 의원은 이쪽저쪽 잘 왔다 갔다 하는 캐릭터여서 우리 쪽에서 크게 신뢰하고 있진 않다”고 귀띔했다.
Q.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왜 연기만 피우다 불출마로 결정을 내렸을까.
A. 결국 서청원 의원의 백업을 기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에 불출마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가장 많다. 지난 7월 27일 서 의원은 자신에게 당대표 경선 출마를 읍소한 친박계 의원 40여 명을 불러 국회 앞에서 대규모 만찬 회동을 가졌다. 그로부터 약 6시간 전쯤 홍 의원이 전대 불출마를 선언했다. 친박계 속사정에 밝은 인사들에 따르면 홍 의원은 자신이 당선되려면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조직력이 가장 큰 서 의원의 ‘재가’를 얻어야 했다.
하지만 서 의원은 홍 의원을 탐탁지 않아 했다는 얘기다. 이는 2012년 7·14전당대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 의원은 비박계 김무성 후보와 크게 붙었고 2강 구도를 형성했다. 하지만 친박계 홍 의원도 출마하면서 친박계 표가 갈렸다. 게다가 정작 홍 의원은 전체 5위로, 여성몫 최고위원은 꼭 있어야 한다는 제도 탓에 턱걸이당선도 되지 못했다. 당시 전대 개표 이후 서청원 캠프에서 표계산에 나섰고, 홍 의원 지역구인 의정부에서조차 서 의원 표보다 김 전 대표의 표가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서 의원과 홍 의원은 이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것이 친박계 내 중론이다.
Q.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왜 불출마 했나.
A. 언론에는 그렇게 보도됐지만 정작 김 전 지사는 당대표 출마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 김 전 지사가 이번 전대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측근들의 바람이었고 그들이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김 전 지사는 자신의 당대표 출마설이 보도된 며칠 전 몇몇 인사들과 만나 “김용태 의원이나 정병국 의원들이 잘해내지 않겠는가.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태 의원은 특히 김 전 지사와 같은 민중당 출신으로 1992년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김문수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 2012년 대선 경선 당시엔 새누리당에서 거의 유일하게 김 전 지사를 지원한 의원이다. 그런 김 의원의 등에 김 전 지사가 칼을 꽂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또 김 전 지사 출마설이 나오자 ‘비박계 혁신세력’의 지원을 기대했던 정병국 의원이 뒷목을 잡았다는 말도 무성하다. 일각에선 김무성 전 대표가 김 전 지사의 당대표 출마를 권유했다는 말이 있었지만 김 전 대표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이례적으로 입장 표명까지 했다.
Q. 주호영 의원의 출마도 김무성 작품인가.
A. 김 전 대표의 측근인 A 의원이 사석에서 주 의원과 친한 것으로 알려진 한 의원에게 “주호영 의원이 이번에 당대표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 한번 타진해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가에선 “A 의원 본인의 생각이라기보단 김 전 대표의 의중이 실린 것 아니었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 그로부터 며칠 뒤 주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김 전 대표가 주 의원을 밀 것이란 소문이 흘러나왔다. 주 의원으로선 새누리당 충성도가 높은 당원과 대의원이 많은 TK에서 당대표 후보군이 없다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만약 김 전 대표가 도와주고 자신이 당대표가 돼 김 전 대표의 대권행을 도와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수도 있다. 주 의원이 비박계 단일화에 뜨뜻미지근한 이유도 김 전 대표를 믿는 덕이 아니겠냐는 말들도 많다.
이정필 언론인
전대 최대변수는? 당 대표, 여론조사에 물어봐~ 새누리당 8·9전당대회 최대 변수로 여론조사가 꼽히고 있다. 즉, 국민에게 얼마나 알려져 있는가하는 대중성이 당대표 당락을 좌우할 것이란 얘기다. 당의 각종 경선에 참여했던 실무진 말을 종합하면 당원과 대의원들의 투표율이 낮을 수밖에 없는 전당대회여서 여론조사가 좌우할 것이라는 답으로 모아진다. 왜 그럴까. 비박계 김무성과 친박계 서청원 후보가 맞붙었던 2014년 7·14전당대회에서 투표율은 약 31% 정도였다. 투표율만 그렇지 당시 유권자 20만 명 중 약 6만 명 정도가 온 셈이다. 이번엔 선거인단이 34만 명으로 불었지만 투표율은 훨씬 낮을 것으로 예상이 나온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총선을 앞두고 각 총선 후보가 마구잡이로 당원협의회에 들여놓은 당원들이어서 충성도가 약하다 △당원과 대의원들을 투표소로 데려가기 위해선 자금을 들여 동원을 해야 하는데 당대표 후보군 중 자금력이 풍부한 이가 없다 △충성도 높은 당원과 대의원은 이번 전당대회보다는 내년 대선 후보군에 더 관심이 많다. 한 인사는 “나경원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김 전 지사 측이 출마설을 흘린 것도 본인들의 대중성이나 인지도가 가장 앞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특히 나 의원의 경우 나섰더라면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친박계 서청원 의원의 출마를 가정한 대항마 조건을 애초부터 내밀었기 때문에 제 발목을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새누리당의 당대표 경선 룰은 당원과 대의원 70%와 국민여론조사 30%를 반영한다. 선거인단 34만 명 중 투표율이 20%라면 6만 8000명이 투표를 하게 되고, 이를 7 대 3으로 나누면 여론조사는 2만 400표가 된다. 여론조사 표본을 3000명으로 했을 경우 1표가 사실상 6.8표가 되는 셈이다. 당원과 대의원 6명을 내 편으로 만들어도 국민 1명이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면 필패가 된다. 그래서 방송인 출신인 한선교 의원 측에서는 “인지도 측면에서는 앞설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는 승패를 많이 갈랐다.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후보보다 당원과 대의원들로부터 많은 표를 받았다. 당선이 확실시됐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에게 밀려 석패하고 만다. 가까운 예로 지난 전당대회에서 과거 대선 후보였던 이인제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김무성 전 대표 다음으로 2위를 해 전체 4위가 됐다. 여론조사가 없었다면 이인제 최고위원은 없었을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최근 당대표 후보들의 ‘언론 프렌들리’ 전략도 여론조사가 최대 변수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7월 24일 새누리당 세 후보가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서로 더 많은 정치부 기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어떤 후보 측은 새누리당 당사에는 보좌진을 투입해 식사를 하러 나가는 기자들을 포섭했고, 국회 본청 앞에는 버스까지 대절해 실어 날랐다. 당원 한 명 만나는 것보다 언론사 인터뷰 기사 하나 실리는 것이 낫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뷰에 응하는 후보도 있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