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이 관리해준 사람이 저런 비리를…” “진 검사장이 끝이 아닐 것” 깊은 한숨
하지만 검찰 간부 출신의 한 인사는 “고검장들이 이끄는 개혁추진단은 예전에도 문제가 있을 때마다 계속 만들어왔던 것 아니냐”며 “개혁추진단을 만들어서 검찰이 개혁될 것 같았으면 벌써 됐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겠느냐”고 일갈했다. 검찰이 현재 처한 위기는 늘상 해오던 구태의연한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7월 14일 진경준 검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진 검사장은 검찰 내 사법연수원 21기 동기들 중 선두주자로 통한다. 그래서 임관 이후 줄곧 조직이 그의 경력을 관리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는데도 법원으로 가지 않고 검사가 됐으니 검찰 입장에선 그를 관리해줄 필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결과 진 검사장은 서울중앙지검에 첫 부임한 후 법무부 검찰국을 비롯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해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올해 3월 재산변동 내역이 공개되기 전까지 그의 삶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 사이 넥슨 주식을 공짜로 매입해 재산을 불리고, 김정주 NXC 대표 돈으로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고급 승용차까지 뇌물로 받았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검찰의 한 인사는 “너무 부끄러워서 할 말을 잃을 정도”라며 “검사장이 되기 전에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렸으면 검사장 승진을 포기하고 옷을 벗었어야지 어떻게 돈과 권력을 한꺼번에 거머쥐려고 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진 검사장 사태는 모든 조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검찰 신뢰를 바닥에 떨어지게 했다”며 “심지어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는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 안팎에선 진 검사장이 끝이 아닐 것이란 불길한 전망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조직이 관리를 잘해준 사람이 저런 비리를 저질렀다는 건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라며 “진 검사장을 끝으로 이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에는 문제가 있는 인사를 걸러내는 게 필요한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도 “조직 문화를 어떻게 바꾸고 혁신하느냐는 것은 문제가 있는 인사들을 걸러낸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 될 것”이라며 “의외로 밖에서 보면 검찰 내에서 잘나가거나 못나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부패한 검사가 제법 있다. 그런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검사들은 남의 말을 심각하게 안 듣는다”면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다보니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나는 잘났으니 잘못을 해도 안 걸린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7월 28일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검찰 내부에서는 진 검사장 사태가 합헌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진 검사장의 경우 실제로 그랬다. 그는 지난 3월 25일 공개된 재산변동 내역에서 지난해보다 40억 원이 증가해 156억 5609억 원을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3일 뒤 언론에서 넥슨 주식 매입 의혹이 제기됐고, 이에 대한 진 검사장의 첫 해명은 “내 돈으로 주식을 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의혹이 잦아들지 않자 공직자윤리위가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그러자 진 검사장은 진상조사 과정에서 “장모한테 돈을 빌려서 주식을 산 후 갚았다”고 말을 바꿨다.
공직자윤리위는 진 검사장의 거짓 해명을 문제 삼아 법무부에 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진 검사장의 주식 취득 과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진상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던 법무부도, 검찰도 “진 검사장이 본인 돈으로 샀다고 했다가 장모한테도 돈을 빌려서 샀다고 해명했으니 된 것 아니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시민단체가 고발한 진 검사장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진 검사장과 그의 주변인 계좌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4억 2500만 원의 이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넥슨 창업자 김 대표가 진 검사장의 장모와 친모에게 2억 원가량을 주고 그 돈이 다시 진 검사장에게 들어온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부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넥슨이 먼저 백기를 들고 나왔다. 넥슨은 공식 입장을 내고 “진 검사장에게 넥슨 주식 대금 4억 2500만 원을 빌려줬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진 검사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이 사실에 가장 당황한 건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였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이금로 인천지검장을 특임검사로 지명했고, 주식 매입 자금이 김 대표의 돈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묵묵부답했던 진 검사장은 특임검사팀이 구성되자 곧바로 자수서를 제출, 혐의 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아마 특임검사를 지명하지 않았다면 진 검사장은 끝까지 버티기 전략으로 갔을 것”이라며 “특임검사까지 지명된 후에는 이제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보이고, 계좌추적이나 결정적 진술 등을 내밀지 않는 한 검사치고 처음부터 혐의사실을 인정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