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생식·대사의 열쇠 넘쳐도 모자라도 탈
▲ 80여 가지에 이르는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돼야 우리 몸의 성장이나 대사가 원활하게 이뤄진다. 위는 각종 호르몬 제제. | ||
보통 뇌하수체 종양이 있을 때는 두통이나 시력약화 같은 증상이 흔해 안과를 찾아다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의대에서 생화학을 연구하는 우리양의 아버지는 2차 성징이 나타날 시기도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을 받았고, 정밀검사 결과 종양이 뇌하수체를 자극해 성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가슴에 2차 성징이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뇌하수체가 없는 만큼 평생 인위적인 방법으로 뇌하수체에서 관장하는 여러 가지 호르몬을 채워주어야 한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연세대 원주 의대 생화학과 김현원 교수의 실제 이야기로, 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단적으로 알려준다.
그리스어로 ‘자극한다, 일깨운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용어가 호르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몸 안에서는 수십 가지 호르몬이 분비되고 있고, 혈액에 의해 몸 곳곳에 운반되는 덕분에 정상적인 성장이나 생식, 에너지 대사 등의 많은 생리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필요한 양은 미량이지만 모두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분비량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많을 때는 여러 가지 질병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 분당차병원 내분비내과 김수경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80여 가지. 주로 뇌를 비롯해 부신, 소화관, 성기 등 내분비기관으로 불리는 7개의 장기와 혈관, 세포에서 분비된다. 특히 호르몬의 50% 이상을 분비하도록 관장하는 곳이 뇌에 있는 뇌하수체다.
성장호르몬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충분히 분비될 때 아이들의 키가 잘 자란다. 뼈ㆍ연골 등의 성장과 단백질 합성, 지방분해를 촉진해 발육을 돕기 때문이다.
성인의 경우에는 노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노화방지클리닉에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많이 처방한다. 만성피로를 해소하고 혈중 혈당·콜레스테롤 수치를 내리며, 복부비만 해소, 운동기능 향상 효과도 있다고 한다.
가격은 다른 호르몬제보다 비싼 편이다. 부작용으로는 관절통이나 손이 뻣뻣해지는 등의 말초 부종 등의 염려가 있지만 용량을 줄이면 쉽게 사라진다. 암과는 별 관련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실제 데이터는 없지만 암 발생과 관련이 있을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성장호르몬은 주로 밤10~새벽2시 사이에 많이 분비된다.
성호르몬 사춘기가 되면서 남성을 남성답게,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왕성한 성욕을 보이는 것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때문이다. 여성도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성욕이 고조되지만 남성이 비해 분비량이 적다. 또 비듬이 생기는 데도 영향을 준다. 테스토스테론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사춘기에는 비듬도 잘 생긴다.
하지만 30대를 지나면서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어 40~50대에는 갱년기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을지병원 가정의학과 손중천 교수는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중년 남성의 경우 남성호르몬제를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가격은 성장호르몬보다 저렴하고, 최근에는 먹거나 바르는 남성호르몬제까지 나와 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난소에서 매일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만들어진다. 만약 생리가 불규칙하고 생리통이 심한 경우, 피부 트러블이 자주 생기고 이유 없이 체중이 늘어난다면 체내 여성호르몬의 수치를 체크해보는 게 좋다.
폐경이 되면서 여성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줄면 여러 가지 갱년기 증상에 시달린다. 뼈가 약해지면서 골다공증의 위험이 커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이때는 여성호르몬제 복용을 고려할 수 있는데, 반드시 의사와 상의한다. 2002년 미국에서 시행한 대규모 임상연구에서 여성호르몬이 유방암, 심혈관 질환을 발생시킨다는 보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손중천 교수는 “여성호르몬의 경우 사용한 지 30년이 다 되어 유방암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었다. 다른 호르몬제도 적어도 20~30년 정도 지나 안전성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분별한 사용보다는 치료를 위해 필요할 때만 의사와 상의해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멜라토닌 낮과 밤을 구분하는 생체시계의 역할을 담당하고 숙면을 취하도록 하는 호르몬으로 역시 밤에 많이 분비된다. 항산화 작용, 면역력 증강 작용도 보고되어 있다. 성장호르몬도 멜라토닌이 충분히 분비될 때 더 많이 분비된다.
가벼운 수면장애나 해외여행 시의 시차 적응으로 피로할 때 멜라토닌 호르몬제를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국내에서는 아직 식약청의 허가를 받은 제품이 없고 주로 수입품이 많다.
낮에는 소량만 분비되다가 밤 9시 무렵부터 분비량이 늘어나다가 새벽 3~4시 이후에는 분비량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새벽이 되면서 눈을 통해 빛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갑상선호르몬 목 중앙에 튀어나온 ‘아담의 사과’로 불리는 갑상 연골 아래쪽에 기관의 주위를 양쪽으로 둘러싼 갑상선에서 분비된다. 태아와 신생아의 성장과 발육을 돕다가 어른이 된 후에는 몸의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갑상선암 등으로 갑상선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면 평생 갑상선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상선호르몬이 너무 많으면 대사가 항진돼 땀을 많이 흘리며 식사를 많이 해도 체중이 줄고 숨이 차다. 이것이 갑상선기능항진증이다. 반대로 갑상선호르몬이 적어지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있으면 대사가 느려져 무기력해지고 추위를 많이 탄다. 식욕이 없어 식사를 적게 해도 체중은 는다.
인슐린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에서 분비되어 혈당을 조절해 항상 정상치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인슐린의 분비가 감소하거나 그 작용이 약해지면 혈당이 점차 올라가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당뇨병이다. 먹는 약이나 주사를 통해 부족한 인슐린을 보충해주어야 문제가 없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