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증권 먹고 초대형 투자은행으로 진격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사진제공=미래에셋
현재 국내에서 자기자본 4조 원 이상인 증권사는 NH투자증권(4조 5000억 원)과 합병될 미래에셋+대우증권 합병법인(6조 7000억 원)이다. KB증권과 현대증권도 합병 시 3조 8000억 원으로 조만간 4조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 삼성증권(3조 4000억 원), 한국투자증권(3조 2000억 원) 등은 증자 없이는 짧은 시간 내 4조 원 클럽 가입은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금융위 발표의 핵심은 자기자본 8조 원 이상 증권사에 허용되는 종합투자계좌다. 발행어음의 경우 자기자본의 200% 이내라는 제한이 있고, 만기도 1년 이내로 짧다. 반면 종합투자계좌는 발행제한이 없고, 유가증권이 아니어서 만기도 없다. 증권사가 원금을 보장하고, 운용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성격상 예전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연간 순이익은 최소 5000억 원 이상이다. 매년 이 정도 자기자본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 추세면 내년쯤이면 8조 원 돌파가 가능하다. 게다가 박현주 회장 일가가 직접 지배하는 미래에셋캐피탈 외에도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컨설팅, 미래에셋펀드서비스, 3개 사의 자기자본만 2조 원에 달한다. 누적 순이익으로 부족할 때는 증자로 기준을 맞출 여력도 충분하다.
반면 경쟁사들은 사정이 그리 녹록지 않다. 5년 전 자기자본 3조만 맞추면 모든 것을 해줄 듯하던 금융당국이 다시 기준을 올리면서 맥도 빠졌다.
KB금융지주는 현대증권 인수에 거액을 쓴 마당에 다시 유상증자에 큰돈을 쓰려면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농협금융그룹도 이미 모든 금융업을 다 영위하고 있는 마당에 수조 원의 돈을 NH증권에 더 투입하면서까지 종합투자계좌 자격을 획득할 이유는 적다. 삼성의 경우 삼성증권 매각설이 나도는 상황이다. 삼성증권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은 보험 회계기준 변경과 그룹 지배구조 관련 부담도 있다. 4조 원은 몰라도 8조 원 기준을 충족시키려는 대대적인 증자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투자증권은 모기업인 한국금융지주의 자회사 출자한도가 약 2조 원 남았다. 한국투자증권이 기업공개(IPO)를 해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않는 한 내부적으로 2조 원 이상 증자는 어렵다. 한국금융지주는 이미 인터넷은행 사업권을 확보했다. 저축은행도 있다. 종합투자계좌에 목을 맬 이유는 적다. 다만 한국금융지주가 삼성증권을 인수해 한국투자증권과 합병, 8조 원 기준을 충족하는 시나리오는 남는다.
서울 을지로 미래에셋센터원 빌딩.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은 금융상품, 즉 펀드 판매로 인한 수익이 더 크다. 그룹에서 운용하는 공모 및 사모펀드도 많아 종합투자계좌로 모집한 자금을 투자하기에 용이하다”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초대형 증권사 육성 방침에는 국내 금융투자산업의 해외 진출을 유도하려는 의도도 포함됐다. 미래에셋은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모두 합해 가장 많은 해외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박현주 회장이 부동산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점도 눈길을 끈다. 미래에셋의 사모펀드 가운데 부동산 투자상품이 많다. 현재 미래에셋그룹 사옥도 산하 사모펀드 소유다. 부동산114도 인수했다. 8조 원 이상 초대형 증권사에는 그동안 은행에만 허용했던 부동산담보신탁 업무도 허용될 예정이다. 부동산 담보대출이나 부동산 개발 사업에 활용도가 높다.
한편 미래에셋, NH, KB, 삼성, 한국투자, 이 5개를 제외한 나머지 증권사는 자기자본 4조 기준 충족이 어려워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발행어음이나 종합투자계좌 같은 저원가성 수신, 즉 매출원가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한금융투자와 하나대투증권 등 시중은행을 모기업으로 둔 증권사의 경우 증자를 통해 4조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은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키움증권처럼 주식매매수수료에 특화된 사업모델이나 대체투자(AI) 등 틈새 투자시장에 특화된 사업모델을 추구하는 증권사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