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엔 더 걷고 기업엔 덜 받고…정부·산은 1조 벌었다
한전은 주택용 전기요금에 한해 누진제를 운영 중이다. 1~6단계까지 요금제 구간을 두고 100㎾h당 1단계씩 차등적으로 판매가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전기 사용량 ‘100㎾h 이하’인 1단계 대비 ‘501㎾h 이상’인 6단계에 부과되는 누진율은 11.7배다. 즉 100㎾h 이하를 사용하면 1㎾h당 100원을 내던 요금이 501㎾h를 쓰면 1170원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실제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은 1단계의 1㎾h당 전기 사용료가 60.7원이라고 밝혔다.
연이은 열대야에 시민들이 서울 한강변으로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한전이 추산하고 있는 봄·가을 월평균 가구당 전기 사용량은 342㎾h(4단계)다. 한전 관계자는 “월 350㎾h 이상 사용하는 가구에 평균 전기요금보다 비싼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름과 겨울이다. 시간당 소비전력이 높은 에어컨 또는 히터를 가동할 경우 누진제 적용 구간에 포함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또 계절과 상관없이 평균 350㎾h 이상 쓰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30%에 이른다고 한전 측은 설명했다.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 등 자회사로부터 전기를 사들여 일반 주택, 기업 공장 등에 판매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단일 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전기를 한전에 공급(전체 발전량의 33.2%)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1㎾h당 판매 단가는 75.93원이다. 1단계에선 일반 가정이 공급 원가보다 낮은 가격(60.7원)에 전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27.2%의 점유율로 가장 많은 소비자가 몰려 있는 4단계의 1㎾h당 요금은 280.6원이다. 6단계 요금인 709.5원을 적용하면 공급 원가와 9배가량 차이를 보인다. 한전이 일반 가정에 공급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전기를 판매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불성설에 가깝다. 한전의 요금제 중 누진제가 적용되는 상품은 가정용이 유일하다.
한전은 전체 전력 사용량의 점유율을 산업용 53.2%, 일반용(상업용) 22.4%, 가정용 13.4%, 기타 부문 11.0%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한전의 ‘월별 전력 판매실적’을 보면 지난 1~6월 가정용으로 판매된 전력은 3312만㎿h로 전체 전력 판매량(2억 4849만㎿h)의 13% 규모다. 산업용 판매량은 1억 3891만㎿h로 가정용보다 약 4.1배가 많다.
그러나 한전이 각 소비자에 부과한 전기요금은 산업용 대비 가정용이 더 비싼 것으로 파악됐다. 한전은 지난 1~6월 가정용에서 4조 1076억 원을, 산업용에서 14조 3967억 원의 수입을 올렸는데 이는 산업용 수입이 가정용 수입보다 3.5배가량 많은 것이다. 즉 기업들은 일반 가구보다 전기는 4.1배 더 쓰고, 돈은 오히려 0.6배를 덜 내는 셈이다.
지난해 한전은 58조 9577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재화 판매’로 거둔 수입은 54조 3670억 원으로 전력 판매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용역 제공과 시설 공사 등을 통해 남은 수입(4조 2146억 원)을 올리고 있지만 그 비중은 미미하다.
다시 말하면 한전은 전기 판매를 통해 90%가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가정용 전기에 더 많은 요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쓰고 있다. 한전의 독점적 시장 지위 때문에 일반 소비자는 설사 한전이 지금보다 더 비싼 가격에 전기를 공급한다 해도 거부할 수 없다.
저유가 등 외부 요인으로 전력 생산 원가는 2014년 46조 5095억 원에서 2015년 41조 3489억 원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 공급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 책정 권한은 정부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대로 인하하거나 인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전이 돈을 벌수록 이득을 챙겨가는 곳은 정부다. 산업은행과 정부는 한전의 지분 51.1%(3억 2807만 7058주)를 갖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1주당 3100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2014년 주당 500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한 것과 비교하면 6배 이상 많은 액수다. 이 같은 배당에 관한 권한은 사실상 한전의 감독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가 행사하고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한전 경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때마다 되풀이되는 ‘낙하산 사외이사’ 논란은 정부의 해명을 무색케 한다. 이강희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의원과 조전혁 전 새누리당 의원은 정치권 출신으로 에너지 사업과 무관함에도 사외이사로 발탁됐다. 특히 조 전 의원은 2013~2015년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를 역임해 부실 관리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기도 하다.
이들 사외이사는 연봉으로 2526만 원을 챙겨가며, 매년 해외 현지 시찰을 명목으로 사실상 ‘외유’를 떠난다. 2015년 5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모두 15번의 이사회가 열렸지만 8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사회의 또 다른 구성원인 사내이사(등기이사) 7명은 평균 1억 8100만 원의 임금을 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전의 남성 직원 평균 임금은 8251만 원이다. 2년 전 평균 임금인 7324만 원에서 1000만 원 가까이 올랐다. 더욱이 지난해 한전은 36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성과급 잔치까지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환익 한전 사장에게 지급된 성과급은 약 1억 원이며, 임원급들은 경영 평가에 따라 5000만~6000만 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직원들에게도 평균 1500만 원 이상의 성과급이 지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 다른 관계자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따라 정당하게 지급된 것이며 자회사까지 모두 포함한 액수(3600억 원)로 전체 매출에서 그 비중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일각에선 ‘큰 폭의 전기요금 인상과 가정용 누진제 적용의 혜택이 직원들에게 간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지만 한전 관계자는 “한전은 공기업으로서 조직의 이익을 위해 전기요금을 인상하진 않았다”고 반박했다.
실제 한전은 ‘공기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본 측면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는 정부의 장려로 이뤄진 해외 자원개발 및 발전 사업에 대한 투자다. 한전은 지난 2010년 인도네시아 유연탄 회사인 ‘PT. Bayan Resources’ 지분 20%를 6158억 원에 취득했지만 실적 저조로 현재 장부가액은 1000억 원 가까이 빠졌다. 2012년 4월 320억 원가량을 투자한 미국 에너지 회사 ‘NOVUS LLC’의 지분은 회사가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휴지 조각이 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전이 2012~2014년 상위 20개 대기업을 상대로 요금을 할인해서 얻은 손실은 3조 5418억 원이었다. 이 역시 정부의 수출 장려 정책에 따른 결과다. 박주민 의원은 “대기업에 혜택을 주는 정부 정책으로 일반인들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신) 부담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는 전기 요금제도 개선에 아직은 미온적인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관련법상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치게 돼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논의해 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누진제 완화 어떻게? 단계별 적용구간 확대…많이 쓸수록 ‘요금 폭탄’ 동일 불볕 더위에 한 사무실 직원이 부채를 들고 땀을 식히고 있다. 일요신문 DB. 그러나 적용구간이 늘어났다고 해서 무제한으로 요금이 감면되는 것은 아니다. 누진제의 적용을 덜 받을 뿐이지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 폭탄’을 맞는 구조는 동일하다. 공무원 김 아무개 씨는 최근 6월 대비 7월 전력 사용량이 2배 이상 증가하자 한전 측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력 사용량이 누진제 적용구간에 육박했으므로 아껴 쓰라”는 당부(?) 전화였다. 만약 자신이 요금제 어느 구간에 속해 있는지 알고 싶다면 가까운 한전 지역본부로 전화하면 된다. 또 김 씨의 사례처럼 가구 전력 사용량이 늘어날 경우 미리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또 5인 이상 가족의 경우 누진제 적용이 일부 완화돼 최대 1만 2000원까지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다. 3인 이상 다자녀 가구도 마찬가지다. 집에 환자가 있어 산소호흡기 등 생명유지 기구를 쓰고 있는 가구도 누진제 적용이 완화된다. 이밖에 장애인, 국가유공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은 월 4000~8000원 정액할인이 가능하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