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증이려니 하다간 큰코 다친다
문제는 피로감이 오래 가거나 심한데도 춘곤증이려니 생각해서 방치하는 경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뇨병이나 간질환 갑상선질환 암 등의 질병에 걸려도 피로감에 시달릴 수 있다. 충분히 쉬어도 여전히 피로하거나 피로가 1개월 이상 오래 계속된다면 반드시 그 원인을 체크해 보자.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40대 초반의 J 씨. 6개월 전부터 전보다 쉬 피로를 느껴왔다. 피로 증상을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침 회사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별 이상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2개월 전부터는 피로가 더욱 심해지고 체중이 감소했다.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입이 마르고 가슴도 두근거렸다. 그때서야 뭔가 이상이 있다는 생각에 병원을 찾은 J 씨는 검사 결과, 당뇨병과 갑상선기능항진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나친 스트레스 또한 피로를 가중시키는 원인이라고 했다.
이처럼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피로감이 가시지 않을 뿐 아니라 잠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어렵다면 춘곤증이 아니라 우리 몸에 어떤 질병이 없지는 않은지 혹은 어떠한 질병이 일어나기 쉬운 상태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피로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환자의 40% 정도는 신체적인 질병으로 인한 피로다.
가장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당뇨병이나 간질환, 고혈압, 갑상선질환, 울혈성 심부전증, 신부전증, 결핵, 빈혈, 류머티즘 관절염, 루푸스, 암, 에이즈 등이 있다.
연령이나 성별에 따라 특히 의심되는 질환이 조금씩 다르다. 우선 젊고 마른 사람이라면 결핵을, 젊은 여성이라면 빈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흔히 결핵이라고 하면 기침이나 가래, 옆구리 결림 같은 증상을 반드시 동반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런 증상이 없는 경우도 많다. 빈혈의 경우에도 어지럼증부터 떠올리지만 실제 빈혈의 가장 흔한 증상은 피로감이다.
“30~40대의 중년 남성이라면 간질환이나 당뇨병, 암 등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 을지대학병원 가정의학과 최희정 교수의 설명이다.
당뇨병이나 암이 진행된 상태라면 피로 외에 더 뚜렷한 증상을 보여 쉽게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질병들은 대부분 초기에는 피로감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특히 간이 나빠지면 아침보다 오후가 되면 피로가 점차 심해지고, 운동 등 신체활동을 하면 오히려 피로감이 가중된다.
40대 이후 여성은 빈혈이나 갑상선 질환, 당뇨병, 암이 아닌지 봐야 한다. 특히 갑상선 질환은 중년의 여성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갑상선 기능항진증이나 저하증 모두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50대 이후의 남성과 여성이라면 갱년기 증후군일 가능성도 크다. 안면홍조나 두근거림, 허리 또는 전신의 통증, 성욕 감퇴, 우울감 등 여러 가지 증상을 호소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피곤하고 기운이 없는 증상이 가장 흔하기 때문이다.
심한 스트레스나 우울감, 불안증 등의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피로도 40% 정도로 많은 편이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신호철 교수는 “중년 남성들은 회사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면 피로가 심해진다”며 “이럴 때는 복식호흡이나 근육이완법으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우울하거나 불안할 때도 곧잘 하던 일상생활조차 힘들고 귀찮다. 이 상황에서 억지로 일을 하다 보면 피로감은 더욱 심해진다. 심한 경우에는 항우울제, 항불안제 등으로 치료하면 효과적이다.
잘못된 생활습관도 피로를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10% 정도가 여기에 해당된다. 즉 지나친 흡연이나 음주를 하는 습관, 비만, 운동부족, 카페인 과다섭취 등이 그것이다. 안정제나 수면제 호르몬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경우다.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환자의 약 10%다. 만성 피로 증후군이나 특발성 만성 피로, 섬유근통 증후군 등이 그것이다.
특히 만성피로 증후군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피로 증상을 보이지만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 만큼 치료도 쉽지 않다. 다음의 여덟 가지 증상 중 네 가지 이상이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혹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만성피로 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만성적인 피로 증상을 느낀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검사를 해보아도 특별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다.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일을 줄여도 피로 증상이 좋아지지 않는다. △피로 증상 때문에 전에 비해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진다. △목 또는 겨드랑이 임파선이 커지고 통증이 나타나며 인두통 근육통 관절통이 있다.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두통, 잠을 자고 일어나도 상쾌하지 않은 증상이 있다. △운동을 하고 난 후 24시간 이상 심한 피로감이 지속된다.
그렇다면 피로 증상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피로하다고 피로회복제나 보약을 찾기보다는 피로의 원인이 다양한 만큼 피로의 원인부터 정확하게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숨은 질병으로 인한 피로라면 원인이 되는 질병을 치료해야 피로도 사라진다.
흔히 피로 증상이 심해져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또 피로회복제나 보약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다 효과가 없을 때라야 병원에 간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원인 질환이 악화되면 치료가 더 어려워진다.
카페인이 주성분인 일부 피로회복제의 경우 각성 효과 때문에 일시적으로 반짝하는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 효과는 오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더 마시게 되면 오히려 더 피로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일시적인 단순 피로인데도 너무 과민하게 병원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고, 병적인 피로로 의심될 때는 바로 병원을 찾는 게 좋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병적인 피로가 의심된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피로 증상이 심한 편이다. △피로 증상이 처음에는 가벼웠지만 점점 더 심해진다. △충분히 쉬어도 피로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피로 증상 외에 체중감소나 발열 같은 다른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특별한 원인이 없는데도 피로 증상이 1개월 이상 계속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신호철 교수, 을지대학병원 가정의학과 최희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