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는 수담 속에서 평화와 우정 쌓아요”
13일 오전 10시 일본 오사카에서 제5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가 개최됐다.
지난 13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일본 오사카의 아위나오사카호텔에서 ‘제5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의 막이 올랐다. 아시아학생바둑연맹이 주관하고 각국 단장이 후원하는 이번 대회는 바둑을 통해 아시아 학생들의 소통과 교류, 넓게는 아시아의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는 2012년 일본 오사카에서 처음 개최됐다. 2회는 서울, 3회는 홍콩, 4회는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됐고, 5회인 이번 대회는 일본 오사카로 돌아왔다. 대회를 거듭하면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어 아시아 바둑 꿈나무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5회 대회에는 한국 청소년 11명, 일본 39명, 중국 상하이와 항저우, 홍콩 청소년 24명 등 총 74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아시아 각국 청소년들이 반상 대결을 펼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것.
이날 오전 9시 30분에 진행된 개막식에는 아시아 각국의 바둑계 귀빈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한국에서는 신상철 대한바둑협회장(일요신문 사장), 중국에서는 왕샤오떠 중국부이회소년궁청소년기원 부비서장, 일본에서는 아사다 히토시·무네키오 코이치 참의원, 사카 바둑교육진흥회 대표가 자리했다. 신상철 대한바둑협회장에게는 지난 7일 협회장에 취임한 후 열린 첫 공식 대회였다.
신상철 대한바둑협회장(일요신문 사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아시아 대회에 걸맞게 축사는 4개국이 차례로 진행했다. 신상철 회장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평화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바둑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며 “동남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관계가 보통이 아닌 이 시점에 청소년 여러분들이 바둑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우정을 쌓는다는 것은 평화로운 나라 관계를 만드는 데 큰일을 하는 것”이라고 독려했다.
일본의 아사다 히토시 의원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먼 길을 와줘서 고맙다. 승부보다 즐겁고 재미있는 바둑을 뒀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왕샤오떠 부비서장은 “한·중·일이 청소년 바둑으로 하나가 되는 날이다. 기쁜 마음으로 바둑을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개국 선언과 함께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번 대회에 참석한 각국 청소년들은 실력별로 A~E조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했다. 승패는 스위스 리그 방식, 룰은 한국룰과 같은 일본룰을 따르기로 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단체전이 추가됐다. 각 조에서 한 명씩 선출한 대표 5명의 개인전 성적을 합산해 단체전 승부를 내기로 했다. 심판위원장을 맡은 다카하시 카즈오 9단은 앞서의 룰과 대회 방식을 설명하면서 “이번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너”라며 대국간 예의를 갖출 것을 강조했다.
1차전은 오전 10시부터 오전 11시 30분까지 진행됐다. 이후 쉬는 시간 없이 바로 2차전이 진행됐다. 초반부터 한국과 중국의 대결에 이목이 집중됐다. 쟁쟁한 실력자들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국 4학년 상위 3명에 꼽히는 임경찬 군과 지난 5월 열린 ‘제5회 일요신문배 전국어린이바둑대회’에서 최강부 준우승을 차지한 조성빈 군, 유단자부 우승자 남태열(매원초 5) 군이 출전했다. 중국은 무려 3만여 명이 참가한 예선전을 거쳐 선발된 대표들이 이에 맞섰다.
순식간에 1승을 획득한 조성빈 군은 “1회전 경기가 너무 일찍 끝났다”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중국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은 우제프리 군은 “컨디션이 좋다. 다음 경기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이 가득 찬 표정을 보였다.
3차전은 오후 2시부터 시작됐다. 적막감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생들의 집중도가 높아지고, 실력자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에피소드도 생겨났다. 초급부인 D조의 경기에서 대회 최연소 참가자인 중국의 후시차오 군(5)이 대국 중 울음을 터뜨린 것. 한국의 김정효 군과 대국을 둔 후시차오 군은 중반부터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고, 수세에 몰리자 끝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시차오 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돌을 손에서 놓지 않고 끝까지 대국을 마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계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결과는 한국의 김정효 군의 승. 대국을 마친 후 후시차오 군은 “원하는 대로 대국이 흘러가지 않아 분했다. 다음엔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 경기인 4차전에는 누가 승수를 많이 쌓았을지 관심이 집중됐다. 4차전은 이날 오후 3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4시 30분께 마무리됐다. 마지막 경기에 학생들은 더욱 집중했다.
청소년 유단자가 가장 많이 모여 있던 A조에서는 대회 마무리 전까지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계속됐다. 한국의 최은규 군이 우승후보였던 조성빈 군을 8집 반 차이로 꺾고 4승 고지를 점령한 것이 눈에 띄었다. 최 군은 “초반에 대마가 쉽게 살아 대국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경찬 군도 손쉽게 4승을 달성하면서 최종 우승 타이틀을 놓고 선수들이 각축을 벌였다. 결국 A조 우승은 승점에서 앞선 임경찬 군이 차지했다. 준우승은 최은규 군, 3위는 조성빈 군이 차지했다.
제5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 각조 수상자 전원과 대회 관계자들.
B조 우승은 남태열 군이 차지했다. C조 우승은 한국의 오진호 군, 준우승은 중국의 우제프리 군이 차지했다. D조 우승은 한국의 김정효 군, 준우승은 앞서 김 군과 대국에서 눈물을 흘렸던 중국의 후시차오 군에게 돌아갔다. E조 우승은 강주영 군, 준우승은 오현정 양이 차지했다.
단체전은 모두 한국이 휩쓸었다. A ,B ,C조로 나뉘어 진행된 단체전에서 한국은 11승 1패를 기록하며 무난히 우승을 거머쥐었다. A조 우승을 차지한 임경찬 군은 “한국 대회보다 쉽게 이겼지만 대국마다 최선을 다했다”며 “다음 대회에도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상식이 마무리된 후 기념사진을 끝으로 대회는 마무리됐다. 다음 대회를 기약하는 아시아 학생들은 어느새 모두 절친한 친구가 됐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일본 사카 단장 인터뷰 ”연평도 도발 보고 바둑교류 결심“ 일본의 사카 일본바둑교육진흥회 대표는 이번 대회에서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뜨거운 날씨에도 해외에서 온 참가자 단체 숙소를 찾아 대회장까지 인솔했고, 선수는 물론 관계자들의 컨디션까지 모두 직접 챙겼다. 너털웃음에 늘 침착한 인상의 사카 대표가 ‘바둑’을 언급할 때는 눈빛이 빛난다. 여기에 ‘평화’가 깃들면 비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바둑과 평화’는 그가 보여준 열정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는 사카 대표의 그 열정에서 시작됐다. 사카 대표가 일본 바둑 관계자들과 처음 한국을 찾은 건 2003년. 한국의 체계적인 바둑 교육 시스템을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한국과 일본의 바둑 교류를 생각한 건 그때부터였다. 사카 대표는 2010년, 자신의 구상을 행동에 옮길 결심을 했다. 당시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보고 나서다. 적어도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은 평화로운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중·일 3국은 각각 영토와 역사 등 정치적 문제로 얽혀 있었다. 사카 대표는 “한국의 경우 정치와 문화를 분리해서 받아들여 주면서 나의 아이디어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중국은 어려웠다. 일각에서는 ‘평화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벽을 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카 대표는 설득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을 찾아 한·중·일의 공통분모는 바둑이라고 강조했다. 바둑으로 통하니만큼 바둑으로 만나 교류를 시작해 평화를 이루자는 얘기였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사카 대표는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바둑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이번 대회에 중국 대표단장으로 참석한 왕샤오떠 중국부이회소년궁청소년기원 부비서장이다. 그는 사카 대표의 열정에 감동했다며 당장 교류를 시작하자고 했다. 곧 중국 정부와 연결이 됐고 중국의 참여를 계기로 2012년 제1회 아시아평화학생바둑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사카 대표의 꿈과 목표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사카 대표는 “먼저 한·중·일 3국이 바둑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며 “체계적인 시스템이 잡힌 한국 바둑계처럼 일본에서도 이러한 기관 또는 시설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문] |
중국 대표 왕샤오떠 부비서장 인터뷰 ”조만간 막강 한국 따라잡을 것“ 왕샤오떠 중국부이회소년궁청소년기원 부비서장은 한국의 실력이 워낙 막강해 중국 선수들이 힘들어 한다며 인터뷰 내내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 내부에서 바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며 “조만간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 가득 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중국 선수들은 상하이, 항저우, 홍콩에서 무려 3만여 명이 참가한 예선전을 거쳐 선발됐다. 중국 내부의 바둑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이 예선전은 정부 지원을 받아 치렀다. 선수들과 함께 일본을 찾은 중국 관계자들 가운데는 청소년 바둑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도 포함돼 있었다. 실제로 대회에 출전한 중국 어린이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대회 초반 한 중국 선수는 “이번 대회 목표는 한국 선수를 이기고 우승하는 것”이라는 포부를 당차게 밝히기도 했다. 왕 부비서장은 “중국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한국에는 막강한 실력을 가진 선수가 많아 상대하기 어렵다”며 “또 이번 대회가 지난해와는 달리(제4회 대회는 상하이에서 개최) 해외에서 개최되면서 예선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도 개인 사정으로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이 있다”고 아쉬워했다. 왕 부비서장은 이어 “바둑에 대한 중국 내부의 열의가 뜨거우니만큼 머지않아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