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김영란법 필요” 자조적 목소리
진 전 검사장 사건으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현직 부장판사의 금품 수수 의혹까지 드러난 만큼 법조계 내에선 “상황이 이렇다보니 위헌 논란이 뜨겁더라도 김영란법은 필요하다는 여론이 더 강한 것”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오고 있다.
# 검찰 수사 예의주시하는 법원…“현직 부장판사 자기 관리 안 해”
검찰 수사가 수도권 소재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김 아무개 부장판사에게 향할 것은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지난 4월 정운호 게이트가 처음 터졌을 때 김 부장판사가 정 전 대표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기 때문이다. 김 부장판사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는 시기와 혐의가 문제였을 뿐이었다.
사건 발생 초기 김 부장판사와 관련해선 정 전 대표 소유의 레인지로버 중고차를 시세보다 싼 5000만 원에 구입했다는 얘기가 이미 돌았었다. 지금은 정 전 대표에게 준 5000만 원을 돌려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수표로 부의금 500만 원을 받은 것 또한 당시부터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성형외과 원장 이 아무개 씨를 통해 정 전 대표가 평소 친분이 있는 김 부장판사에게 거액의 부의금을 전달했다는 얘기가 서초동 안팎에서 있었던 것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새롭게 드러난 의혹은 김 부장판사가 정 전 대표로부터 구명 로비 명목으로 1억 원 상당을 수수했다는 부분이다. 김 부장판사는 현재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베트남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정 전 대표와 친하게 지낸 것은 맞지만, 구명 로비 명목의 돈은 받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최근 구속된 성형외과 원장도 1억 원 상당을 김 부장판사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을 받은 사실은 있지만, 로비 명목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는 논리다.
정운호 게이트 관련 김 아무개 부장판사의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법조계가 뒤숭숭한 분위기다. 사진은 대법원 전경. 일요신문DB
수도권 한 법원의 판사는 “1억 원을 받고 안 받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어쨌든 해외 원정도박까지 한 질이 좋지 않은 업자와 어울려 다니면서 해외여행도 가고 승용차도 싸게 매입하고 했던 것 아니냐”면서 “검찰과 언론은 1억 원에 비중을 대단히 많이 두는 것 같지만 본인이 인정하는 부의금 500만 원만으로도 법관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를 손상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건 초기 법원 내에선 김 부장판사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뜻밖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서울지역 일선 법원의 한 판사는 “굉장히 말이 없고 조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조용히 자신이 할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지 이렇게 사고를 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황당해 했다.
그러나 서울지역 일선 법원의 다른 부장판사는 “법관으로서 직업윤리가 약하다는 생각을 같이 근무하면서 했던 때가 있었다”면서 “법원 내에서 잘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으니 자기 관리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결국에는 윤리의식이 점점 약해진 게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 법원 의식하는 검찰…수사 내용 유출 극도 민감
검찰로선 김 부장판사 관련 수사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는데 대해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성형외과 원장이 1억 원 상당을 전달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있는데다, 자칫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 내용을 흘리고 있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한 인사는 “성형외과 원장이 중간에서 1억 원 상당을 챙겼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며 “그런 상황까지 고려해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검찰로선 김 부장판사 외에 이번 수사가 다른 판사로 확대되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법원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 정국을 판사 비위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선 법조브로커 이민희 씨와 식사를 했던 임 아무개 부장판사에 대해선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 부장판사가 정 전 대표 등과 가깝게 지낸 만큼 확인 차원에서라도 스크린을 했을 것이란 얘기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어쨌든 임 부장판사도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장본인 아니냐”면서 “관련 진술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라도 임 부장판사에 대해서도 계좌추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런 과정을 거쳐 이 수사를 9월초에는 끝낸다는 방침이다. 이미 4개월간 수사가 진행된 상황에서 더 끌고 갈 명분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판사 한두 명 혐의 사실 입증하는 것에 만족하고 끝내지 않겠느냐”면서 “제기된 의혹에 비해 사건을 너무 오랫동안 끌어온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