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이상 ‘골골’ 다른 질환 의심
춥고 열나면 다 감기?
30대 중반의 회사원 J 씨는 작년 4월,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오한이 나면서도 고열이 나서 회사 근처의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몸살감기 증상이라며 주사를 한 대 놔주고 감기약을 주었다.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음날 다시 오한이 나면서 열이 솟았다. 다시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았지만 다음날 역시 마찬가지. 뭔가 이상하다 싶은 생각에 J 씨는 종합병원을 찾기에 이르렀다. 몇 가지 검사 결과 나온 진단은 뜻밖에도 감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간농양. 세균 감염으로 간에 농양이 생겼다고 했다. J 씨는 다행히 2주 가까이 입원치료를 한 후에 좋아졌다.
40대 초반의 K 씨는 한 달 가까이 지속되는 감기로 병원을 찾았다가 혈액검사와 골수검사 끝에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입안이 다 헐고 기운이 없는 데다 미열이 내리지 않았지만 과로 때문으로만 여겼던 그와 가족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힘든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이처럼 종종 감기 또는 몸살감기로 보여도 결핵이나 간농양, 백혈병, 후두암, 에이즈 등 초기 증상이 비슷한 심각한 질병이 원인인 경우가 있다. 여성들에게 많은 류머티스성 관절염 역시 열이 나면서 근육통, 피로감 등 몸살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물론 이런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감기 증상이 오래 가는데도 약국에서 종합감기약만 사먹으면서 버티다가는 숨은 질병을 키울 수 있다.
감기든 독감이든 증세가 2주 이상 가거나 목이 한 달 이상 쉬고 음식을 삼키기 곤란하거나 누런 콧물이 나올 경우 등은 다른 질환일 가능성이 있다. 이때는 빨리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마른기침이 2주 이상 지속될 때는 천식 외에도 축농증을 의심해야 한다. 장기간 누런 콧물이 나오고 코 가래가 목 뒤로 넘어가 기침이 나온다면 감기가 아니라 축농증일 가능성이 높다. 13세 이전의 어린이들은 축농증에 걸려도 빨리 치료하면 잘 낫는다. 하지만 이후에는 만성으로 발전해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늘어나므로 감기로만 생각해서 방치하지 않도록 한다.
알레르기성 비염 환자들도 증상이 가벼우면 감기에 걸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콧물과 재채기, 코막힘 증상은 감기와 같지만 약을 먹어도 코의 증상이 1주일 이상 지속되고 열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외에 위장과 식도를 조여주는 괄약근이 느슨해져서 위산이 역류하는 위식도역류가 있어도 마른기침이 나온다.
무조건 주사부터 한 대?
주변에 보면 감기만 걸렸다 하면 주사를 맞는 이들도 있다. 주사를 맞고 나면 감기로 인한 두통, 몸살 증상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진통소염제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먹는 약에도 진통소염제가 들어있지만 주사제의 흡수가 훨씬 빠르다. 또 ‘주사를 맞았으니 빨리 낫겠지’ 하는 심리적인 요인 즉 위약효과도 영향을 미친다.
참고로 감기약의 주요 성분은 콧물을 멈추게 하는 ‘항히스타민제’, 열을 내리게 하는 ‘해열제’, 통증을 덜어주는 ‘진통제’, 가래를 없애주는 ‘진해거담제’ 등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약이나 주사는 감기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것일 뿐이다. 감기는 앓을 만큼 앓아야 면역력이 생겨서 감기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 리노바이러스를 비롯해 200여 종의 감기 바이러스는 우리 몸의 저항력이 약해지면 침투한다. 피로가 쌓여 있거나 무리를 해서 체력이 거의 소모되는 시기에 잘 걸린다.
보통 한번 감기에 걸리면 짧게는 2~3일, 길면 10~14일 정도 간다. 감기 증세가 심하고 오래 갈수록 저항력이 그만큼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흔히 감기에 걸리면 코가 막히고 기침, 두통 등으로 짜증을 내기 쉽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몸의 긴장을 해소하고 뭉친 근육을 풀리게 하는 항스트레스 효과가 있다. 평소 영양과잉인 현대인에게는 자연적인 식욕억제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감기에 걸리면 무조건 주사부터 맞을 일이 아니라 건강을 챙기라는 신호로 받아들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감기약 먹을까 말까
그렇다고 증상이 심한데도 무조건 참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 기관지염이나 폐렴, 편도선염, 축농증, 중이염 등의 합병증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기를 방치해서 폐렴이 되는 경우 건강한 사람은 치료만 잘 받으면 괜찮지만 노인이나 심장이나 폐·간·신장 등에 문제가 있거나 혈액암, 알코올 중독, 당뇨병 등이 있을 때는 사망률이 높아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가벼운 감기라도 증상이 수그러들지 않고 1주일 이상 갈 때는 반드시 병원을 찾는 게 좋다.
한 가지, 감기약을 복용할 때는 술기운에 먹는 것은 금물이다. 감기약 속에 들어 있는 항히스타민제는 재채기, 콧물을 멎게 하는 성분. 하지만 뇌 중추신경계를 억제하고 마비시키는 작용도 한다. 여기에 역시 뇌중추 신경을 마취시키는 알코올의 작용까지 더해지면 상승작용을 일으켜 자칫 돌연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실제로 과음을 한 다음날 감기약을 먹은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사례가 종종 있다.
전에 먹다 남은 감기약을 먹을 때도 주의한다. 시럽 형태의 약은 유효기간이 지나면 균에 오염될 수도 있다. 냉장보관해야 하는 항생제 시럽은 조제 후 1주일, 상온 보관인 것은 2주 지나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영양제냐 과일 채소냐
감기에 좋다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비타민. 비타민 C가 많은 과일을 충분히 먹어주면 감기를 예방하고 감기에 걸렸을 때 감기 증상이 지속되는 시간을 줄여준다. 이때 과일이나 채소 등 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것은 좋다. 비타민 C 정제나 과립 등을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삼가야 한다. 설사나 요로결석 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물은 수시로 마시는 게 좋다. 점막이 건조하면 감기에 쉬 걸리고, 감기에 걸려서도 증상이 오래 간다. 물을 많이 마셔 점막을 축축하게 유지시켜주면 증세가 호전되고 가래가 묽어져 잘 배출된다. 유자차나 레몬차를 마시면 비타민과 수분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 반면 우유는 가래를 진하게 해서 배출을 어렵게 만드는 만큼 가래기침을 할 때는 피한다.
감기에 걸리면 입맛도 뚝 떨어진다. 이럴 때는 감기바이러스 감염으로 파괴되는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해주는 식사가 좋다. 예를 들어 닭죽은 소화가 잘 되고 단백질, 수분 보충에 좋은 음식이 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유태우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