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보험 들기? 비박 세력화 주목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참여”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왼쪽) 취임식에 이 전 대통령이 함께한 모습. 일요신문DB
벌써부터 비박계인 김무성 전 대표가 민생투어를 끝내고 나면 중대한 결심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 구도 하에서는 김 전 대표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김 전 대표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 중 몇몇은 이 전 대통령 최측근이기도 하다. 이들이 김 전 대표 측과 이 전 대통령 측을 오가며 교감하고 있다는 말도 무성하다. 이게 현실화되면 이 전 대통령도 무시할 수 없는 세를 갖추게 된다.
특히 이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재오 전 의원은 최근 새누리당을 탈당해 늘푸른한국당이라는 신생 정당 창당을 준비 중인데 일각에선 창당 전에 이 전 대통령과 교감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이 전 의원이 대선 전까지 조직을 다져놓은 뒤 이 전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 의원 측은 신당 창당은 이 전 대통령과 전혀 무관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창당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과 의견을 조율한 적도 없고 서로 만난 지도 오래됐다”며 “이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신당을 창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전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추후 이 전 대통령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함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때 가서 생각해봐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일요신문>은 최근 모든 정보가 집중되고 있다는 이 전 대통령 개인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봤다. 퇴임한 대통령 사무실치고는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오후 늦게까지도 내부에서는 릴레이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나온 관계자도 쉴 새 없이 통화를 하며 매우 바쁜 모습이었다.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무실 외부 유리문엔 짙은 시트지가 붙어 있어 내부를 전혀 살펴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입구에선 청와대에서 파견된 경호원이 기자를 맞이했다. 경호원은 보안상 사무실의 정확한 위치를 알리지 않았는데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난감하다고 했다. 요즘 정치인들이 자주 사무실에 찾아오느냐는 질문에는 보안상 그런 질문에는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관여하려 한다는 보도에 대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누가 그런 말을 하고 다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완전히 사실무근이며 다소 과장됐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좀 더 자세한 이 전 대통령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사무실 앞에서 기다려봤지만 회의가 길어지고 있다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고 이후 연락도 닿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관여하려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일종의 보험 성격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이 나름 정권창출에 일조했던 박근혜 정권에서도 본인을 겨냥한 수사가 몇 차례 있었는데 이 전 대통령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어떻게 되겠나. 대선 과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함으로써 보험을 들어두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혈세를 지원받아 운영되는 개인 사무실을 엉뚱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봉사활동을 하거나 외교, 복지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이 전 대통령의 활동은 국가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활동이라는 지적이다. 이 전 대통령 사무실은 월세만 10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013년 5월부터 사무실을 열고 집필을 하거나 측근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직 대통령은 사무실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으나 과거 전임 대통령들의 경우는 따로 사무실을 두지 않고 사저를 집무공간으로 이용했다. 때문에 사무실 개소 당시 혈세 낭비가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과연 제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조사를 하면 이 전 대통령은 늘 하위권을 맴돈다. 여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과 철저히 선을 긋는 전략을 썼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후보를 지원하는 형식이 아니라 비박계 세력을 결집해 대선후보와 중개해주는 방식으로 대선을 도운 후 일정 지분을 얻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