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열어보니 잘나가는 ‘승강기사업’ 놓고 줄다리기
일부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소송에 대해 쉰들러가 승강기 사업부를 얻기 위한 압박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04년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이면서 ‘추후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승강기 사업부를 분리하고 쉰들러가 해당 사업의 최대주주가 된다’는 내용의 인수의향서(LOI)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듬해 승강기 사업부 매각이 백지화되면서 양사의 갈등이 생겼다.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 매출 대부분은 승강기 사업부에서 나온다”며 “결국 승강기 사업부를 달라는 건 현대엘리베이터를 가져가겠다는 것이고 이미 지난 이야기인데 이제 와서 넘겨 줄 이유는 없다”고 전했다. LOI는 법적 효과가 없어 쉰들러가 무작정 권리를 내세울 수도 없다.
현대그룹 입장에서 승강기 사업부를 내주기에는 재무적으로도 부담이다. 현재 대북사업이 막혀 현대아산의 수익을 기대할 수 없고 다른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규모가 작아 큰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 상반기 매출액 8140억 원, 영업이익 814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대비 각각 25%, 18% 상승한 수치다. 현대그룹 측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그룹 매출의 80%가량을 맡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법원이 항소에서 쉰들러의 편을 들어줄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피고소인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아닌 현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4명이다. 따라서 현 회장이 패소한다면 현금 마련을 위해 현 회장의 지분이 매각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현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미친 손실이 막대한 만큼 승강기 사업부 인수를 떠나 2대주주로서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 회장이 현대상선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는데 현대그룹이랑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쉰들러는 충분히 항의할 수 있는 일”이라며 “손해배상액을 쉰들러가 갖겠다는 게 아니라 현대엘리베이터에 지불하라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주장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지만 파생상품 계약 등으로 인해 부채도 높아졌다. 2014년 7000억 원 수준이었던 부채가 지난 6월 말에는 1조 3400억 원으로 늘어났다. 또 지난해 5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도 주주들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다. 앞의 업계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는 과거에도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수차례 유상증자를 하다가 쉰들러의 항의를 받았다”며 “회사의 발전보다 현대그룹 재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높은 영업이익에도 불구하고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012년 6월 기준 쉰들러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35%에 달했다. 그러나 쉰들러는 유상증자에 반대하며 참여하지 않아 지분이 17.1%까지 떨어진 것이다.
현대그룹은 판결이 나온 만큼 과거는 잊고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에 집중하자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는 회사 가치 상승을 위해 노력한 건데 쉰들러와 의견이 맞지 않았던 것”이라며 “항소심에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니 앞으로는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쉰들러는 어떤 회사? 세계 에스컬레이터 1위, 엘리베이터 2위 쉰들러그룹은 지난 1874년 스위스에서 엘리베이터 사업을 시작한 게 시초다. 현재는 미국, 중국 등 100개 이상의 국가에 진출해 세계에 1000군데 이상의 사무실을 두고 있다. 쉰들러의 첫 해외진출은 1906년 독일 베를린에 진출한 것이다. 1937년에는 브라질에 진출해 비유럽대륙으로 발을 넓혔고 1974년에는 홍콩 법인을 세워 아시아로 진출했다. 쉰들러의 주 제품은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등이다. 쉰들러 자체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에스컬레이터 시장 점유율 1위, 엘리베이터 시장에서는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쉰들러가 한국에 진출한 건 2003년으로 당시 중앙엘리베이터를 흡수 합병해 쉰들러엘리베이터라는 이름의 법인을 설립했다. 그러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국에서의 실적은 좋지 못하다.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쉰들러엘리베이터의 매출은 527억 원이다. 이는 경쟁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14조 원), 오티스엘리베이터코리아(6030억 원),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5417억 원)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다. 업계에서는 쉰들러의 부진 원인을 공정거래법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현행법상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간주한다. 현대엘리베이터와 LOI를 맺은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승강기 사업부와의 합병을 염두에 두고 점유율 50%를 넘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사업을 키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승강기 사업부 인수는 어려워졌지만 쉰들러가 한국 시장을 포기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이제 와서 쉰들러가 사업을 얼마나 키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변화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