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페이스메이커 역할 땐 미래 없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자신의 SNS를 통해 사실상 대권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8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 전국대의원대회에 인사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당초 여의도 주변에선 안 지사의 대권 선언을 내년 초로 점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그러나 안 지사는 8월 31일 자신의 SNS에 “동교동도 친노도 친문도 비문도 고향도 지역도 뛰어 넘을 것이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 근현대사 100여 년의 시간도 뛰어 넘어 극복할 것”이라며 “나는 김대중, 노무현의 못 다 이룬 역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남겼다. 사실상 대권 출마를 시사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안 지사 행보에 대해 비노계에선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진다. “흥행을 위한 도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문 전 대표는 차기 대선 지지율을 묻는 조사에서 당 내 1위를 지키고 있다. ‘더민주 경선은 해보나마나’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흥행 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뒤를 잇는다. 비노 진영에서 안 지사가 문 전 대표 대선 승리를 위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배경이다.
친노 진영에선 일단 안 지사의 대권 선언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문 전 대표로선 안 지사 합류로 친문 패권주의를 불식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칫 식상할 수 있는 당내 경선에 활력을 기대하게 됐다. 안 지사는 경선에서 설령 패하더라도 당내 대선 주자로 각인될 수 있는 전국적 인지도를 쌓을 기회를 갖게 됐다. 차차기를 고려한다면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심지어 더민주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반기문 대망론’으로 선점한 충청의 민심을 되찾을 수 있는 대안으로 안 지사가 적합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선 안 지사의 대권 출마 선언이 친노 분화의 반증이라는 시각도 있다. 4월 총선 후 친노 진영이 친문계와 친안계로 세분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친문계 다수가 경선 대상으로 이름이 올라갔고, 문 전 대표는 직접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 김병관 표창원 이병기 조응천 손혜원 의원 등 문재인 영입인사들이 여의도 입성에 성공했다. 친문계 의원들은 문 전 대표 대권가도에 든든한 우군이다.
친안계 의원들 역시 금배지를 달았다. 대표적인 ‘안희정 키즈’인 조승래 의원을 비롯해 김종민 정재호 의원과 박완주 더민주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여의도에 둥지를 틀었다. 물론 친문계와 친안계 모두 범친노로 분류되긴 하지만 그 내부를 면밀히 살펴보면 분화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게 야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친안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실 보좌관은 “안 지사는 안 지사의 가치가 있고 문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안계 인사들은 이러한 얘기들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앞서의 보좌관은 “친노계란 부정적으로 몰아갈 때 사용되는 프레임이다. 사실, 친문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국민의당 분당 사태 때 가치를 달리하는 사람들은 다 나갔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가치가 같다는 얘기다. 전대도 마찬가지”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안 지사는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다. 안 지사는 안 지사의 가치로, 문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의 가치로 또 김부겸 의원은 김 의원의 가치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권 행을 빨리 밝힌 이유에 대해선 “자신의 지지자들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것 아니겠냐”라고 답했다.
친안계의 또 다른 보좌관은 “‘선수’로 뛰기로 결심하고 출마를 택한 것이지 ‘불쏘시개’ 역할을 자처한 것이 아니다. 12월쯤 차별화된 전략을 갖고 대권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계완 정치 평론가는 “국민들은 이미 안 지사를 대선주자 급으로 인식하고 있다. 안 지사 또한 이기고 지는 것과 관계없이, 정면 돌파해 문 전 대표를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를 갖고 출마하는 것이다. 문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순간 안 지사의 정치 미래도 없어지기 때문에, 안 지사의 대선 출마가 ‘페이스메이커설’이나 친노계 분화설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현재로선 문 전 대표가 압도적 우위에 있지만 변수가 생긴다면 충분히 승부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