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열받으면 뱃속에선 ‘교통대란’
신경을 쓰는 일이 생기면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헛배가 부르고 가스가 차서 고생해온 김수호 씨(41·자영업). 특히 밀가루 음식이나 매운 음식을 먹으면 더했다. 얼마 전에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원인이 없다며 ‘기능성 소화불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치매환자인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약간의 우울증이 생긴 주부 박경애 씨(38)도 마찬가지. 6개월 전부터 소화가 되지 않아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복부초음파 등의 검사를 해봤지만 별 이상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기능성 소화불량은 뚜렷한 원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위장의 기능이 정상보다 떨어지는 경우다. 그래서 식사를 하고 나면 속이 불편하고 더부룩하다. 또 가스가 차고 메스껍거나 적은 양만 먹어도 금세 헛배가 부르기도 한다.
섭취한 음식물을 모아 소화액과 혼합시켜서 잘게 부수고, 십이지장으로 조금씩 내려 보내는 것이 위의 기능. 이 과정에는 여러 가지 호르몬과 신경들이 관여하고 있고 감정, 감각과 같은 뇌의 기능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 중 어딘가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속이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섭취한 음식이 위에 들어오면 위가 적당히 늘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게 된다.
내시경 검사를 해보면 만성 위염은 흔해도 궤양은 없다고 해서 기능성 소화불량을 ‘비궤양성 소화불량’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만성 위염이 없는 경우에도 소화불량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고, 만성 위염의 정도와 증상이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는 게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정성희 교수의 설명이다.
보통 신경이 예민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우울증이 있는 경우에 더 증상이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담배와 술도 증상을 악화시킨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만큼 기능성 소화불량을 진단하는 데는 여러 가지 검사가 필요하다. 우선 위궤양이나 위암 등으로 인한 소화불량이 아닌지 보기 위해 위내시경 검사를 하고 간이나 담낭, 담도에 문제가 있어도 소화불량을 보일 수 있어서 혈액검사, 방사선검사, 복부초음파 등도 하게 된다. 소화불량 증상과 함께 구토, 체중감소, 황달, 빈혈, 혈변 등의 다른 증상이 있을 때는 단순히 소화가 안 되는 것으로만 여기지 말고 한번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능성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아무리 좋다는 음식도 자신의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무슨 음식은 먹지 말고 어느 음식은 좋다는 말하기는 어렵다. 환자마다 맞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나 우유, 육류, 튀김음식 등을 먹을 때 소화불량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또한 커피, 후추, 감귤류, 탄산음료 등이 소화불량을 일으키기도 한다. 너무 짜고 매운 음식도 피해야 하고 지방이 많은 식품도 위 배출을 느리게 만들어 좋지 않다.
과식이나 불규칙한 식사도 금물이다. 위장에 나쁜 영향을 주어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식도 위벽에 자극을 준다.
직장인들이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빈 속에 마시는 모닝커피도 위를 손상시킨다. 증상을 악화시키는 술도 삼가야 한다. 술을 가볍게 한두 잔 하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부교감신경을 활발하게 만들어 소화에 나쁘지 않다. 하지만 과음을 하면 위장에 무리를 준다.
담배도 마찬가지. 애연가들 중에는 밥을 먹고 나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면 소화가 안 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니코틴에 대한 중독 증상일 뿐 실제로는 오히려 소화를 방해한다. 담배연기 속의 니코틴은 위 점막을 공격하는 공격인자의 분비나 독성을 증가시키고, 동시에 위산으로부터 위를 보호하는 방어인자인 ‘프로스타글라딘’의 분비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위산이 위벽을 녹이게 되고 위염이나 소화성 궤양이 잘 생긴다. 흡연을 하면 소장, 대장의 운동 기능까지 떨어뜨려 복통, 복부 팽만감, 변비 등으로 고생할 수 있다.
직장인들이 점심식사 후에 즐기는 꿀맛 같은 낮잠도 주의한다. 식후 30분 이내에 눕거나 엎드려 수면을 취하면 가슴통증이나 변비 등이 생기기 쉽다. 낮잠을 자고 싶다면 식후 30분 정도는 몸을 가볍게 움직여서 어느 정도 소화를 시킨 후에 15분 정도 자는 것이 적당하다. 저녁에는 잠자기 3~4시간 전에는 적은 양이라도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반면 규칙적인 생활과 식사, 적당한 운동 또는 취미생활은 권장된다. 규칙적인 식사를 하면서 운동으로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등을 잘 다스리면 소화불량 증상이 자연스럽게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 지나친 스트레스를 그대로 두면 위산 분비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위 점막의 방어력이 떨어져서 궤양이 생기기 쉽다.
식사를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할 때 위액이 더 많이 분비돼 소화가 잘 된다. 식사시간은 체크해 보고 너무 짧다면 20분 정도로 길게 한다. 밥을 빨리 먹으면 포만감을 늦게 느껴 과식을 하게 되고 그만큼 위장에 부담을 주게 된다.
단순히 기능성 소화불량인데도 ‘혹시 큰병은 아닐까’ 하고 지나치게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런 불안이 더 소화에 더욱 나쁘게 작용할 수 있다.
정성희 교수는 “다만 뚜렷한 원인이 없는 기능성 소화불량이라는 진단을 받았더라도 다른 질환이 생길 수 있으므로 증상이 달라지거나 갑작스런 체중 감소, 혈변 등의 증상이 있으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위식도 역류로 인한 소화불량을 예방하려면 술을 마시고 토하는 습관은 버리도록 한다. 토하면 흡수되는 알코올의 양이 줄어 속이 편해지더라도 자주 토하게 되면 위와 식도 사이 괄약근이 느슨해져 위산이 더욱 잘 역류하게 된다.
한 가지, 50세 이상의 연령이라면 심근경색, 협심증으로 인한 가슴의 통증을 체한 것 같은 증상으로 느낄 수도 있으므로 주의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정성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