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초동 검찰청사는 송 내정자가 건설본부장으로서 건축과 정 전반을 책임진 곳이어서 그에게 남다른 감회를 준다. | ||
지난 10일 제33대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송광수 내정자(53)는 검찰 내에서 ‘소신파’로 알려져 있다. 또 그에게는 ‘폭탄주를 매우 싫어하는 검사’라는 꼬리표도 따라붙는다. 사시 13회인 송 내정자는 검찰 안팎에서 “뚜렷한 주관과 두둑한 배짱을 가진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인사파동’으로 빚어진 검찰 내부의 동요를 수습할 수 있는 적임자로 일찌감치 꼽혀온 인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도 송 내정자를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 총수감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하지만 “너무 깐깐하다”는 평가와 함께 자기 소신껏 일하는 스타일이라 새 정부와 마찰을 빚을 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검찰 안팎에서 들리기도 한다.
검찰 개혁의 선봉에 서게 될 송 내정자는 누구인가. 검찰 안팎의 인사들이 말하는 송광수 내정자의 진면목을 들여다봤다.
먼저 익명을 요구한 서울지검의 한 검사가 전한 송 내정자에 대한 얘기 한토막.
“지난 1월 초 ‘노무현 당선자가 김각영 검찰총장을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당시 검사들은 드러내놓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차기 검찰총장에 누가 오를지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다. 그때 송광수 당시 대구고검장이 차기 총장 물망에 올랐다. 이에 대해 선후배 사이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총장 적임자로 보는 선후배들이 많았다. 개혁성향의 대통령과 잘 맞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송 내정자는 검찰 선후배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이 송 고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서둘러 내정한 것도 현재 동요하는 검찰 조직을 다독이면서 안정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는 후문.
실제로 “공정한 인사가 단행되기 전에는 사표를 보류하고 저항하겠다”는 글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사시 동기생 김원치 대검 형사부장도 그의 내정을 수긍했다. 김 부장은 “송 고검장이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이상 그 결과에 승복하고, 동기생이 총수에 오르면 용퇴하는 전통을 존중하겠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송 내정자에 대한 평가 가운데 “정치색깔이 별로 없다”는 점도 청와대의 낙점을 받을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힌다. 사상 처음 거쳐야 하는 국회청문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도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송 내정자는 최병모 민변회장(오른쪽)과 막역한 사이여서 역시 민변 출신인 강금실 장관과 함께 이들 세 사람이 검찰 개혁안에 대한 교감을 하지 않나 하는 관측도 있다. | ||
‘검찰개혁’의 선봉장으로 나서게 될 송광수 검찰총장 내정자는 경남 마산 출신으로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건설본부장과 ‘검찰의 황태자’로 불리는 법무부 검찰 1과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지난 1988년부터 1992년까지 ‘기획통’인 법무부 검찰 1, 2, 4과장을 내리 거친 ‘아이디어 맨’으로도 통한다.
특히 그는 수사 못지 않게 행정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의 서울 서초구 서초동 검찰청사는 그가 1987년부터 88년까지 법무부 검찰청사 건설본부장으로 있으면서 완성한 것. 자신이 건설공사의 총책임을 맡았던 검찰청사의 수장으로 부임한 셈이다.
1993년 서울지검 형사3부장 시절엔 교육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경원대와 상지대 입시부정 사건을 지휘, 대학총장 등 20명을 사법처리하기도 했다. 당시 송 내정자는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입시부정을 뿌리뽑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검찰인사 실무책임자인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했던 지난해 초엔 검찰 인사 쇄신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재경지청장과 차장의 기수차를 종전 2기차에서 1기차로 줄였던 것. 일종의 서열 파괴 인사를 단행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개혁성이 강한 민변 부회장 출신의 강금실 법무장관과 보조를 맞춰 인사제도 등 개혁 과제를 무리 없이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송 내정자는 현재 민변 회장을 맡고 있는 최병모 전 옷로비 특별검사와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모두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 그런데 일선 검사들은 최병모 회장이 강금실 장관의 검찰 인사 원안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이유로 강금실-송광수-최병모 등의 교감을 통해 검찰 개혁이 추진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송 내정자는 지연과 학연에 연연치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업무 능력을 위주로 부하를 평가한다는 것. 그래서 후배 검사들이 무서워하는 선배로 통한다.
이는 송 내정자가 수사와 사건 처리에 있어서 ‘공정성’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러면서도 후배 검사들을 끝까지 아끼고 지도하는 자상함도 갖추고 있다는 평.
또 선후배를 가리지 않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공통된 전언. 상대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할 말은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는 것. 이런 소신 때문에 발생한 에피소드가 많다.
지난 70년대 중반 유신정권 시절의 일화다. 당시 초임 검사였던 송 내정자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주재하는 유신 교육장에서 갑자기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곤 서슴없이 “검사들을 상대로 앞으로 이런 교육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직언, 주변을 놀라게 했다.
송 내정자는 술에 약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검찰의 트레이드마크인 ‘폭탄주 문화’를 혐오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평검사 시절에는 고위 간부들이 강요하는 폭탄주를 단호하게 거부한 일화가 수두룩하다.
올 초 4천억원 대북 지원 의혹과 관련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국회에서 논의하자”며 사실상 검찰 수사 유보를 제안하자, 송 고검장은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말투는 투박하지만 좌중을 휘어잡을 정도로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걸쭉한 농담을 잘해 “너무 웃겨서 웃느라 배가 아팠을 정도”라고 기억하는 인사들이 많다.
그는 프로기사와 맞붙을 정도의 바둑실력을 갖고 있다. 한국기원 공인 아마 6단의 고수. 프로기사와 두 점을 놓고 두는 실력으로 법조계 전체에선 적수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는 공무원 바둑대회에 법무부 검찰팀을 이끌고 출전해 여러 차례 우승하기도 했다.
송 내정자는 ‘돌부처’로 불리는 이창호 9단의 열렬한 팬. 그래서인지 이 9단처럼 신중하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두터운 행마’를 선호한다고.
일부에서는 성격이 너무 치밀해 약점이 없다는 것이 ‘약점’이라는 말까지 한다. 송 내정자의 업무처리가 꼼꼼해 ‘깐깐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또 직선적인 성격이어서 포용력 면에서는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자기 소신이 뚜렷한 만큼 새 정부와 예기치 않은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의 우려다.
청와대는 송 고검장을 검찰총장 내정자로 지명하기 전에 아들 재헌씨(28)의 병역 면제 사실로 매우 고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청문회에서 문제로 삼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청와대측은 “송 내정자의 아들은 체중과다로 병역을 적법하게 면제받은 것”이라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총장 내정자로 발표했다는 후문.
그는 두 살 연상인 부인 강영옥씨(55)와는 대학 시절부터 연애한 끝에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내정자는 앞으로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검찰총장 국회청문회를 통과해야 한다. 그 이전까지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자격으로 서울고검 청사의 1310호실을 임시 집무실로 사용한다. “한 달여 동안 그는 검찰개혁 방안을 구상하면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게 될 것”이라고 검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송 내정자는 지난해 10월말 ‘검찰청사 내 피의자 사망사건’에 이어 이번 ‘인사파동’으로 심각하게 상처받은 검찰의 자존심을 치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검찰 사상 유례가 없었던 ‘서열파괴 인사’로 인해 어색해진 선후배 검사간의 조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 검찰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런 과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만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지적이다. ‘검찰 개혁’을 위해 방향타를 잡은 송 내정자. 그의 항해가 앞으로 순조로울지 여부는 검찰 내부의 개혁의지가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