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0년 9월20일 ‘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에 연루돼 장관직을 내놓고 물러나는 박지원씨. 그가 장관에 발탁되 면서 문광부는 ‘실세부처’가 됐다. | ||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박지원 김한길 남궁진 전 장관이 문광부 장관자리를 거쳐갔다. 한결같이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들. 특히 ‘소통령’으로 불렸던 박 전 장관이 지나간 뒤 문광부의 힘은 단순히 문화 행정 업무에 그치질 않았다. 언론개혁의 전위대 역할을 자처했다.
문화 부처의 역사는 68년 문화공보부의 출범이 그 시작이 된다. 이후 교육 부처와 합쳐 문교부로 불렸다. 문교부 시절은 사실 교육계 인사가 주를 이뤘다. 문화는 교육 뒤에 붙은 들러리 성격이 짙었던 것. 5, 6공 시절과 김영삼 정권 때에는 언론인 출신들이 주를 이뤘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이 바로 문광부 장관 자리였다. 노 대통령의 언론 개혁 의지가 남달랐던 까닭이다. 당초 유력한 후보로 부상한 이는 이철 전 의원이었다. 통추 시절부터 노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 관계를 맺어온 사이였다. 무엇보다 개혁 성향이 강한 데다가 나름대로의 정치력도 갖고 있었다. 문화계 내의 지지세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노 대통령은 영화감독 이창동씨를 낙점해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문화계 수장은 말 그대로 문화 인사여야 하며, 정치인이 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혀왔기 때문이다.
실제 이씨가 문광부 장관에 임명되자 언론계뿐만 아니라 정계에서도 “모 아니면 도가 될 인사”라는 말이 나돌았다. 사실상 노 대통령이 뒤에서 언론개혁의 칼날을 강하게 휘두르면 그 상처는 이 장관이 고스란히 입게 될 것이라는 얘기가 그 하나였다. 또 하나는 이 장관이 문화계 전반의 개혁 업무에만 전념할 것으로 보는 견해였다.
하지만 일단 그 예상은 모두 빗나가고 있다. 이 장관의 언론 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오히려 노 대통령을 앞서나가고 있다. 차라리 요즘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나, 김두관 행자부 장관 등이 상대적으로 조용하기만 하다. 정치인도 언론인 출신도 아닌 이 장관이지만 박 전 장관에 이어 확실히 최근 그의 행보는 문화부의 위상을 한껏 올려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