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지난 40년 자동차 수리소인 아도서비스의 문을 열면서 현대그룹을 한국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큰 존재로 키워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고, 가지가 많으면 바람이 잦은 법. 현대그룹의 영광을 일군 현대의 하동 정씨 일문이 그런 경우이다.
▲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 | ||
게다가 정 명예회장은 이 많은 형제와 자녀들을 모두 굴지의 기업 총수로 만들어주는 등 부에 있어서 비할 데 없는 영광을 일문에 남겼다.
하지만 현대가는 시련의 그늘도 그만큼 컸다. 특히 정 명예회장의 피붙이들에게 찾아온 사망 사고는 화려한 사업 성공담에 비해 너무나 비극적이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가장 아꼈던 동생이 외국에서 사망히고 두 아들을 먼저 보내는 참척을 겪었다. 그리고 그는 병상의 부인을 두고 먼저 눈을 감았다.
10여년째 병상에 누워 있는 정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는 정몽헌 회장의 사망으로 세번째 참척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현대가에 첫 번째 찾아온 비극은 정주영 회장의 다섯 번째 동생인 정신영씨의 죽음이다. 정신영씨는 지난 62년 4월14일 독일땅에서 숨을 거뒀다. 그는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를 지내다 독일로 유학을 갔다. 정 명예회장은 그를 정치에 입문시키길 희망할 정도로 큰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장폐쇄증으로 허망하게 세상을 떴다.
이에 대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모든 가족들이 충격으로 울고불며 몸부림쳤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후일담이지만 정주영 명예회장이 받은 충격은 훗날 자신의 큰아들 사망 때보다 더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씨의 사망은 현대가에게 ‘4월의 비극’의 전주곡이었을 뿐이었다. 82년 4월에 현대가문에 또 한번의 비극이 일어났다. 4월29일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필씨가 사망한 것. 그날 새벽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경부고속도로상에서 정몽필 당시 인천제철 사장이 타고 있던 승용차가 트레일러차를 들이받아 정 사장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 것.
정 사장의 부인 이양자씨도 남편 사망 뒤 후유증에 시달리다 지난 91년 남편의 뒤를 따랐다. 정 사장은 슬하에 은희, 유희 등 딸만 둘을 뒀다. 정 명예회장은 졸지에 고아가 된 두 손녀를 자신의 청운동 집 옆에 살게 하며 보살피는 등 큰 정성을 쏟았다.
현대 가문의 세 번째 4월의 비극은 90년 4월24일에 찾아왔다. 정 명예회장의 넷째아들인 정몽우씨가 서울 역삼동의 한 호텔 객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것.
사인은 음독. 당시 현대 주변에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이 10여년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고 사고 직전에도 신경과 치료를 받고 퇴원한 상태였다고 밝혔었다.
94년 10월에는 정 명예회장의 조카 며느리와 종손녀가 폭발사고로 사망하는 참극이 일어났다. 정 명예회장의 둘째동생인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의 며느리인 김미희씨와 피겨 선수이던 손녀가 태릉실내링크 부탄가스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
이처럼 말못할 집안의 비극을 뒤로하고 마침내 지난 2001년 3월 정 명예회장이 세상을 떴다. 그리고 2년 만에 정 명예회장의 대북 사업 유지를 받들어 현대그룹 회장직에 오른 정몽헌 회장이 급작스레 세상을 버리는 비극이 일어났다.
어느 집이나 태어나고 죽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버리는 것에 대해선 옛부터 참척이라고 부르며 큰 비극으로 여겼다.
한없이 큰 영광을 누렸던 정 명예회장의 집안이기에 연이어 찾아오는 비극이 더욱 커 보이는 게 아닐까. [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