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재 의원은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진학해 학업에 열중하던 중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제11대 총선에서 전국 최연소자(만 29세)로 마산서 출마해 비록 차점 낙선했으나 2만9천3백57표를 득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후 12대 때 김상현 의원의 권유로 다시 총선에 도전해 여의도에 입성했다.
강 의원은 이때 잠시 동교동계에 머물렀지만 곧바로 상도동으로 정치적 거처를 옮겼다. 이후 특정 인맥에 치우치지 않은 채 ‘김영삼 맨’의 외길만을 걸어왔다. 그래서 문민정부 출범 후 43세의 젊은 나이에 일약 집권당의 사무총장에 전격 발탁됐다. 그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때에는 정보와 자금이 집중돼 ‘부통령’으로 불리기도 할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그는 가끔 사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때로는 아버지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털어놓을 만큼 YS에 충직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강 의원의 지역구에는 YS의 부친 김홍조옹이 살고 있어 두 사람의 인연은 더욱 각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 의원은 DJ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표적수사 대상”에 걸려 정치적 시련을 겪게 된다. 또한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스스로 사퇴하면서 점차 당 핵심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그는 15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된 현재의 재선의원들이 안풍 사건에 대해 모른 체하자 몹시 서운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의원직 사퇴와 정계은퇴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강 의원의 선택이 그다운 강수였지만 결코 여의도로 가는 마지막 끈을 놓지는 않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그는 아직 젊고, 언젠가는 돌아갈 18년 아성의 지역구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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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사 ( 2024.11.21 1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