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이 일괄 사표를 제출, 노 대통령이 또다시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이들의 사표를 반려했고,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재신임’의 방법과 시기를 구체적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한 개인이 비위 혐의로 출국금지된 사실이 현직 대통령이 ‘재신임’을 공언하고 나서야 할 만큼 큰 문제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공언하는 데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최도술 전 비서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혐의를 받고 있는지, 그를 둘러싼 또 다른 곡절은 없는지 등에 대한 의구심과 궁금증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38년지기’다. 부산상고 2학년 재학 때 ‘독서실 총무’를 지내면서 당시 3학년에 재학중이던 노무현 대통령과 처음 연을 맺었다. 노 대통령이 정치권에 입문하기 이전 변호사로 활동하던 84년 변호사 사무장을 시작으로, 88년 총선 회계책임자, 92년 총선 회계책임자를 맡아 활동했고, 95년 부산시장 선거와 96년 총선, 그리고 98년 종로 보궐선거까지 주요 회계책임자로 일해온 최측근이자 ‘집사’이기도 하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부산에 내려가 선거운동을 할 때에도 회계책임자를 맡아 총선을 치렀고, 지난해 대선 때에는 부산 선대위 회계책임자로 활동했다. 노 대통령의 자금에 관한 한 최도술 전 비서관을 빼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관계에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 전 비서관에 대한 비위 혐의는 곧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자금 문제와 직결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까지 검찰 발표와 검찰 주변을 통해 드러난 혐의로는 최 전 비서관은 대선 직후 SK측으로부터 10억대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부산을 근거로 하는 지역 기업체로부터 각종 청탁과 함께 자금을 수수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혐의 내용은 최 전 비서관이 검찰에 출두,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실 여부가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 전 비서관의 비리 수위에 따라 노 대통령이 떠안아야 할 부담도 무게를 달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또 한 명의 조연 지난 2일 오전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비자금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 에 출두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 ||
그렇다면 최도술 전 비서관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최 전 비서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인맥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 대통령의 부산 인맥은 크게 운동권 인맥과 부산상고 인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비서관, 정윤재 전 민주당 지구당위원장 등은 운동권 출신 인맥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선 최도술 전 비서관을 필두로 부산상고 동문들이 또 다른 부산 인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운동권 인맥은 주로 노 대통령과 정치활동을 함께한 ‘동지’적 성격이 강한 반면 부산상고 인맥은 조직과 자금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군’ 역할을 했다. 84년 당시 부산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대통령이 최도술 전 비서관을 줄곧 사무장으로 채용해 온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노 대통령은 주지하다시피 부산상고 출신이다. 부산상고가 부산의 주요 고등학교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당시 부산을 대표하는 고등학교로는 경남고와 부산고 등이 꼽혔다. 중앙 정치무대뿐 아니라, 부산을 근거로 하는 지역 정치권에도 이들 경남고와 부산고 인맥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변호사 업계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굵직굵직한 사건은 거의 대부분 경남고 또는 부산고 출신 변호사가 ‘싹쓸이’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상고 출신 노무현 당시 변호사에게는 부산상고 동문들을 중심으로 한 금융계 및 재계 인맥들이 의뢰하는 사건이 주요 수입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당시 변호사가 최 전 비서관을 사무장에 발탁하게 된 배경 중 하나는 그가 부산상고 출신 변호사 노무현에게 부산상고 동문들을 연결시켜줄 적임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대통령은 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88년 총선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정치권 진출 이후 노 대통령은 자금을 이원화해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구당 사무국장은 통일민주당 당료 출신 이석렬씨에게 맡겨 공식 당비를 관리하게 했고, 최도술 전 비서관에겐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도록 하면서 비공식적인 자금 관리를 맡겼던 것이다. 이호철 민정비서관은 국회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운동권 인맥이 주로 외부 활동 등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 행보를 같이하는 동안, 최 전 비서관으로 대표되는 부산상고 인맥은 대부분 음지에서 노 대통령을 보좌해 온 셈이다. 이 과정에서 최도술 전 비서관은 주로 ‘회계책임자’ 역할을 맡아 왔다. 사람을 한 번 신뢰하면 계속 ‘믿고 맡기는’ 노 대통령의 성격도 여기에 한몫했다.
98년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뒤 노 대통령은 서갑원 정무비서관을 지구당 사무국장에 임명했다. 이때도 최 전 비서관은 ‘회계책임자’로 참여했다. 노 대통령이 종로를 떠나 부산 출마를 준비할 때에도 사무국장은 부산상고 출신으로 노 대통령의 선배인 지구당 당료 출신 박청길씨가 맡았고, 최 전 비서관은 경리부장으로 일했다.
주로 운동권 출신 인맥이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는 동안 최도술 전 비서관은 일반에 잘 공개되지 않는 ‘회계책임자’로 가장 내밀한 일을 맡아온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둘러싸고 운동권 인맥과 부산상고 인맥이 공존하면서 알력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최도술 전 비서관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받아왔던 이호철 민정비서관과 한때 상당한 갈등관계에 놓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선 때 일이다. 부산시 선대위에는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비서관, 정윤재 위원장 등이 상층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지도부는 각종 선거 계획을 수립하면서 ‘자금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이상적’인 사업계획을 종종 수립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막상 선거 캠페인을 벌일 때면 부산 선대위 총무부장을 맡고 있던 최도술 전 비서관과 의견 충돌이 종종 있었다는 것. ‘돈 없이 조직이 되나…’ ‘돈에 맞춰 행사규모를 줄여라’는 최 전 비서관의 주문 때문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부산 선대위에서는 국민경선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부터는 최 전 비서관을 선거계획 수립 시점부터 참여시켜 ‘선거 자금’을 감안한 사업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의 ‘역할’을 참모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
▲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은 최도술씨의 비자금 수수혐의에 대해 사과하고 재신임을 묻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왼쪽).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같은 날인 10일, 정무위의 금감원 국감에 증인으로 채택된 최도술씨의 빈자리가 눈에 띈다. 이종현 기자 | ||
당시 부산 선대위 내에서는 최 전 비서관이 ‘부속실장에 기용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 전 비서관은 전격적으로 총무비서관에 기용됐고, 총무비서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부산 인맥을 관리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산 선대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의 전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부산 선대위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가면 만날 만한 사람이 최도술 비서관밖에 없었다. 문재인 수석이 만나주겠나, 아니면 이호철 비서관이 만나주겠나. 그나마 사람 좋고 넉넉한 최 비서관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총무비서관에 기용된 이후 최도술 전 비서관의 눈에 띄는 행보는 종종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한 예로 이호철 비서관 등이 조용히 부산을 방문하고 귀경하는 데 반해 최 전 비서관은 행사 이후 지인들과 함께 떠들썩하게 식당으로 몰려다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청와대 인사는 “최 전 비서관은 자연인으로선 호감이 갈 만한 인물이지만 ‘공인’의식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최도술 전 비서관의 눈에 띄는 행보는 ‘청와대 출입증’을 ‘남발’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내 인사와 자금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자리. 최 전 비서관이 청와대에 입성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가까운 지인 몇 사람은 청와대 출입증을 비교적 손쉽게 발급받았다. 물론 노 대통령과도 가까운 인사들이었다.
반면 인수위에 참여했다 청와대에 입성한 행정관급 인사들은 신원조회를 이유로 몇 달씩 출입증을 발급받지 못해 ‘임시 출입증’을 달고 다녀야 했다. 자연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최 전 비서관의 친소에 따른 ‘출입증 우선 발급’은 역대 정권에서부터 청와대에 근무했던 경호실 및 비서실 직원들로부터 적지 않은 눈총을 받았다.
심지어 함부로 남발돼서는 안되는 ‘출입증’이 청와대에 상시적으로 근무하지 않는 외부 인사들에게도 발급돼, 보안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태위태하다’던 청와대 직원들의 우려는 그가 지난 8월 총선 출마를 명분으로 청와대를 떠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최 전 비서관의 위태로운 행각은 엄청난 위력의 부메랑이 되어 다시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이제 그는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출금 상태에 놓여 있다.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에도 꾸준히 부산 인맥을 관리해 온 그에게 검찰은 SK 비자금 수수 사건 외에도 추가적인 자금 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메스를 댈 태세다. 그의 ‘입’에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이 달려 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