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인체 무해 주민과 협의할 사안 아냐” vs 주민 “그렇게 안전하면 너희 동네 설치해”
지난 9월 28일 서울 동작구 주민들이 기상청 본청 앞에 모여 X-밴드 레이더 설치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출처=채널에이
지난 9월 28일,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본청 앞에서는 동작구 주민들과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동작갑), 이창우 동작구청장, ‘기상청 X-밴드 레이더 설치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대표 심종수 중부대 항공서비스학과 교수)’ 등이 모여 X-밴드 레이더 설치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날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된 기상청의 X-밴드 레이더 설치 결정은 지방자치를 훼손하는 비민주적 처사”라고 지적했다. 기상청이 설치의 명확한 설명이나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설치 장소를 확정했다는 것이다.
기상청의 레이더 설치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은 지난 9월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기상청이 레이더 설치 사실을 법적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라고 지적하면서부터다. 실제로 동작구 주민들은 물론, 동작구청 역시 기상청의 레이더 설치 사실과 진행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상청이 이번에 설치하는 X-밴드 레이더(제조명 E750DP)는 미국의 관측 레이더 제조업체인 EWR이 생산하는 레이더다. EWR로부터 3년간 48억 원에 레이더를 빌려 내년 5월부터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 설치 위치는 기상청 본청을 포함해 인천기상대, 강원 평창군 황병산 등 3곳이다. 이 가운데 동작구와 더불어 인천기상대가 설치되는 인천시 중구 주민들 역시 이에 반발해 집단 민원 접수 등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차적으로 집단 행동에 나선 동작구 주민들은 기상청 인근에 아파트, 주상복합 등 주거단지 약 5000세대가 밀집해 있고 학교와 체육센터, 공원 등 다중이용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기상청에서 수도여자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까지는 직선거리로 120m, 보라매파크빌 아파트는 약 80~100m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다. 맨션, 빌라 등 기타 주거지 역시 약 200m가량으로 기상청과 인접해 있다.
신대방2동에 거주하는 주민 신 아무개 씨(43)는 “기상청 바로 인근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주민들이 이용하는 보라매공원도 바로 코앞”이라며 “정부가 아무리 ‘인체에 유해할 정도로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해도 이처럼 주거 지역에 불안함을 유발하는 시설을 설치한다면 적어도 주민들에게 사전 공지는 했어야 할 것 아니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주민들이 가장 큰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X-밴드 레이더가 발생시킬 전자파다. 이들은 기상청이 설치하려는 X-밴드 레이더가 사드와 같은 주파수 대역(8~12GHz)을 사용하고 있어 전자파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사드 역시 전자파 문제로 인해 유해성 논란이 이어져 왔고, 결국 기존 발표했던 부지보다 전자파 논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제3부지인 성주 골프장에 배치하기로 결론내린 바 있다.
주민들은 사드와 같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는 X-밴드 레이더 역시 그 유해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상청은 내년 5월 시범 운영 시 X-밴드 레이더가 발생시키는 전자파의 인체 위해성 여부를 측정할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최적의 대안도 모색하지 않고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일방적으로 설치한 뒤 전자파 가동 측정을 하겠다는 건 터무니없다”며 “이미 설치를 끝내고 나서 인체에 위해할 만큼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그 말을 누가 믿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이 가장 반발하는 전자파 노출 문제와 관련해, 기상청은 X-밴드 레이더 제조업체인 EWR 측의 말을 빌려 입장을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전자파 노출 시 레이더 주방사방향에서 71m 이상 떨어져 있고, 레이더 몸체로부터 7m 이상 떨어져 있으면 인체에 무해”하다.
기상청의 X-밴드 레이더는 하늘을 향해 회전하기 때문에 주방사영역(방향)은 하늘이 된다. 레이더가 향하고 있는 방향보다 낮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는 곳은 부방사영역으로 전자파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기상청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레이더 설치 지역보다 낮은 고도의 주거지역은 레이더로부터 약 7m 이상 벗어나면 안전하다는 것.
X-밴드 레이더 E750DP는 기상청 옥상 첨탑 해발고도 약 87m에 설치된다. 기상청 인근에 위치한 주거지 중 이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건물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업체가 밝힌 안전 기준에 의거한다면 동작구의 경우는 레이더 주 탐지방향에서 400m 거리에 아파트를 비롯한 고층 건물이 세워져 있지만 안전거리인 71m를 벗어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기상청의 입장이다.
기상청 레이더 분석과의 한 관계자는 “E750DP처럼 안테나 형태의 레이더는 인체가 직접 마주보지 않는 이상 전파 노출이 이뤄지지 않는다”라며 “수직으로 설치되는 레이더가 향하지 않는 방향의 낮은 영역은 레이더 본체로부터 7m만 벗어나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레이더 몸체로부터 7m 이상으로 벗어날 경우 전자파의 수치가 1만 분의 1 정도로 저감되기 때문에 인체 유해성을 논할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상청 측은 이번에 새로 설치하는 X-밴드 레이더가 사드의 레이더와는 다르다고 밝혔다. 특히 출력과 방사 부분에서 완전한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상청의 X-밴드 레이더인 E750DP의 경우는 출력이 약 1킬로와트(kw=1000w)로 최대 관측 방향은 150km가량이다. 사드의 X-밴드 레이더인 AN/TPY-2의 경우 정확한 스펙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최대 관측 방향은 1500km 상당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매우 큰 전력 공급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E750DP보다 훨씬 강한 전자파를 발생시킨다고 추측할 수 있다.
또 AN/TPY-2는 움직이지 않고 고정된 상태로 한 곳을 향해서 전자파를 방사하지만 E750DP는 360도를 지속 회전하기 때문에 1분 동안 노출될 수 있는 시간은 한 지점 당 약 0.15초에 불과하다는 것이 기상청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단지 같은 주파수 대역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E750DP가 사드와 마찬가지의 위해시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렵다고 기상청 관계자는 답했다.
그러나 이처럼 위해성 논란에서 자유롭다는 기상청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주민들의 의견 수렴은 일절 없이 설치를 결정했다는 점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미 사드로 인해 전자파 위해성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부각돼 왔다. 더욱이 기상청이 수입하려는 레이더가 사드와 같은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상청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E750DP가 사드 레이더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전자파를 발생시키고, 인체 유해 가능성이 미미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설치에 앞서 지자체와의 협의는 거쳤어야 했다는 것.
이에 대해 기상청 관계자는 “기상 레이더는 인체를 향해 전파를 방사하지 않기 때문에 인체 유해 시설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주민 허가를 받거나 협의를 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며 “실제로 X-밴드 레이더를 이용한 기상 관측 장비는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 해외 다수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사업은 그대로 추진하되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전자파 인체 무해성과 국내외 운영 사례 등을 공유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일부터 저지르고 급하게 반발을 눌러 무마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으며 ”정말 문제가 없다면 당신들 집 근처에 설치해라“라며 단체 행동을 지속 강행할 계획을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