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8년 묘향산을 답사한 정상영 명예회장(왼쪽에서 다섯번째) 일행. 왼쪽 두번째는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 ||
‘30대 중반이던 아우 상영이가 자신이 운영하던 금강슬레이트를 놔두고 현대자동차 부사장으로 와서 채권 회수팀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채권 회수를 못해 직원들 월급이 한두 달씩 밀리고 있을 무렵, 하루는 큰형님(정주영)이 동생 상영이를 부사장으로 발령 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물러 터져 갖고 어떻게 수습할 게야?”
“상영이도 많이 힘들 겁니다.”
“막내는 악바리라서 너보담 나아!” 큰형님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사실 막내 동생 상영이는 ‘장사의 천재’라고 할 정도로 사업을 일구는 수완이 뛰어났고, 큰형님의 신임을 한몸에 받았으며, 상황판단과 시장 분석하는 눈이 정확했다.
연체금 회수에 나선 상영이의 의지는 대단했다. 한번은 누가 들어도 알 만한 거물 정치인의 이름이 외상장부에 있어 연체반 직원들이 돈을 받으러 갔는데 주먹깨나 쓰는 그의 경호원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보고를 들은 아우는 직접 앞장서서 그들과 맞서며 끝끝내 돈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1970년 말부터 연체반을 이끈 상영이는 연체문제가 해결이 되고 회사 경영이 정상궤도에 오르자 1973년 초 금강슬레이트로 돌아갔다.
큰형님은 상영이를 두고 ‘악바리’라는 표현을 했지만, 동생은 아무 일에나 그 악바리 기질을 발휘하는 게 아니었다.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 불의를 보면 결코 참지 못하는 정의감, 그리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지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믿음직한 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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