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7월 청계천을 돌아보는 이명박 시장. 안전모를 쓴 모습이 현대건설 CEO 시절을 연상시킨다. | ||
두 사람은 출생 배경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 시장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생 때부터 김밥을 팔면서 학교를 다녔을 정도로 자수성가의 대명사로 통한다.
반면 손 지사는 부모님이 모두 교사였기 때문에 비교적 풍족하게 자랐다. 하지만 손 지사도 세 살 때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 밑에서 엄하게 자라야 했다.
그 뒤 이 시장은 낮에는 ‘풀빵’을 구워 팔아가며 고학으로 동지상업고등학교 야간부와 고려대 상대를 졸업했다. 이 시장의 학창 시절이 가난을 이기기 위한 싸움이었다면 손 지사의 학창 시절은 ‘낭만시대’였다.
손 지사는 경기중학교에서 밴드부 활동을, 경기고 시절에는 연극반 활동을 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도 연극반을 계속했는데 선배들로부터 ‘대배우’가 될 자질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시장과 손 지사는 다른 성장 배경을 가졌지만 학생운동에 관해서는 ‘통하는’ 점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한·일회담 반대 시위와 관련해 투옥된 경험이 있기 때문.
대학을 졸업한 뒤 두 사람은 ‘비단길’과 ‘자갈밭’을 걸었다. 이 시장은 당시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이었던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했다. 이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외와 국내의 현장에서 일한 결과 입사 5년 만에 이사직에 오르고 12년 만인 서른다섯 나이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로 취임,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했다. 그 뒤 대권의 큰 꿈을 안고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다.
▲ 지난해 2월 고 제정구 의원 4주기 추모식에서 연설하는 손학규 지사. 손 지사는 한때 빈민운동을 했다. | ||
지금도 손 지사는 “한창 노동운동 하던 시절에는 옥수수도 팔고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젊음을 불태웠다”면서 그때를 회상하곤 한다. 그 뒤 손 지사는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영국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두 사람의 정치 입문은 비슷한 때에 이루어졌다. 이 시장은 지난 92년 민자당에 영입돼 14대 전국구 의원으로 여의도에 첫 등원했다. 손 지사는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 서강대 교수를 지내다 93년 경기 광명 보궐 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당선돼 국회에 들어왔다.
그 뒤 이들의 꿈은 초지일관 대권에 모아졌다. 먼저 이 시장은 차기 대권으로 가는 확실한 길인 서울시장에 무려 세 번이나 도전한 끝에 결국 꿈을 이루었다.
95년과 98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다가 2002년에야 드디어 그 꿈을 이루게 된 것. 손 지사도 차기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는 최대 광역단체 중 하나인 경기도지사를 지내기 위해 재수 끝에 ‘도백’의 꿈을 이루었다.
이 시장은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강한 추진력을 지닌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은퇴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연극배우”라고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손 지사는 강한 카리스마보다는 설득과 화합을 중시하는 온건주의자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