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문희상 당선자는 김혁규 전 지사의 총리 지명은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지만 노 대통령이 직접 뛰지는 않는다. 노 대통령은 ‘정치는 일임’ 원칙을 선포하고 정치 분야는 가급적 당에 일임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리고 ‘노심’을 이해하는 인사들을 통해 간접적 지휘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지난 17대 총선을 통해 원내에 재입성한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대통령 정치특보를 맡고 있기도 한 그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누구보다도 대통령의 정치적 의중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앞으로 그의 ‘입’을 통해 청와대의 정치적 입장이 명확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일요신문>은 지난 5월14일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의 ‘특무상사’였던 문희상 당선자(의정부 갑)를 여의도에서 만나 앞으로의 정국 전망과 청와대 재직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평결이 있기 바로 하루 전인 지난 5월14일.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대통령 직위가 날아갈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날을 불과 하루 앞두고 있었지만, 그는 탄핵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었다.
“단 한번도 인용된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오히려 각하되어야 옳다고 본다”며 운을 뗀 그는 “대통령 탄핵은 법률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가령 대통령이 운전을 하다가 딱지를 떼였다고 하면 그건 불법행위다. 법을 어겼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탄핵사유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탄핵소추 아닌 다른 이유로 형사상 소추가 되면 그것으로 인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다. 탄핵은 야당의 교만과 총선 전략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바로 다음 날 그의 바람대로 각하는 되지 않았지만 노 대통령은 비로소 탄핵의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 참여정부가 어떤 정치지형도를 그려나가느냐에 따라 ‘상생의 정치’도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참여정부가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대야 기본 전략을 어떻게 구사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 전 실장의 의중대로라면 청와대는 강·온탕을 번갈아 가며 정국을 이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먼저 상생의 정치에 대한 첫 바로미터가 될 김혁규 총리후보 인준 문제다. 한나라당은 ‘배신자를 굳이 상생의 마당에 끌어들여 판을 흐릴 필요가 있느냐’며 김혁규 총리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도 이에 대해서만큼은 양보의 뜻이 전혀 없음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문 전 실장도 김혁규 총리론에 대해 적극 옹호하고 있다. 먼저 그의 의중을 들여다봤다.
─김혁규 총리론에 한나라당이 격앙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가. 한나라당이 도지사에 세 번이나 공천했다면 그의 자질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자질에 문제가 없다면, 그럼 무슨 문젠가. 노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청와대에 있을 때 여러 번 그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이 시대 이 시점에 딱 맞는 사람이다. 민생과 경제를 챙기고 지방화 시대에도 적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CEO형 총리로서 적임자다.
─‘상생의 정치’를 부르짖으면서 왜 하필 한나라당이 분명히 반대할 사람을 내세우느냐는 지적도 있는데.
문 전 실장은 김혁규 총리론에 대해서 어떤 양보도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특히 그가 ‘야당의 적은 의석 수’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국회에서의 표결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하지만 여권이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각종 개혁 입법의 경우 17대 개원 초기부터 이 문제를 가지고 힘을 빼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17대 개원 뒤 6개월 동안은 쓸데없는 정쟁 붙을 일들은 일부러라도 뺐으면 한다. 이를테면 언론개혁, 보안법 개폐 등 민감한 문제 가지고 괜히 싸우다가는 아무 것도 못한다. 왜 지금 그런 문제들부터 꺼내 놓고 싸워야 하느냐. 금방금방 합의가 되는 것부터 빨리빨리 해서 국민들이 ‘아, 이제 정치권이 일 좀 하는구나’ 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 전 실장은 개혁 입법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면서도 “상생의 정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야당이 제일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향후 정국과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은 이번 총선을 통해 두 가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싸우지 말고 상생하라는 것과 민생경제를 챙기라는 것이다. 여야가 서로 싸우기만 하다가 결국 대통령까지 탄핵을 하게 된 것 아닌가. 우리도 우리지만 야당도 크게 반성해야 한다. 제일 많이 반성해야 한다.”
문 전 실장은 상생으로 가는 길에서 야당의 반성에 보다 큰 방점을 찍고 있다. 그는 “양쪽 다 지난 일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서로 너는 왜 상생 안 하냐고 탓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여당만 자꾸 양보하라고 하지 말고 야당은 왜 양보 못하나. 총리 인준 한번 해준다고 큰일이 나나. 대통령이 그 사람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시대의 최적격자라고 하는데 한번 해주면 어디 난리가 나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엔 말머리를 노 대통령에 대한 궁금증으로 돌려봤다.
─역대 대통령과 노 대통령을 비교한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용장이라고 볼 수 있다. 용기와 배짱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머리가 좋은 장수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YS와 DJ를 섞어놓은 것 같은 독특한 캐릭터다. 승부수를 던지는 게 꼭 YS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하지만 논리적은 측면은 DJ와 똑같다. 말의 논리전개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노 대통령을 지도자로서 평가한다면.
▲지·덕·용을 골고루 갖춘 장수가 아무리 잘해도 못 이기는 장수가 있다. 바로 ‘복장’이다. 천운이 있는 사람을 말한다. 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대통령에 극적으로 당선된 것이나 재신임 탄핵 등 온갖 위기를 헤쳐 나오면서 운도 많이 따랐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운이 아니다. 운이라는 것은 천시다. 천시는 시대정신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을 보는 안목이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그게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운이 아니다. 시대정신을 개척하는 것이 능력이고 지도자의 자질이다. 민심이 천심이고 국민의 소리를 읽는 그것은 통찰력이다. 여론조사를 하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냥 온몸으로 느끼는 것인데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회창씨는 시대정신을 몰랐기 때문에 구닥다리 시대로 끝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언변’이 문제가 된 적이 많았다. 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신경을 쓸 생각인가.
▲한번은 대통령에게 ‘말’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말을 신중히, 천천히 해야 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은 ‘그런 발상 자체가 전형적인 제왕적 대통령 이미지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특별히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만 한다. 언론에서 자꾸 얘기하고 또한 모든 사람들이 ‘대통령이면 그에 맞는 어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대통령도 왕처럼 권위적으로 얘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때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대중연설을 할 때다. 대통령은 그럴 때 분위기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깽판을 쳤습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거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대통령의 탈 권위적인 말에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그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대통령이 왜 그런 식으로 얘기하느냐’고 하면서 비난한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연설을 하면 그게 대중연설인가. 책 읽듯이 또박또박 얘기하면 그게 말이 되느냐. 대중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대통령 본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리에게는 대통령 상에 대한 선입관이 너무나 강하게 박혀 있다. 항상 근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이와 정반대다. 내가 볼 때 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런 통념과는 정반대일 경우였다. 예를 들어서 사관학교 졸업식 같은 데 참석했을 때 대통령이 너무 긴장해서 ‘쉬어’ 명령도 하지 않고 연설을 한다든지. 긴장되는 순간에 모두 막 웃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권위주의적 대통령은 아마 그럴 때가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경례 딱 붙이고 그런 것…. 그런데 우리가 볼 때 노 대통령은 그런 근엄한 자리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대통령의 모습이 보통 사람과 같이 느껴질 때가 가장 대통령답다고 생각한다.
─청와대에서 이광재 실장 등 386 세대가 많이 교체되었는데 그들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386 세대라는 것은 역사적인 의미일 뿐이다. 실제로 그 나이가 되면 큰일을 많이 할 때다. 국민의 정부 5년 동안에도 현재의 386 세대와 비슷한 나이의 젊은이들이 많이 활동했다. 왜 그 사람들만 가지고 뭐라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국회의원 보좌관들 중에서 386 빼면 일이 되겠나. 그 사람들이 주력부대다. 그 사람들만 일부러 나서지 말라고 해도 이상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일부 386들은 비리 혐의에도 연루되는 등 문제가 있지 않았나.
▲세대라는 게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자꾸 바뀌는데 왜 386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권위주의적 시대의 발상을 가지고 노 대통령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잘못하는 이유를 그들이 보기에 미숙하기 이를 데 없는 386이라는 어린 사람들이 대통령을 코치하는 것에 대해 뭔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대통령이 뭔가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겠는데 1인자에 대해서 뭔가 비판하는 것이 우리 의식에는 아직 금기니까. 그것도 사실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로 핑계거리를 386을 끌어다가 자꾸 이간질시키는 것이지 않나 하는 것이 내가 보는 관점이다. 실제로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많이 했다. 무슨 특별히 잘못한 게 아니다.
─일각에서 386의 대표적 주자인 이광재 전 실장이 잘못한다고 물러나라고 할 때 언론이나 국민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단호하게 왜 이야기하지 않았나.
▲여러 번 했다. 참으로 아까운 사람 하나 희생된다고. 이 전 실장은 아주 유능하고 확실한 사람이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애국심도 강하다. 수뢰 혐의도 결과적으로 무혐의 아닌가. 그래서 국회의원으로 다시 살아 나왔지 않나. 우리가 그 사람 많이 키워준 측면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 지금 청와대 몇 급 비서관 아닌가. 그래도 국회의원이면 차관급 아닌가. 이제는 젊은 기수다. 앞으로 그 사람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할 수 있는…. 그만큼, 얼마나 언론이 그 사람 키워줬나.
─이 전 실장이 대통령 꿈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 사람에게 물어볼 일이고. 내가 볼 때는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할 수 있으니까.
─문재인 전 수석은 청와대를 왜 떠났나. 일이 부담스러웠나.
▲전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이 아주 좋아했다. 문재인처럼 사물을 명확히 보는 안목과 역사의식이 있으면서 능력을 갖춘 사람이 흔치 않다. 거기다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도 있고. 그리고 자기가 해야 될 일, 안해야 될 일을 분명히 알고 있다. 분수 넘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는 정치인 적성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는 안하려고 하더라. 내가 오죽하면 ‘사슴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겠나. 그 사람 눈을 보고 있으면 사슴 같다. 밝은 눈을 가지고 있다. 사물을 그대로 보는 그런 사람이다. 아주 드물게 보는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데 무슨 ‘부산파’의 수장처럼… 이를테면 무슨 광주파나 목포파처럼 부산파의 우두머리 뭐 이렇게 자꾸 소문이 난다. 나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부산파라는 게 뭔가. 부산사람은 청와대에 한 사람도 들어오면 안 되나. 그건 이상한 것 아닌가. 부산사람이라면 지분이 있는 것 아닌가. 청와대 들어오려면 비서관이나 대통령 측근으로 오려면 당연히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 와야지 정반대의 사람이 온다면 이상한 것 아닌가. 잘못된 것이 아니지 않나. 나는 그 대목이 이해가 안 된다(문 전 실장과 인터뷰를 가진 지 사흘 만에 문재인 전 수석은 시민사회수석으로 청와대에 복귀했다).
문 전 실장은 둥글둥글한 그의 외모만큼이나 여야에 ‘적’이 없는 사람이다. 상생의 정치에 목이 마른 여의도에, 그의 ‘무적정치’가 오아시스처럼 빛나기를 기대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