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선 허점 이용 ‘박근혜 역지원’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최근 범여권 핵심부가 작성한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대한 문제점’ 문건을 입수했다. ‘여론조사 역선택’을 적극 활용해 범여권이 상대하기 쉬운 후보를 지원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정치권 주변에서 나돌고 있는 ‘이명박 죽이기’ 플랜의 실체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요동치고 있는 대선정국에 또다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이 전 시장에 대한 범여권의 검증 공세는 그야말로 십자포화다. 범여권 빅뱅이 현실화되면서 대통합 주도권을 놓고 제 정파가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 전 시장을 겨냥한 협공에는 단일대오를 형성하고 있는 분위기다. ‘대선주자 저격수’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노 대통령은 이 전 시장에 대해 노골적으로 독설을 퍼부으며 공중전을 펼치고 있고 범여권 대선주자들도 본격적으로 ‘이명박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범여권 주자인 정동영 전 의장계인 박영선 의원은 이 전 시장의 BBK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며 검증 칼날을 빼들었고 친노주자인 김혁규 의원도 이 전 시장의 투기성 위장전입 의혹을 연일 제기하고 있다.
급기야 열린우리당은 14일 장영달 원내대표를 비롯한 소속의원 88명 명의로 ‘BBK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범여권이 이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주도하고 있는 대선정국의 대반전을 꾀하기 위해 우선 지지율 1위인 ‘이명박 때리기’에 의기투합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 전 시장 측과 정치권 일각에서는 범여권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3일 이 전 시장 측 박형준·진수희 공동대변인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열린우리당의 의혹 제기는 의원 개인차원의 정치공세가 아니라 청와대 지시에 의해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정권차원의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러한 의혹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또 “범여권이 대선 본선에서 싸우기 쉬운 상대를 고르기 위해 여러 차례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이명박 죽이기’에 나선 것은 정권연장을 위한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전 시장도 “국민의 지지를 받는 후보를 어떻게라도 끌어내리기 위해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이 ‘이명박 죽이기’ 플랜과 관련해 ‘청와대 배후설’ 등 음모론을 강하게 제기하자 청와대는 법적 대응에 나섰다. 청와대는 14일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상황점검 회의를 열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명박 경선후보 측 박형준·진수희 대변인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이며 명예훼손”이라며 “‘음모가 청와대와 결탁됐는지 안됐는지 모르지만 조짐이 그렇게 보인다’는 발언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라고 반발했다. 청와대는 15일 두 대변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한편 한나라당도 노 대통령이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이 선택한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명백한 선거법 위반행위라고 규정, 선관위 3차 고발 및 검찰 고발을 적극 검토키로 하는 한편 ‘이명박·박근혜 X파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 전 시장 부인의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한 김혁규 의원을 검찰에 고발키로 결정, 맞불작전으로 맞설 태세다.
▲ 11일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한 박근혜 전 대표. | ||
이런 가운데 14일 기자와 만난 열린우리당 중진 A 의원은 “이미 오래전부터 범여권 핵심부를 중심으로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가동돼 왔다”며 “주가조작이니 재산문제니 하는 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하고 이 전 시장을 낙마시킬 수 있는 메가톤급 X파일이 단계별로 공개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메가톤급 X파일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의원은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돈 문제는 별다른 타격을 주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대통령 후보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도덕성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여자문제나 사생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이 전 시장은 경선후보로 등록한 이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내 경선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퇴로가 막힌 만큼 앞으로 이 전 시장을 겨냥한 폭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도 이 전 시장과 관련된 메가톤급 X파일이 준비돼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장 대표는 1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이 대선후보가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며 “그런 중요한 자료들을 우리가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두 후보는 음침한 지난날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태양빛에 내놓으면 국민의 태양빛에 말라 경선을 해볼지 말지 모른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범여권 핵심부가 적당한 시기에 메가톤급 X파일을 공개해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측의 진흙탕 경선을 유도한 뒤 범여권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후보를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최근 입수한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대한 문제점’ 문건에는 범여권 후보가 한나라당 주자 중 상대하기 쉬운 주자를 선택해 역으로 지원한다는 ‘역선택’ 선거 전략이 담겨져 있다. A4용지 석장으로 된 이 문건은 범여권 핵심 당직자가 작성한 것으로 범여권 수뇌부는 문건에 적시된 내용을 바탕으로 보다 체계적인 공략법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 따르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경우 과거 대선과 총선 때 국민참여경선제도를 도입했지만 역선택에 대한 뚜렷한 방지책이 없었으며 지역에서도 공공연한 역선택으로 제대로 된 후보자가 경선에서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진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경선시 3~6위 그룹의 역선택이 1~2위의 당락을 좌우했으며 당시 한나라당 지지당원의 국민경선 참여로 역선택의 문제점이 일부 발생했다는 것이다.
▲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 ||
이런 가운데 친노그룹 대표주자로 부상한 이해찬 전 총리가 이 전 시장의 낙마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사실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전 총리는 14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이명박 전 시장이 흔들리는 것으로 봐선 박근혜 전 대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행사에 앞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만난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가 (상대하기) 더 쉽다. 게임이 쉬워진다”고 말하자 “우리로서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이 전 시장은 너무 약점이 많아 낙마할 것 같다. BBK 의혹, 옥천 땅을 처남에게 넘긴 것 등이 있고 김혁규 의원이 제기한 거주지 이전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 전 시장 측과 정치권 주변에서 범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꽤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가운데 범여권 수뇌부인 이 전 총리와 박 대표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 전 시장 측은 “정권교체 저지 프로젝트가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연출자와 주연, 조연이 다 등장하고 있다”며 거듭 음모론을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 전 시장 측의 한 핵심관계자는 1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노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이명박 죽이기’ 플랜이 가동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라며 “국민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전 시장에 대한 정치공작은 반드시 역풍을 받게 될 것”이라고 분개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범여권 제 세력이 본선 경쟁자로 박 전 대표를 선택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범여권 전체가 ‘이명박 때리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일부 수뇌부는 공공연하게 “박근혜가 더 쉽다”는 말을 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범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플랜과 관련한 갖가지 시나리오와 가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황이나 실체가 드러난 건 없다. 청와대가 배후설을 주장한 이 전 시장 측을 15일 검찰에 고소한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이 입수한 한나라당 후보 경선 대응책 문건은 범여권이 어떤 식으로든 한나라당 경선에 개입하고자 하는 정황이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구체적으로 ‘이명박 죽이기’와 ‘역선택’ 전략이 어떻게 진전돼 나갈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며 폭로정국에 또 다른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