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쇼트? 주식시장에만 있는 거 아니에요
F1 경주용 차량은 극단적 쇼트 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해 극한의 성능을 짜낸다.
# 도요타 86, 스퀘어 엔진을 ‘브랜드화’
‘스트로크(stroke)’는 엔진 내부의 피스톤이 끝에서 끝으로 이동하는 동작 또는 길이를 뜻한다. 즉 왕복 운동 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지점을 ‘상사점’, 가장 낮게 내려가는 지점을 ‘하사점’이라고 하는데, 이 둘 사이의 거리를 스트로크라고 한다. 또 하나 알아둘 것은 피스톤의 지름을 뜻하는 ‘보어(bore)’다.
‘보어’와 ‘스트로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똑같은 배기량의 엔진이라도 특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맥주잔의 예를 들면, 똑같은 500cc 잔이라 하더라도 지름이 길고 높이가 낮은 잔이 있는가 하면, 지름이 짧고 높이가 긴 잔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림] 보어·스트로크에 따른 엔진 분류
지름이 짧고 높이가 긴 잔처럼 생긴 실린더를 ‘롱 스트로크 엔진(또는 언더 스퀘어 엔진)’이라고 한다. 피스톤 지름은 짧으면서 움직이는 거리가 긴 것이다. 반면 지름이 길고 높이가 낮은 참치통조림처럼 생긴 실린더는 ‘쇼트 스트로크 엔진(오버 스퀘어 엔진)’이라고 한다. 그리고 보어와 스트로크가 동일한 엔진을 ‘스퀘어 엔진’이라고 한다. ‘스퀘어 엔진’은 자동차 관련 콘텐츠에서 종종 나오는 말이다.
쇼트 스트로크 엔진은 엔진 회전수를 빨리 올리는 데 유리하다. 스트로크가 50㎜라면 100㎜인 것보다 같은 시간에 2배 빨리 회전수를 올릴 수 있다. 따라서 엔진 회전수를 급격하게 줄였다 급격하게 늘리는 경주용에 적합하다. 경주용 차량 외에 모터바이크에도 쓰인다. 작은 배기량으로 높은 엔진 회전수를 조절하며 타는 재미가 모터바이크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롱 스트로크 엔진은 엔진 회전수를 빨리 올리는 것은 어렵지만, 압축비가 높으므로 폭발력이 크다. 의료용 주사기의 출구를 막고 피스톤을 밀었을 때 미는 거리가 멀수록 더 힘든 것과 같은 원리다. 롱 스트로크 엔진은 큰 힘이 필요한 상용차나 일정한 속도로 오랫동안 운전하는 투어러(tourer)에 알맞다. 압축비가 커야 하는 디젤엔진은 대부분 롱 스트로크 엔진이다.
슈퍼스포츠 타입의 모터바이크는 쇼트 스트로크 엔진을 이용해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쏘나타와 같은 대중차에 들어가는 가솔린 엔진은 대부분 스퀘어 엔진에 가깝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쏘나타 시리즈에 장착되고 있는 쎄타엔진은 ‘보어×스트로크’가 ‘86.0×86.0㎜’인 스퀘어 엔진이다. 부피를 계산해 보면 정확히 499.6cc가 나온다. 4기통이므로 2000cc급 엔진이 되는 것이다. 올해 출시된 신형 말리부 2.0터보 엔진 또한 보어와 스트로크가 86㎜인 스퀘어 엔진이다.
이렇게 보니 도요타자동차에서 스포츠세단 ‘86(하치로쿠-일본어로 ‘팔육’을 뜻한다)’을 내놨을 때 현대차와 GM 엔지니어들이 쓴웃음을 지었을 것 같다. ‘스퀘어 엔진? 그게 뭐라고.’ 도요타는 스퀘어 엔진임을 강조하기 위해 차명을 86으로 하고, 엠블럼 지름과 머플러 팁의 지름을 86㎜로 만드는 등 86이란 숫자를 이용해 재미있는 차, 즐길 수 있는 차임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팩트에서 매력을 만들어내는 역량이 능력이다. 한국 자동차회사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도요타 86은 보어와 스트로크가 86㎜로 동일한 스퀘어 엔진이다. ‘86’이란 숫자가 씌인 엠블럼의 직경도 86㎜로 만들어 재미를 추구하는 자동차임을 강조한다.
F1 머신은 극단적인 쇼트 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한다. 매 시즌 규정된 엔진 규격대로 제작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스트로크 39.7㎜로 보어 98.0㎜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중형 승용차와 동일한 2400cc 배기량으로 중형차의 4배급인 최대 740마력이라는 파워를 내뿜는다. 최대파워는 2만rpm(rotation per minute: 분당 회전수)에 가까운 엔진 회전에서 나온다.
일반적인 중형차의 최대 rpm은 7000을 넘지 않는다. 일반 승용차의 3배에 가까운 엔진 회전수를 사용하므로 엔진이 견뎌내지 못하고 빨리 망가진다. F1 머신은 4~5회 경기에 참여하고 나면 엔진을 다시 바꿔야 할 정도다. 이처럼 연비와 내구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엄청난 성능을 낼 수 있지만, 시판되는 자동차는 연비와 내구성이 좋아야 하므로 F1 머신처럼 극도의 쇼트 스트로크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 F1 머신, 극단적 쇼트 스트로크 엔진
한편 F1 주최 측은 2014년부터 2400cc 자연흡기에서 1600cc 터보엔진으로 규정을 바꿨다. 엔진 회전수도 1만 5000rpm으로 제한했다. 기술적 허용치를 계속 낮추는 이유는 인간의 운전능력이 아니라 기술 그 자체의 경연장이 돼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F1 레이싱은 모터쇼가 아니라 스포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고막을 꿰뚫는 듯한 엔진음 소리가 작아졌다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대차 싼타페. 압축비가 높은 디젤차는 대부분 롱 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한다.
쇼트 스트로크 엔진을 주로 사용하는 모터바이크도 레이싱카와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BMW의 레이싱 바이크 S1000RR은 999cc 배기량이지만, 1만 3500rpm에서 200마력에 가까운 출력을 낼 수 있다. 참고로 쏘나타는 2000cc 배기량으로 6500rpm에서 최대 168마력을 낸다. 다만 같은 모터바이크라 하더라도 레이싱용이 아닌 투어러 모델인 F800GT의 경우는 798cc 배기량으로 최대 8000rpm에서 90마력을 낸다.
흔히 볼 수 있는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또는 디젤 세단에 들어가는 디젤엔진은 대부분 롱 스트로크 엔진이다. 현대차 싼타페에 들어가는 2.2ℓ VGT 엔진의 경우 ‘보어×스트로크’는 ‘85.4×96.0㎜’로 스트로크가 10.6㎜ 더 길다. 디젤은 착화점(불붙는 온도)이 낮아 자연발화를 하므로 폭발을 위해선 고온·고압으로 압축해야 한다.
압축비가 크면 폭발력이 크고, 따라서 소음과 진동도 커진다. 이를 견뎌내기 위해 엔진블록 또한 두껍게 만들다 보니 엔진 무게가 늘어난다. 따라서 소음과 진동이 다소 용인되고 덩치가 큰 트럭, 버스, SUV 등에 사용됐으나 2000년대 말 이후 기술 발달로 소음·진동이 줄어든 디젤엔진이 세단형 승용차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코너링을 잘 하기 위해 엔진 회전수를 빠르게 줄였다 늘렸다 하려면 쇼트 스트로크 엔진, 장거리를 여유롭게 운전하려면 롱 스트로크 엔진이 적당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 쇼트 스트로크 엔진은 값비싼 스포츠카에 한정적으로 사용되고, 가솔린 엔진은 스퀘어 엔진이, 디젤 엔진은 롱 스트로크 엔진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모터스포츠를 보거나 키덜트(아이의 취향을 간직한 어른)적으로 자동차의 만듦새를 탐구하려 한다면 이러한 지식들이 기분을 배가시켜 줄 것이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