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밀·K타워·K스피릿·K스타일허브…국책사업도 미르가 정부보다 먼저 기획
# 코리아에이드 K밀 사업, K타워 프로젝트 의혹
‘K시리즈’ 가운데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은 K밀(K-meal)사업이다. 미르재단은 코리아에이드와 그 세부 사업인 K밀과 관련해 농림축산식품부와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연타를 맞았다. 먼저 농림축산식품해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K밀 사업을 미르재단이 주도하며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식의 해외홍보와 정부원조개발의 핵심공공기관인 한식재단과 한국농어촌공사가 배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월 16일 등록된 K밀 사업 구성계획서에는 한식 홍보반으로 한식재단이, 총괄반으로 농어촌공사가 편제돼 있었으나 현재 K밀 사업에는 한식재단과 농어촌공사가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애초 추진계획서에 따르면 사업은 개도국 발전 및 식량난 해결을 돕고 한식도 함께 소개하고 향후 농업 정부원조개발을 지원해 농산업 해외진출로 확산하도록 추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업 진행 과정에서 신생 재단법인 미르가 이를 주도했고, 10년 동안 한식을 홍보해 오던 공공기관인 한식재단과 12개국에서 14개 농업 정부원조개발 사업을 맡은 주무 기관인 농어촌공사는 사업에서 제외됐다.
원조 수여국인 케냐 정부가 농업원조를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미르재단이 개발한 쌀 가공식품과 기술 공급에 집착해 농업 정부원조개발 사업은 뒷전으로 밀려난 정황도 포착됐다. 외교부 문서에 의하면 케냐 정부는 농촌 소외지역의 발전을 위해 투자가 가장 필요한 분야가 농업 분야임을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식품 가공기술 전수를 통한 영양개선사업 추진계획을 강조했다.
미르재단의 첫 작품인 K-Meal 쌀가공식품 2종(쌀크래커와 쌀파우더). 사진제공=김경협 의원실
‘배제’ 의혹에 한식재단 측은 “배제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식재단 관계자는 “한식재단이 지난 2월 TF회의를 참석했으나 이후 K밀 TF 측에서 3월 아프리카 현장 답사를 다녀온 뒤 행사내용이 ‘아프리카 현지인 입맛에 맞는 한식과 현지식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또한, 현지에 있는 한식당을 이용하게 돼 우리 재단이 맡을 역할이 없어 상황을 여러 가지로 판단한 끝에 빠지게 됐다”며 한식재단이 K밀 사업에서 하차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미르재단 관계자가 1차부터 7차까지 이어진 TF회의 때부터 참석한 사실이 밝혀져 한식재단이 설명한 하차 과정은 오히려 미르재단 관여 의혹을 키우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위원회 김현권 의원은 “우리 정부가 수여국의 원조 필요 분야에 부합하지도 않는 미르재단의 쌀 가공식품에만 집착했다. 한식 홍보기관인 한식재단이 배제된 것도 한식재단 역할을 미르재단이 도맡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드러난 정부 자료만으로도 K밀 사업은 미르재단을 위한 변칙 사업임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현재 김 의원은 지난 3월 K밀 사업 TF 측이 다녀온 아프리카 현장 답사에도 미르재단 관계자가 참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외교부 국정감사에서는 미르재단이 정부보다 앞서 K밀 사업에 깊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부는 지난 1월 20일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에 쌀 가공식품 개발을 위한 연구를 맡겼으나 그보다 앞선 지난해 11월~12월경 미르재단이 이화여대에 ‘개발도상국 영양지원 사업에 필요한 쌀 가공식품 생산전략과 시제품 제작’을 요청한 것이 <한겨레> 보도로 드러났다.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경협 의원은 “미르재단은 지난해 11월경부터 고급정보인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사실을 알았고, 정부보다 앞서 코리아에이드와 세부 실행사업인 K밀을 추진했다. 이는 미르재단이 정부부처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르재단은 ‘K타워 프로젝트’ 관련 의혹도 받고 있다. K타워 프로젝트는 이란 테헤란에 문화상업복합시설인 K타워를 구축하고 서울에는 I타워를 지어 양국 간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사업이다. 지난 5월 박 대통령이 이란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이란의 교원연기금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문제는 경험도 실적도 전무한 미르재단이 국제적 사업에 공모절차 없이 선정됐고, 양국의 두 기관이 체결한 양해각서 한글본에서 미르재단이 ‘한류교류증진의 주요 주체’라고 기재된 것이다.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는 “관계기관 회의에서 미르재단을 만났고, 한류문화 촉진을 위해 설립된 재단이라길래 필요해서 우리가 스스로 사업자로 넣은 것”이라며 청와대 외압설을 부인했다. 이어 양해각서와 관련해서는 “단순 번역 실수”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한 달 앞두고 청와대 연풍문에서 열린 K타워 프로젝트 관련 회의에 미르재단 관계자도 함께 참석한 사실이 알려져 의혹이 증폭됐다.
# K스피릿과 K스타일허브도 의혹 투성이
K스포츠재단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정부가 신생법인 K스포츠의 태권도시범단인 K스피릿에 국기원시범단이 해오던 태권도시범 공연을 몰아줬다는 의혹이 골자다. 교문위원회 소속 박경미 의원은 “국기원이 올 초 멕시코 순방 동행 이후 아프리카 순방일정도 준비했으나, 해외 문화홍보원으로부터 K스피릿이 가게 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을 국기원 관계자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K스포츠의 태권도 시범단 ‘K스피릿’. 사실상 태권도외교단 소속 단원 몇 명과 필요에 따라 모집되는 단원으로 구성돼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출처= K스포츠 홈페이지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제4장 19조에 따르면 국기원은 태권도시범단 육성 및 국내외 파견 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된 태권도 단체다. 국기원시범단은 1974년 창단 이후 41년간 해외파견 시범활동을 해온 태권도시범단의 대표주자로, 최근 5년간 해외공연 횟수만 43차례에 달한다. 그에 반해 K스피릿은 지난 1월 설립된 K스포츠재단 소속으로, 태권도진흥재단 이사장마저 “최근까지는 존재를 몰랐다”고 한 시범단이다. 태권도외교단 소속 단원 몇 명과 필요에 따라 모집되는 단원으로 구성돼 그 실체조차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K스피릿은 지난 5월 한국-이란 문화교류 공연부터 아프리카 3개국 순방행사를 대통령과 함께했다. 더불어 순방행사 당시 참가 단체 가운데 최고 금액의 공연 사례비를 받았다.
국회 교문위 소속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순방 행사 태권도시범공연을 K스피릿 시범단이 독점한 것은 의혹 투성이인 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K스타일허브는 미르재단의 막후실세이자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비선 실세로 지목된 차은택 CF 감독과 관련된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K스타일허브가 사실상 차은택 개인을 위한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K스타일허브는 서울 청계천로 문화창조벤처단지 내에 위치한 한류문화체험센터로, 지난 4월 11일 개관식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문화창조융합단장이었던 차은택 씨가 총괄하는 문화창조벤처단지 조성사업이 추가되며 애초 26억 원이었던 K스타일허브사업의 예산이 171억 원까지 6.5배 가까이 증액됐으며, K스타일허브 안에 지난해 차 씨가 밀라노 엑스포에서 선보인 작품과 영상물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이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야당의 이러한 지적에 정창수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차 씨의 작품 중 하나가 한국의 발효음식과 관련된 것이었고, 한국 음식의 세계화에 기여를 많이 해 그 부분을 저렴한 가격으로 일부 옮겨놨다”고 해명했다. 또한 예산이 과도하게 증액된 것과 관련해서는 “큰 규모의 사업이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한 번도 못 봤다. 결과가 좋았으니 과정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청년희망재단은 노동부판 미르?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해 설립된 ‘청년희망재단’은 최근 미르재단과 유사한 의혹을 낳으며 ‘노동부판 미르재단’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청년희망재단은 국민들의 자발적 성금을 재원으로 시대적 과제인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됐다. 지난해 9월 16일 박 대통령이 2000만 원을 기부하며 1호 가입한 이후 전경련 소속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달 만에 총 881억 원의 모금액이 조성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청년희망재단을 방문했다. 연합뉴스 당초 청와대와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기업 기부는 안 받겠다”고 거듭 강조한 대로 기업 대신 기업의 임원들이 개인 자격으로 기부했다. 흥미로운 점은 재계 순서와 기부액이 비례했으며, 언론에 기부를 발표한 순서 또한 대체로 재계 순위를 따랐다는 점이다. 10월 23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억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10월 26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50억 원, 10월 28일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70억 원, 10월 29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0억 원을 기부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기업들로부터 설립 두 달 만에 기부금 486억 원을 모금한 것과 비슷한 모양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 성금을 재원으로 한다면서도 실상은 대기업 주머니를 턴 노동부판 미르·K스포츠재단”이라며 청년희망재단의 모금 행태를 지적했다. 이어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개혁이 기업의 민원 들어주기에 불과한 이유가 결국 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것에 대한 답례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청년희망재단이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민간재단인 청년희망재단에 발기인이자 임원으로 참여해 재단 설립을 당일에 ‘초고속 셀프 허가’했으며, 노동부 산하기관 직원을 동원해 청년희망재단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부는 지난해 10월 2일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고용정보원, 사회적기업진흥원 등 산하기관 3곳에 공문을 보내 청년희망재단 설립지원을 위해 산하기관 직원 4명을 파견토록했다. 또한 청년희망재단은 설립 이후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4곳에 직원 파견을 요청했고, 해당 기관들은 곧바로 직원을 파견했다. 한 의원은 “노동부가 청년희망재단 설립을 위해 산하기관 직원까지 동원하는 등 설립에 직접 개입했다. 또한 고용정보원, 잡월드 등 일부 기관은 공식문서 시행도 없이 직원들을 재단에 근무토록 했다”며 “청년희망재단은 노동부 장관의 적극적 지원과 특혜로 출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