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심 받은 박 ‘MB 구하기’ 반발
▲ 한나라당 지도부가 검증자제를 요청하자 박근혜 캠프의 반발이 심하다. 사진은 지난 25일 긴급 간담회에 나온 강재섭 대표와 이명박 박근혜 후보(왼쪽부터). 국회사진기자단 | ||
하지만 최근 검증공방이 도를 넘어서자 당 지도부는 양측의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또한 이명박 캠프의 정두언 의원, 박근혜 캠프의 곽성문 의원 등은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지도부의 자제 요청에 대해 이 전 시장 측은 후보 검증의 ‘소나기’를 일단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면, 박 전 대표 측은 “‘조금만 더 공격하면 역전할 수 있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극렬 반발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죽고 박근혜는 김혁규에게 죽을 것이다’라는 웃지못할 우스갯소리가 나돌고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의 무차별적인 후보검증 칼날에 결국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박 전 대표는 난데없이 열린우리당 대선후보 김혁규 의원에게 죽을까. 박 전 대표가 ‘예선’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김혁규 의원이 가지고 있는 ‘X파일’ 한방에 ‘본선’에서 힘 한번 못써 보고 날아간다는 이야기다.
김 의원은 이미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문제제기로 ‘한 건’을 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그가 박 전 대표의 ‘사생활’과 관련해서도 박 전 대표가 꼼짝하지 못할 고급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 ‘기록’은 의혹을 제기하는 정보 수준이 아니라 공식적인 기록 내지 문건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박 전 대표를 한번에 보낼 것이라는 게 출처 불명의 이야기 내용이다. 김 의원 측에서는 이런 ‘소문’에 대해 “절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펄쩍 뛰며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후보 검증 사정을 잘 아는 인사 A 씨는 이에 대해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 정치부 기자로부터 최근 들은 이야기다. 기자들이 김혁규 의원에게 ‘(박 전 대표와 관련해) 가진 게 있으면 지금 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 의원이 ‘그걸 왜 주느냐. 우리가 쓰면 한방에 끝장낸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기자들은 김 의원이 여권의 고급 정보에 액세스(접근)가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지난번 이 전 시장 경우처럼 그의 이야기를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 현재 여권에서는 김혁규 의원이나 그와 친한 일부 친노그룹 의원들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에 대한 상당히 구체적 정보를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떠돈다”라고 전했다.
현재 한나라당에는 일종의 ‘검증 포비아’(Phobia;공포증)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우스갯소리’도 결국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극한의 대결 끝에 누가 이기더라도 본선에서 참패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이 깊어지는 대목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검증 포비아’는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한나라당 힘의 절반 이상인 이 전 시장이 무너진다면 본선에서의 희망은 전혀 없어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를 지지하는 한 초선의원은 이에 대해 “이명박이라는 브랜드는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더구나 현재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어 정권 재창출을 해줄 가장 확실한 후보다. 그런데 후보 검증 문제가 검증 자체를 떠나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있다. 2위 후보가 지지율을 역전시키기 위해 그 어떤 전략도 쓸 수 있지만 집안싸움 끝에 상대 후보를 만신창이 내버린다면 그 승리는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게 과연 한나라당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현재 정치권에는 여권의 음모론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여권은 가장 집권 가능성이 높은 이명박 전 시장을 먼저 쓰러뜨려 한나라당의 힘을 뺀 뒤 그 다음 박근혜 전 대표는 너무 쉽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전 시장이 경선에서 패하면 대권은 해보나 마나 뻔하다.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소리’(小利)를 위해 한나라당의 대의(大義)를 무시해도 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제기된 의혹을 밝히는 것은 후보들의 의무”라며 후보검증에 대해 물러설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최근 지지율이 30%에 육박하는 것은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돼 온 외연도 넓어지고 있다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검증 포비아’는 이명박 대세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세력들의 일방적 주장이다. 이제 당원들이나 국민들이 여성 대통령이 아닌 박근혜라는 정치인이 국가를 이끌어갈 자격이 충분히 있는 리더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박 전 대표가 후보가 되는 것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일종의 터부’로 통하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또 다른 공포감을 없앨 필요가 있다. 박 전 대표는 원칙 있는 지도자로서 검증에서도 흠결 하나 없는 그 누구보다 경쟁력 있는 후보다”라고 반박한다.
그런데 최근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가 양 후보에게 잇따라 옐로카드를 들어 보이며 무분별한 검증 공방을 자제하라고 촉구하고 나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당 지도부가 당내에 퍼지고 있는 ‘검증 포비아’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사석에서 “이러다가 정말 두 후보 모두 죽게 되는 것 아니냐. 사실 당 지도부로서는 공정한 경선 관리 때문에 최대한 검증 공방 개입에 대해 자제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계속 청와대 음모설 등이 터져 나오고 당원들도 계속 ‘왜 우리 후보들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치느냐. 당 지도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며 항의도 한다. 그래서 모두가 사는 ‘상생’의 논리 아래 당 지도부가 검증 공방에 적극 개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이것은 누구를 편드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살리고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모두가 조금씩 희생을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한나라당 지도부의 ‘이전투구식 검증공방 중단’ 촉구가 경선 구도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 측은 “MB(이명박 전 시장) 살리기”라면서 극렬 반발하고 있다. 사실 박 전 대표 측은 6월 초 이후 본격 검증에 들어가면서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출렁이고 있는 시점에서 당 지도부가 ‘검증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 전 시장을 돕기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지지율 반전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숨어있다.
또한 박 전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경선 룰 공방에서 강 대표가 이 전 시장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캠프 사람들이 ‘배신자’라며 격앙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당연히 거쳐야 할 후보 검증 문제를 네거티브로 몰아가려는 지도부의 의도가 의심스럽다. 앞으로 계속 이 전 시장에 대한 엄정한 검증을 계속해야 하는데 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자제하라고 하면 그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뻔하게 보이는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반면 이 전 시장 측은 지도부의 경고에 대해 “당이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면서 환영하고 있다. 특히 상대 캠프를 상대로 한 당 윤리위원회 제소를 모두 취하키로 한 이 전 시장 측은 당 지도부의 지침에 적극 협력해 검증 이슈를 분산시켜 나간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시장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판단할 때 후보검증 공방은 이미 그 정점을 넘어섰다고 본다. 특히 국민들이 이 전 시장에게만 집중적으로 또한 무차별적으로 날아가고 있는 의혹 제기에 대해 식상해하고 있다. 지지율도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이것은 이 전 시장을 지지하는 층이 그의 도덕성보다는 경제 지도자라는 이미지에 더 동조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후보 검증 문제는 앞으로 국지전적으로 일어날 뿐 경선 구도의 주요 이슈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당 지도부가 경선 과열 자제를 호소하는 것은 여론의 맥을 잘 짚은 결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당 지도부의 ‘경고’를 두고 경선 구도가 또 다시 지난 경선 룰 과정에서 드러났던 ‘이 전 시장과 당 지도부’ 대 ‘박 전 대표’간 충돌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강 대표가 이 전 시장과 사전 조율을 거쳐 경선을 불공정하게 이끌고 있다’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더욱 당 지도부의 방침에 대해 적극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 측으로서는 한나라당에 퍼지고 있는 ‘검증 포비아’가 더욱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의혹 제기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미 제대로 불이 붙은 후보 검증 공방이 쉽게 가라앉을 수 없을 것이란 게 대체적 시각이다. 박 전 대표로서는 6월 한 달 동안 그 재미를 쏠쏠하게 보았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검증 문제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당 지도부의 공개 경고장도 구두선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일부에서 “지도부가 칼을 빼든 만큼 유야무야하긴 어려울 것이다. 중징계자도 나올 것이다”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당 지도부로서도 “계속 경고 수위를 높일 경우 오히려 역효과만 낼 수 있다”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무조건 징계자만 양산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좋은 후보 두 명을 잘 살려 대선에서 꼭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하지만 당내에 퍼지고 있는 ‘검증 포비아’가 두 사람 모두를 집어삼킬지 몰라 이번에 칼을 빼들었다. 양측은 지도부의 속사정을 잘 알면서도 죽음을 향해 날아가는 부나방처럼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