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땅이 씨앗돈?
▲ 한보철강 | ||
강릉 영동대 교비 횡령의 중간 매개체로 이용되던 정씨 소유의 대치동 은마상가 소유권도 지난 2월14일 법원 경매 끝에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은마아파트 상가의 정씨 소유 23개 점포가 3백72억원에 월드와이드컨설팅리미티드에 넘어간 것. 월드와이드컨설팅은 대전에 한국 영업소를 둔 외국계 부동산컨설팅 회사로 본사가 조세피난지역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있다.
또 정씨가 한보철강을 인수할 씨앗돈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의 임야 3만1천여 평도 지난해 9월 1백79억원에 GS건설에 넘어갔다. 정씨는 이 땅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려 했지만 그린벨트에 묶여 번번이 좌절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가 한보철강 인수의 씨앗돈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땅은 용인 외에 두 군데가 더 있다.
정씨는 지난 2004년 6월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했다. 한보철강 인수 자금과 관련해 그는 “인천(4만9천 평), 경기도 용인(3만5천 평), 안산(2만4천 평) 등 세 곳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 공사이익금과 토지대금으로 3년 안에 1조원의 부채를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말한 것. 그는 이 땅이 “내 명의로 된 게 아니라 종친회(해주 정씨)가 보광특수산업에 기증한 것이다. 종친회 재산은 추심할 수 없게 돼 있다. 내겐 재산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경기도 용인의 땅은 GS건설이 낙찰받은 땅이 3만1천여 평인 점을 감안하면 팔지 않은 4천 평이 더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정씨가 후계자로 낙점한 삼남 보근씨나 사남 한근씨도 국세청 상습 고액체납자 명단에 각각 3위(6백41억9천6백만원), 5위(2백91억6천만원)로 오른 점으로 미루어 정씨 소유의 땅이 삼남 보근씨의 부인인 김정윤씨나 김정윤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보광특수산업 명의로 돼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또 지난해에는 충남 당진 한보철강(현 INI스틸 당진공장) 부근의 땅 9천8백여 평을 정씨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갖고 있다는 얘기가 나와 관심을 끌었다. 지난 95년 정씨가 측근 명의로 그 땅을 20억여원에 사들였고, 그게 지금 70억원대를 호가한다는 얘기다. 정씨측에선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보근씨 부부와 함께 가회동 집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 그 정도로 정씨가 아들을 믿고 의지하고 있다. 정씨가 검찰 수사를 받을 때 “보근이만은 건드리지 말아달라. 모든 죄목은 내 앞으로 해달라”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다. 실제로 정씨는 보근씨를 한보그룹의 부회장으로 앉힌 바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 정씨 소유로 추정되는 기업들은 대부분 보근씨의 부인인 김정윤씨의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그의 남편인 보근씨가 상습 고액체납자로 분류돼 경제활동에 제약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보철강 인수를 위해 지난 2002년 12월 설립된 HB홀딩스는 보광특수산업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동산 개발 투자 임대업을 하고 있다. 정씨의 오랜 측근인 이용남씨가 대표이사로 계속 활동해 오다 영동대 교비횡령 사건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8월 이씨 대신 김정윤씨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여행사인 상아여행은 김정윤씨가 감사로, 정씨의 조카인 하재훈씨가 대표이사에 올라있다. 하씨는 보광특수산업의 감사이기도 하다. 영월랜드는 정보근씨와 이용남씨가 이사로, 하재훈씨가 감사로 올라있다.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사업 참여를 위해 지난 96년 설립된 동아시아가스는 정보근씨가 이사로, 하재훈씨가 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용남씨도 지난해 5월까지 이 회사의 대표이사로 올라있었다.
이들 4개 회사는 인적 구조나 역학관계로 볼 때 사실상 정태수씨의 재기 캠프로 불러도 무방하다. 대부분 정씨의 아들이나 며느리, 조카, 측근이 핵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가 전세로 살고 있는 가회동의 집은 대지 6백15평에 건평 1백49평의 2층 건물이다. 호가는 50억원 이상이다. 정씨는 이 집에서 2년분 월세로 4억8천만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위쪽, 재동초등학교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정씨의 가회동 집은 일제시대 조선 최대의 갑부로 꼽혔던 화신백화점 박흥식 사장이 살던 집이다. 이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사망 직전인 지난 2000년 무렵 이 집을 사들여 잠깐 동안 산 적이 있다. 이 집은 정주영 회장 사망 뒤인 지난 2001년 부동산 업자인 정아무개씨에게 팔렸다. 그러다 지난 2003년 10월 무렵 정태수씨가 전세금 10억원대에 이 집에 세를 들어왔다.
묘한 점은 화신 창업주인 박흥식씨와 정씨의 닮은 인생유전이다. 정씨는 잘나가던 시절인 지난 80년대에 종로 2가 화신백화점터(현 삼성밀레니엄타워)와 신신백화점터(현 SC제일은행 자리)를 사들이기도 했다. 박씨의 사업인생은 말년이 험했다. 화신은 한때 국내 최고의 백화점으로 꼽히던 화신백화점이나 합작사이던 화신레나운, 가전회사이던 화신소니 등을 통해 재벌로 군림했지만 지난 80년 부도가 나면서 지금은 흔적도 남아있지 않고 박흥식 회장도 지난 94년 사망했다. 정씨도 말년 사업운이 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박씨가 살던 옛집으로 정씨가 찾아들어간 것이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