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홈런’ 안철수 ‘단타’ 유승민 ‘존재감’
이재명 성남시장이 13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신보라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청년 수당 내용을 봤습니다. 제가 봤는데….”
10월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이재명 성남시장을 향해 이같이 말했다. 이 시장은 하 의원 말을 도중에 끊은 뒤 “청년 배당이다”라고 했다. 질의에 나선 하 의원이 성남시의 청년 배당 사업을 서울시의 청년 수당 사업으로 착각한 점을 바로 잡은 것이다. 하 의원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청년 배당은 성남시가 만 24세 미만 청년에게 연 50만 원의 상품권을 지급하고 있는 사업이다. 신보라 새누리당 의원 역시 이날 국정감사에서 “SNS 상에서 상품권을 현금화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벌어들인 세금은 좋은 사회서비스를 하라는 취지다. 왜 청년을 의심하게 만드는 서비스를 하는가”라며 이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이 시장은 곧바로 “좋은 지적이다. 그런데 신 의원한테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좋은 정책을 제게 줬으면 좋겠다. 제가 하겠다”라고 했다.
이날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은 페이스북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일 현재 약 4만 5000명이 영상에 ‘좋아요’를 눌렀고 3927개의 댓글이 달렸다. 한 누리꾼은 “성남시장이 국민들 지지를 받으니까 정치권의 욕심덩어리들이 질투를 하고 있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은 “이 시장이 역시 최고다.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싸움도 머리를 좀 써야 한다. 막 들이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환호했다. 이 시장이 ‘국감 스타’로 등극한 순간이다.
이 시장의 최측근은 “성남시 의견들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본다. 내부적으로 국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시장이 워낙 시원하고 호쾌하게 발언을 하다보니까 즉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름대로 이번에 준비를 많이 했다. 기본적으로 달변이지만 시장 본인이 발언 내용에 대해 항상 연구하고 수정을 한다. 심지어 조사까지도 따져가면서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청년 배당에 관한 답변 상황도 꽤 준비를 거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시장이 국감장에서 홈런을 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 시장이 국감에 참석한 뒤 그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대권잠룡의 마지노선, ‘마의 5%’를 돌파했다. 10월 15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11~13일 전국 성인 1026명에게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5%를 기록한 이 시장은 5위를 차지했다.
27%의 지지를 얻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5개월 연속 선두를 유지한 가운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18%),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9%), 박원순 서울시장(6%)이 뒤를 이었다. 이 시장은 4%를 기록한 유승민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를 제쳤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3%) 등이 최하위권을 형성했고 무응답층은 24%였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이며 응답률은 21%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 시장은 흙수저 중에 흙수저다. 대권잠룡의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 이 시장이 취임했을 때 성남시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사실 모라토리엄 선언을 굳이 안 해도 됐는데 선언했다. 자신의 업무수행 결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선동했다는 뜻이다. 얼굴이 호감형은 아니라 ‘비디오’는 별로지만 ‘오디오’는 흡인력이 있다. 앞으로 이 시장의 폭발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점쳤다. 이 시장의 최측근은 “모라토리엄은 정확한 근거로 이야기해야 한다. 당시 상황에선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비공식 부채가 얼마나 있었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렸다. 선동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교육부 해체’ 발언으로 선전하며 단타를 쳐냈다. 안 전 대표는 미르·K스포츠재단 연루 의혹의 주무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이지만 이슈를 비껴간 질의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1일 안 전 대표는 “교육부가 특별한 사유 없이 대학 총장을 공석상태로 놔두는 등 학교를 망가트리고 있다”며 교육부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미리 준비한 PPT 자료로 박근혜 정부 교육 정책의 허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안 전 대표의 치밀한 준비가 돋보였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달구벌 기적’의 장본인 김부겸 의원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0월 5일 열린 기재획재정위원회 국감에선 최순실 씨의 미르·K스포츠 재단 연루 의혹이 화두였다. 김 의원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 팔을 비틀어서 기업들에게 돈을 내게 했고 아무 권한도 없는 자들이 쉽게 ‘재단을 해산하고 새 재단을 만들겠다’고 한다. 부총리가 재단이 다시 설립되면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 여부를 살펴보겠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재부가 미르·K스포츠 재단을 지정기부금단체로 지정해 ‘면세’ 혜택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유 부총리는 “단체가 등록돼야 하고 주무관청이 결정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고 김 의원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김 의원이 뒤늦게 제기한 법인세 인상 문제도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유승민 의원은 비교적 선방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 의원은 10월 5일 유 부총리에게 “사회적 경제기본법을 대표발의했다가 일부 보수세력으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사회적 경제가 사회주의인가”라고 물었다. 유 부총리는 “그렇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20대 총선 직전 새누리당 친박계가 “유 의원이 당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 근거가 사회적 경제기본법이다. 당시 일부 보수진영은 유 의원의 법안을 ‘이념적 배신’이라고 공격했다. 유 의원이 유 부총리의 입장을 빌려 사회경제기본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유 의원의 “전경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김 의원과 유 의원은 당내 비주류 주자다. 대내외적 인지도는 충분하지만 당내에서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김 의원보다는 유 의원이 돋보였다. 피라미드 구조와 같은 보수정당에서 소신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숨 막히는 상황에서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했다. 김 의원은 부드러운 면이 있었지만 맛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허성무 정치평론가도 “유 의원은 매우 강하고 유능한 이미지를 굳혔다. 국민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에 맞선 거물급 경제학자라는 인식을 주는 데 성공했다. 내년 경제상황이 급변할 경우 유 의원이 갑자기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