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유출 경로 촉각…자산운용사가 입수하고 매도 주문했나, PBS가 먼저 입수한 뒤 공모했나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14에 위치한 한미약품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조사 단계에서 자본시장조사단은 일부 증권사 소속 한미약품 담당 애널리스트들이 호재성 정보도 공시 열흘 전 전달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강제 수사권이 없는 금융위 조사에선 ‘배후’ 규명에 일부 한계가 있었으나 검찰이 사건을 맡은 만큼 앞으로 전개는 달라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사건 수사에 착수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19일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를 영위하는 NH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대형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증권사들은 지난 9월 30일 한미약품의 악재 공시를 앞두고 대량 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PBS, 이른바 ‘프라임브로커’는 자산운용사가 헤지펀드를 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증권사를 가리킨다. 프라임브로커의 자격은 자기자본 3조 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증권사 등)에만 있으며, 이들은 자산운용사에 ▲투자 컨설팅 ▲주식매매 위탁 ▲시드머니 제공 ▲신용 공여 등 증권과 관련된 모든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까지 검찰의 관심은 이들 PBS가 매도 주문을 낸 ‘경위’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인 경우 PBS가 자신의 고객인 자산운용사의 동의 없이 자의적 판단을 통해 매도 주문을 넣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즉 검찰은 자산운용사가 ‘누군가’로부터 미공개 정보를 입수하고 직접 매도 주문을 넣었을 가능성과 PBS가 먼저 미공개 정보를 입수하고 자산운용사와 공모해 매도 주문을 넣었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 중이다.
이와 관련, 전직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경쟁사보다 내밀한 정보를 빨리 입수해 고객(자산운용사 등)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이 바닥에서 오랜 기간 ‘능력’으로 평가받아 왔다”고 전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올 초 연예인 견미리 씨의 남편 이홍헌 씨의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해 검찰 수사보다 앞서 일부 정보를 얻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올 상반기 PBS는 대형 증권사들의 ‘미래 먹을거리’로 주목받았다. 시장 자체가 ‘프라이빗뱅킹’(거액 자산가를 상대로 한 서비스)에 비해 ‘블루오션’인 데다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다.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1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대한 종합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PBS 업체 간 순위 경쟁 또한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고객 유치와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일부 증권사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는 PBS 시장 후발주자로서 뒤늦게 점유율 1위에 등극한 NH투자증권과 이 회사 주고객인 삼성자산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검찰 압수수색을 받은 곳으로는 같은 PBS 업체인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이 지목되고 있다.
또 검찰은 유안타증권, 하이베스트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일부 증권사 직원은 미공개 정보를 휴대전화 메신저 등을 이용해 외부로 전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권업 종사자들의 휴대전화는 160대에 이른다. 만약 공매도 주문 전후 기관과 개인 투자자, 동료 애널리스트 등과의 통화 내역이 확인된다면 검찰은 이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팍스넷 등 일부 증권 커뮤니티에선 검찰의 수사 착수가 늦어진 까닭에 사건 관련자들이 휴대폰을 파기하는 등의 방법으로 증거를 은폐했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검찰은 사건 발생일에서 보름이 넘은 지난 17일에야 한미약품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이에 대해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는 “삭제된 데이터(메시지)는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복구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실제 검찰은 담당 수사팀 인력을 충원해 압수한 자료물 분석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까지 증권범죄합동수사부를 이끈 김형준 부장검사가 최근 ‘스폰서 의혹’ 등으로 물의를 빚은 까닭에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미약품뿐 아니라 일부 증권사들로 수사의 파장이 미칠 수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29일에도 호재성 공시 다음날 부진한 영업실적을 발표하면서 대량 공매도 사태를 초래했다. 당시 매도 주문을 낸 NH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는 이번 ‘한미약품 늑장공시’ 사건과 관련해서도 대량 공매도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에 대해 NH투자증권 측은 “현 시점에서 (수사 진행 상황에 대한) 언급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우리(NH투자증권)는 기관 혹은 개인 고객들의 요구를 받고 매도 주문을 내기 때문에 회사 주도로 공매도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검찰의 압수수색도 당일 PBS 거래 내역에 대한 확인 작업일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미약품 20대 여직원 김 아무개 씨가 미공개 정보를 남자친구 정 아무개 씨에게 넘긴 혐의를 잡고 최근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말단 직원인 김 씨를 검찰이 찾던 ‘한미약품 내부자’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또 ‘다른 내부자’의 정보 유출 가능성 등에 대해선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한미약품의 수사 협조 의지에 대해선 적잖은 의문이 제기된다.
한미약품 측은 사건 초기 미공개 정보 유출은 없었고, 한국거래소와 협의가 지연돼 공시가 늦어졌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그러나 현재는 내부 직원의 사전 정보 유출 정황이 나왔고, 한국거래소는 공시를 재촉했음에도 한미약품 내부 논의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졌다는 증언이 나온 상황이다. 또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는 지난 17일 회사 내부 직원들에게 돌린 이메일에서 “온갖 오해를 받는 상황”이란 표현으로 일부 주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미약품의 주주인 A 씨는 “지난해 12월 비슷한 사건으로 구속된 한미약품 연구원의 나이가 20대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며 “별 볼일 없는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선 입장을 밝힐 것이 없다”면서도 “고의적인 늑장공시는 결코 없었다”고 거듭 해명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