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 적과 큰싸움 ‘검증공세’ 비껴가기
▲ 이명박 전 시장의 개인자료 유출 사건이 ‘정치 사찰’ 논란을 빚게 되면서 청와대와 이명박 캠프의 대응이 항전으로 바뀔 태세다. 이명박 후보(왼쪽)와 노무현 대통령. | ||
특히 공작정치 등 ‘정치사찰’ 논란은 과거 대선 때도 불거졌던 문제로 그 실체를 규명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에 미뤄 양측의 공방전은 대선정국 주도권 장악과 맞물려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대혈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시각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본격화되고 있는 대선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급부상한 ‘정치사찰’ 논란을 매개로 한 청와대와 이 전 시장 측의 결사 항전 전략을 진단해 봤다.
정치사찰 논란의 진원지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이다. 국정원은 자체 감찰을 통해 부패척결 TF팀 소속 5급 직원 K 씨가 2006년 8월 행정자치부 지적전산망을 통해 이 전 시장의 처남 김재정 씨의 부동산 자료를 한 차례 열람한 사실을 시인하고 국정원 차원에서도 부패척결 TF팀이 오래전부터 꾸려져 활동해 왔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다만 국정원 측은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고 부패척결이라는 큰 틀에서 TF팀이 구성된 것”이라며 “초본 열람도 부동산투기 광풍이 서민경제를 강타하는 상황에서 기획부동산투기 TF팀의 활동 과정에서 받은 제보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측과 한나라당은 국정원이 ‘이명박 조사 TF팀을 운영해 왔음이 드러났다’며 이는 정치사찰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명백한 증거이고 그 배후에는 청와대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이 TF팀의 활동 내역을 사안에 따라 청와대에 보고해 온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청와대와 국정원이 ‘이명박 죽이기’ 차원의 공작을 해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결사 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한나라당이 18일 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승규 전 원장, 이상업 전 차장을 포함한 전·현직 고위간부 6명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도 이러한 의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전 시장 측은 특히 국정원 TF팀 보고 라인에 범여권과 청와대 핵심인사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미뤄 노 대통령과 범여권 핵심인사들이 정권 연장을 위해 고도의 정치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에 대한 국정원 보고는 국정원장이 민정수석실과 국정상황실을 통해 하는 게 관례다. 민정수석은 다시 비서실장에게 보고하고 국정상황실장과 비서실장은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시스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시장 측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국정원 보고 라인이다. 이 전 시장 측과 한나라당이 국정원 내부에 ‘이명박 TF팀’이 가동됐다고 주장하는 시점은 2005년이다. 당시 국정원은 김승규 원장 체제로 김만복 현 원장은 기조실장, 범여권 핵심 실세인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매제인 이상업 씨는 국내정보를 총괄하는 2차장을 각각 맡고 있었다.
청와대 보고라인인 국정상황실장은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통하는 이광재(초대) 열린우리당 의원에 이어 박남춘(2003년 11월~2005년 1월)-천호선(2005년 1월~8월)-이호철(2005년 8월~현재) 등 386 핵심참모들이 독점하고 있고 민정수석은 핵심 측근인 문재인 비서실장에 이어 전해철 수석(2005년 1월~현재)이 맡고 있다.
이와 관련 18일 기자와 만난 이 전 시장 측 P 의원은 “청와대가 국정원 TF팀 활동 내용 중 일부 사안에 대해서만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여러 정황상 청와대가 TF팀 구성을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P 의원은 또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A 의원이 TF팀 구성에 적극 개입했고 국정원 내 386 측근들이 팀원으로 활동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정치사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노 대통령과 현 정권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인 박계동 의원도 “국정원 TF팀은 2004년 초 구성된 뒤 2006년 확대 개편돼 모두 2과 8팀이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 팀의 목적은 야당 후보 전반의 비리와 약점 캐기를 위한 것”이라며 정치사찰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나아가 “국정원이 수집한 정보가 청와대의 ‘정권재창출 태스크포스’를 통해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넘어갔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나라당 공작정치저지 범국민투쟁위원회도 이날 오전 대검찰청을 방문해 국정원 수사의뢰 등에 대해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대정부 투쟁에 적극 나서고 있다. 나경원 대변인은 현안브리핑에서 “속도조절, 언론흘리기, 계속흔들기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야당 후보를 대선까지 흠집내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도 든다”며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 측과 한나라당의 전방위 공세에 청와대도 적극 대응 모드로 전환하고 있다. 청와대는 18일 ‘정치사찰’ 의혹 제기와 관련해 “검증논란과 의혹을 덮으려는 의도”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근거 없는 주장과 음해가 도를 넘고 있다”며 “검찰이 수사 중이고 국정원도 스스로 밝히고 있어 청와대는 조심스레 대응해왔으나 오늘 이후로는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정치공작’ ‘청와대 배후’ 주장 등에 대해 계속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의혹은 확대 재생산될 것이고 자칫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가 “국정원의 반부패 업무가 있었다고 해서 이 전 시장 측에 대한 정치사찰이나 공작이 있었다거나 청와대에 정권재창출 TF가 있다는 주장까지 비약하는 것은 황당한 모함”이라고 반박한 것도 이러한 해석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정수석실과 홍보수석실도 적극적인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으며 홍보수석실도 ‘사실도 없고 사과도 없었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나라당과 언론이 제기한 참여정부의 각종 게이트·루머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히 홍보수석실은 △대통령 측근비리 청와대연루설(03.10) △자금 제공설(04.1~2)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04.3) △행담도 개발 의혹 수사(05.8) △철도공사 러시아 유전개발 특검(05.11) △바다이야기(06.8) △JU그룹 로비의혹(06.12) 등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불거졌던 의혹사건을 거론하면서 대부분이 ‘근거없음’ ‘허위판명’ ‘혐의없음’ 등의 수사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전투 모드로 돌입한 청와대는 “청와대에 정권재창출 TF가 있다”고 발언한 박계동 의원 등 도가 지나친 주장을 한 한나라당 인사들에 대해서는 검찰 고발 등 법적 조치도 적극 강구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이 전 시장 개인자료 유출 건으로 촉발된 ‘정치사찰’ 논란은 청와대와 이 전 시장 측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비화되면서 대선정국을 뒤흔들 또다른 핵뇌관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히 양측 모두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과 함께 대선정국 주도권 장악 플랜과 맞물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항전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 심각한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