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박 캠프 ‘사생활 독초’ 들고 고민 중
▲ 이명박 후보(왼쪽), 박근혜 후보 | ||
그런데 청문회를 지켜본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진일보한 정치’라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지만 후보 간의 검증 국면이 점차 ‘자해 공방’으로 변질돼 가는 점에 크게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경선 막바지로 갈수록 사활을 건 폭로전과 비방전이 난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 검증청문회에 대한 각 캠프의 평가와 향후 경선 국면의 마지막 필승 전략 등을 조명해봤다.
한나라당 후보검증 청문회를 지켜보았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 캠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지난 6월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방영된 ‘정책토론회’가 이 후보의 지지도를 꺾는 중요한 계기였다는 해석도 있었던 만큼 이번 청문회에 크게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청문회에서 나온 질문이 모두 후보들에게 먼저 공개돼 돌발 변수가 나올 가능성이 별로 없었고 결국 이것이 이 전 시장에게 득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서 이 전 시장 측은 경선의 최대분수령인 검증청문회를 ‘성공리’에 마쳤다고 자평하면서 “사실상 게임은 끝난 것 아니냐”며 비교적 여유 있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반면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이번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 그가 쌓아온 신뢰도 있는 지도자 이미지가 많이 훼손된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캠프가 분석하는 박 전 대표의 마이너스 평가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박 전 대표가 청문회에서 논란을 낳을 수 있는 발언을 한 것이 앞으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이를 정치 쟁점화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두환 군부정권으로부터 받은 6억 원 부분이나 80년대 초 살았던 성북동 주택을 신기수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았다는 점을 박 전 대표가 인정한 것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갔다. 또한 이 전 시장의 의혹은 그동안 나올 만큼 나왔기 때문에 ‘내성’이 생긴 반면 박 전 대표와 관련된 ‘6억 수수’ 같은 새로운 이야기는 국민들이 박 전 대표를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평소 자신을 도덕성의 화신쯤으로 강조하던 박 전 대표가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출처도 모르는 6억 원이라는 거액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을 보면서 그가 오히려 상당히 도덕 불감증에 빠진 정치인으로 보였다. 성북동 주택을 무상으로 받은 것에 대해서도 별 문제 없이 반응했다. 오랫동안 권력 핵심에 있었던 그로서는 그 당시 거액이었던 6억 원을 하찮게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지도자로서 매우 심각한 결격 사유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의 답변 스타일도 신뢰도를 줄 수 없는 형편없는 것이었다고 깎아내리는 평가도 있다. 국회의 한 보좌관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모르겠다’, ‘실무자 책임이다’였다. 핵심 사항에 대해 우회하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고 전반적으로 대답 자체가 부실했다. 평소 이 전 시장을 비도덕적이라고 공격하면서도 자신의 허점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도 관대한가. 그리고 박 전 대표가 계속 ‘아버지’를 언급하는 모습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를 떠나 생각해볼 수 없지만 아버지의 큰 그늘에 안주하려는 ‘공주님’ 모습 같았다. 한 나라를 이끌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점이 부족했던 것이 이번 청문회 답변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 지난 19일 청문회 이후 이명박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747돛단배’ 항아리를 선물받았다. 청문회는 일단 이 후보의 판정승으로 보인다. 국회사진기자단 | ||
박 전 대표 측은 이번 청문회를 이 전 시장 후보검증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표 측 일부 의원들과 관계자들은 청문회 때 캠프에서 이 전 시장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 전 시장이 발언을 할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답변할 수 있느냐”며 야유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대다수의 캠프 관계자들은 이 전 시장의 해명을 일일이 메모하면서 “잘 걸렸다. 한번 확인해보자”라며 의욕에 차 있다. 청문회 뒤 이 전 시장의 발언을 반박할 근거를 제시해 이 전 시장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은 이 전 시장과 관련한 의혹들에 대해 “상식인이라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의혹투성이들이다. 그런데 이 전 시장의 답변을 들어보면 동문서답식으로 비켜 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전 시장이 평소 자신의 의혹들에 대해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청문회가 끝난 뒤 양 캠프 모두 “우리가 우세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청문회에 대한 손익계산서는 여론이 좀 더 성숙한 다음에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청문회 뒤 실시된 지지율 조사에서 이-박 후보의 격차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더욱 벌어진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는 이 전 시장이 득을 보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노당 김형탁 대변인은 “박 전 대표는 당이 준 면죄부를 못 챙겼고, 이 전 시장은 잘 챙겨 먹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여의도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사실 박 전 대표 측이 이번 청문회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안다. 홍사덕 선대위원장이 7월 중순 지지율 역전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던 배경에는 청문회 때 이 전 시장의 허구가 낱낱이 드러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문회를 거치면서 이 전 시장에 대해서는 새로운 의혹이 나온 것이 없었던 반면 박 전 대표는 항간에 떠돌던 소문을 확인해주면서 ‘특종’을 만들어주었다. 박 전 대표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자칫 새로운 의혹거리를 양산해줄 빌미를 주지는 않았는지 분석해봐야 한다. 이번 청문회가 1위를 달리는 이 전 시장의 아성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이 전 시장의 판정승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이 전 시장의 해명 부분에 대한 상반된 주장이 나올 경우 이 전 시장은 공개된 자리에서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박 전 대표 측도 바로 이런 점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후보검증 청문회가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경선의 대 변수가 되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양 캠프는 어떤 전략으로 경선을 맞이하게 될까. 먼저 이 전 시장 측은 여전히 ‘수성’에 골몰하고 있다. 검증청문회라는 최대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이제는 ‘부자 몸조심’으로 가자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특히 수개월간 계속된 검증공세에도 불구하고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가 10% 포인트 이상을 유지하면서 대세가 굳어졌다고 판단한다.
캠프 측은 당 안팎의 네거티브에 대한 ‘무대응 전략’이 주효했다고 보고 남은 기간에도 정책공약을 알리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포지티브 선거운동’을 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시장은 후보 검증청문회가 끝난 뒤 박 전 대표에 관한 평가에 대해 캠프 관계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