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 따로 거주자 따로 적잖아…네집 중 한집은 교통위반 과태료 등 ‘체납 딱지’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오피스텔 피앤폴루스 전경. 임준선 기자.
경원코퍼레이션이 시행한 피엔폴루스는 시공 단계부터 ‘대한민국 상위 1%’를 겨냥한 초호화 주상복합 건물로 기대를 모았다. 최고급 대리석 등을 이용한 인테리어, 최상류층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부대시설 등은 ‘상위 1%’의 마음을 움직였다.
실제 피엔폴루스 수분양자 가운데는 대기업 오너, 재벌 2세, 벤처사업가 등 재계 인사를 비롯해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등 전문가그룹, 유명 연예인이 다수 포함됐다. 현재는 ‘개인사’ 등을 이유로 이 오피스텔을 떠났지만 올 초까진 연예인 에릭(문정혁 씨)과 탁재훈 씨가 피엔폴루스를 소유했다. 또 가수 타블로, 영화감독 강제규, 배우 한효주 씨가 피엔폴루스를 임대해 사용했다. 서세원 씨와 이혼한 서정희 씨는 해당 오피스텔 2개 동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김순무 한국야쿠르트 부회장, 지재완 삼성전자 부사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여동생 구훤미 씨, LG가(家) 3세인 구본호 전 범한판토스 부사장의 모친 조원희 씨 등도 피엔폴루스의 주인이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조권영 영유통 사장 등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등기상 주소지를 피엔폴루스에 두지 않았다. 재계 유명인사 가운데 피엔폴루스에 전입한 이는 박관호 위메이드 대표가 유일했다. 이외 다른 재계 인사들은 업무용 혹은 임대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피스텔은 아파트, 빌라와 달리 건물용도 구분이 모호해 그 이용 목적에 따라 과세 기준이 다르다. 전입신고를 하고 실거주 여부가 확인되면 주거용으로, 사무 용도로 이용하면 업무용으로 분류된다. 각 소유주가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주거용보다 업무용을 더 선호한다. 주거용 오피스텔은 업무용에 비해 종합부동산세, 부가가치세 등 국세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피엔폴루스 등 고급 오피스텔을 매매해 온 한 부동산 업자는 “피엔폴루스의 경우 많은 임대인이 주거용 전환 및 거래 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 임차인의 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임차인들 역시 본인 신원이 노출되는 계약을 꺼린다. 서울 강남권에서 비밀리에 고위층을 접객하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 건물 보안 유지도 최상급”이라고 말했다.
실제 피엔폴루스 92가구 가운데 전입신고를 한 가구는 21가구(22.8%)에 불과하다. 나머지 가구는 대부분 서울 도곡동, 청담동, 압구정동, 한남동, 이촌동 등 부촌에 본인 소유 주택(아파트 포함)과 빌딩을 갖고 있다. 전입신고를 한 가구조차 실거주자는 다른 사람인 경우가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윤회 씨(왼쪽)와 전 부인 최순실 씨가 2013년 7월 19일 경기도 과천 경마공원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습. 사진제공=한겨레
가령 최순실 씨(개명 후 최서원)의 실거주지는 피엔폴루스 10층에 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해당 건물 소유주 A 씨는 이 건물에 전입신고를 했다. 다시 말해 A 씨는 주소지 등록만 피엔폴루스로 하고 다른 곳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최 씨는 임대인 A 씨와 거래 과정에서 차명 계좌를 이용했거나 모종의 특혜 등을 제공받았을 가능성이 있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청담동 고급 오피스텔’에서 일어난 ‘은밀한 거래’는 더 있다. 최근 Y 회계법인의 B 부회장은 피엔폴루스 7층 오피스텔을 회사 명의로 빌린 뒤 여자 연예인에게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3~2015년 피엔폴루스 오피스텔을 임대했던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계약에 필요한) 돈은 법인이 지불했지만 건물 이용은 퇴직 임원이 했다”고 말했다.
맥쿼리증권부터 유명 연예기획사까지 임차인의 면면도 다양해 이들이 각각 어떤 목적으로 건물을 이용했는지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앞의 부동산 업자는 “법인 계약이 많은 편이지만 실제 건물을 누가 쓰는지는 우리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엔폴루스를 소유한 오너 기업의 관계자는 “개인적인 영역이라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건물을 빌린 대다수 임차인은 상대적으로 거액의 보증금을 지급하면서도 임차인 보호에 필요한 ‘전세권 설정’은 대부분 생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권 설정이 없으면 임대인이 건물을 매각했을 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피엔폴루스의 전세금(혹은 보증금)은 수억~수십억 원에 달하지만 등기상 전세권 설정 여부가 확인된 가구는 전체 92가구 중 31가구(33.6%)에 불과했다.
피엔폴루스의 지하 주차장에는 벤츠, 레인지로버 등 고급 외제차와 스포츠카가 즐비하다. 대한민국 상위 1%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의 주인’ 가운데는 25세 미만도 7명(7.6%)이나 있다. 미국인과 캐나다인 등 외국인은 11명(11.9%), 이들의 이름은 대부분 한국어로 기재돼 있다. 교통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세금 등을 체납해 오피스텔이 압류된 기록이 있는 가구는 22곳(23.9%), 상위 1%라고 불리는 이들이 4가구 중 1가구꼴로 위법을 저지른 셈이다.
상류층의 ‘성(城)’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2007년 7월 준공 후 피엔폴루스를 매입한 92가구 가운데 소유권이 전환된 가구는 28곳에 그쳤다. 이는 소유주 사망에 따른 상속(고 최진실 씨), 이혼에 따른 재산 이전 등을 포함한 수치다. 실제 자금난 등으로 오피스텔을 매각한 것으로 보이는 가구는 10여 가구에 그쳤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