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드리블로 ‘홍명보 매직’
▲ 지난 3일 미국전 승리 후 선수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있는 홍 감독. 연합뉴스 | ||
#영원한 리베로
아직은 어색하다고 했다. 축구 선수에겐 꿈이자 로망과도 같은 월드컵 무대를 네 번씩이나 밟았고 FIFA가 선정하는 20세기 축구선수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뽑힌 그의 눈부신 선수 이력을 되짚으면 괜한 엄살만은 아니지 싶었다. 한국축구사의 굵은 자취를 남긴 선수에서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낸 감독으로 변모한 초보 감독 홍명보(40)의 이야기다.
벤치에서 필드를 바라보는 하얀색 셔츠의 홍명보는 아무래도 어색했다. 당장이라도 붉은 유니폼을 입고 필드를 달릴 것만 같았다. 홍명보 감독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았다. 하얀색 셔츠보다 땀에 젖은 붉은 색 유니폼이 아직은 더 익숙하고 편하단다. 2009 FIFA 20세 이하 월드컵을 앞두고는 감독이 아니라 차라리 선수였다면 이리 부담스럽고 잠 못 이루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선수 시절과 팀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감독직은 분명 다른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홍명보 감독은 성적에 대한 부담은 선수들이 아닌 온전히 감독인 자신의 몫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운 카리스마의 표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기어이 대형 사고를 쳤다. 1983년 멕시코 U-20월드컵 이래 최고 성적을 2009년 이집트 땅에서 일구어낸 것이다.
#수평의 리더십
조 예선 첫 경기에서 패했을 때만 해도 홍명보호에 대한 어두운 전망이 쏟아졌다. 특출한 스타플레이어도 없고 세계 대회 데뷔 무대를 치르는 홍명보 감독에 대한 우려가 더해지며 조 예선 탈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시선이 팽배했다. 한데 홍명보 감독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외려 밝았다. 카메룬전 직후 수에즈 무바라크 경기장 앞에서 만난 홍명보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잘했다. 준비했던 대로 경기가 진행됐다”며 경기 결과와는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홍명보 감독의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조 예선의 문을 연 카메룬전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었다. 조 예선을 통과해 16강에 오르기 위해서는 첫 판을 잡아야 했다. 홍명보 감독은 20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이 카메룬전 패배로 낙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선수들을 감쌌고 더 나아가 칭찬했다. 카메룬전 패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남은 경기는 해보나 마나였다. 새내기 감독답지 않은 영민한 대처였다. 홍명보 감독은 “히딩크, 아드보카트, 베어벡 감독 아래서 선수와 코치 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느끼고 배운 것”이라고 했다. 이후 홍명보 감독의 한국 U-20대표팀 선수들은 독일과 극적인 무승부를 일궈냈고 미국과의 조 예선 최종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16강 진출이라는 대반전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홍명보 감독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다른 곳에서도 지켜볼 수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아들뻘 되는 어린 선수들에게 존댓말을 한다. 선수를 존경해야 선수들도 감독을 따르고 신뢰한다는 생각이다. 또 홍명보 감독은 경기 전후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뿐 아니라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선수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악수를 한다.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스킨십의 리더십을 보여준 홍명보 감독이다.
▲ 지난 6일 이집트에서 치러진 U-20 월드컵 16강전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3 대 0으로 승리한 홍명보 감독이 교민응원단석으로 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
가끔은 무서울 만큼 차가운 면모를 비추기도 했다. 끊고 맺음이 확실했고 길이 정해지면 돌아보지 않았다. 기성용의 대표팀 합류 논란 때의 일이다. 기성용의 U-20대표팀 선발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으나 국가대표팀과 K리그에 주력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해 기성용의 홍명보호 가세가 불발됐다. 입장이 정리되자 홍명보 감독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팀은 완성 단계이며 특정 선수의 유무가 전력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 팀은 강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로 모든 걸 정리했다. 한편으론 눈에 띄는 스타플레이어가 없다는 지적에 “난 스타가 아닌 강한 ‘팀’을 원한다. 우리 팀 선수 한 명 한 명이 나에겐 스타이고 소중한 존재들”이라고 말하며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대학생 선수들이 여느 대회보다 많았던 홍명보호가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과정의 하나다. U-20월드컵 본선에서 맞닥뜨린 위기의 순간 어느 선수를 대체 투입하더라도 팀이 흔들리지 않았던 배경이기도 하다. 김동섭과 오재석이 부상을 당해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을 때도, 김보경이 경고누적으로 전력에서 제외됐을 때도 홍명보호는 흔들림 없이 앞으로 전진했고 마침내 새 역사를 만들어냈다.
#늘 처음처럼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프란츠 베켄바워와 마리오 자갈로 등을 떠올리면 꼭 맞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스타 선수 출신이 감독으로 변모해 힘겨운 행보를 걷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스타 출신이라 관심이 더해 감독으로서의 실패가 그만큼 두드러지는 측면도 있다.
일반적으로 스타 선수 출신 감독이 지도자로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강한 자아에 따른 리더십의 붕괴다. 주위의 의견에 눈과 귀를 막곤 한다. 선수 시절 경험과 후광만을 믿고 무리하게 선수들을 다그치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새로운 변화와 흐름을 받아들이는 데도 상대적으로 인색하다. 과거 자신이 경험했고 플레이했던 기억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은 이 점을 분명히 가슴에 담고 있었다. 선수단 운영과 전술 운용에 있어 코칭스태프와의 상의는 물론이고 선수들의 의견을 듣는 데도 열린 자세를 견지했다. 홍명보 감독은 “처음엔 선수들이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한 게 사실이다. 중요한 건 과거의 이력이 아닌 현재의 서로에 대한 신뢰”라고 했다. 새로운 변화와 흐름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는데 세계축구의 최신 흐름인 4-2-3-1 시스템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럽 유명 클럽들이 선수들의 근육과 피로 회복을 위해 활용하는 얼음 욕조 찜질을 도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참고로 선수 시절 중앙 수비수로 활약한 홍명보 감독은 포백이 아닌 스리백의 리베로였다.
#진흙에서 진주를
대회 도중 카이로에서 만난 홍명보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경기 1시간 전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들면 참 우리 선수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상대팀엔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한둘이 아닌데 우리 팀엔 대학생 선수들이 절반 가까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 선수들이 승리하지 않았는가.”
홍명보 감독은 지난 3월 U-20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전국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넉넉지 않은 선수 자원이지만 직접 발로 뛰며 확인해 자신의 팀을 꾸리고 싶었다. 감독 구력이 짧은 탓에 확보해 둔 인재풀이 적기도 했지만 리더십의 첫 발은 머리가 아닌 발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무명의 대학생에서 스타로 발돋움한 김민우, 김보경, 오재석, 홍정호 등의 오늘을 가능케 한것은 홍명보 감독의 발품과 혜안이었다. 특히 부상으로 오랜 기간 재활에 매진했던 김민우를 주위의 우려에 개의치 않고 발탁한 것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등을 종횡무진 오간 김민우는 황태자급 활약으로 홍명보호의 질주를 최전선에서 이끌었다. 국내와 일본 등지에서 활약 중인 프로 선수들과 이름값으로 견주지 않고 실력과 기량을 따져 본선 무대에서 기회를 준 홍명보 감독의 냉철한 용병술이 뒷받침된 무명 선수들의 대반란이기도 했다.
홍명보 감독은
출생 1969년 2월 12일
신체 키 182cm
체중 74kg 혈액형 B형
학력 고려대학교 체육교육
데뷔 1992년 포항제철 축구단 입단
소속 광장초⇢ 광희중⇢ 동북고⇢ 고려대⇢
포항스틸러스(92)⇢ 벨마레 히라스카(97)⇢
가시와 레이솔(99)⇢ 포항스틸러스(2002)⇢
2002 월드컵 한국 대표팀 주장⇢LA갤럭시(2003)
경력 2006 독일월드컵 한국 대표팀 코치,
U-20 청소년 국가대표팀 감독(2009)
수상 2004년 국제축구연맹 100주년 기념 세계올스타
카이로=박문성 SBS해설위원
무명의 반란뒤엔 초호화 스태프
홍명보호 숨은 공신
▲ 화려한 과거를 묻어두고 철저히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어린 선수들을 조련한 홍명보호 코칭스태프. 왼쪽부터 이케다 세이고 트레이너, 서정원 코치, 홍명보 감독, 김태영 코치, 신의손 코치. 연합뉴스 | ||
명성만 놓고 본다면 역대 가장 눈부신 지원스태프라 할 수 있지만 주위의 시선처럼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어딜 가나 주목받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음지에서 궂은일을 도맡아야 했고 결과가 좋지 못하면 이름값 때문에 상대적으로 빗발칠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실제로 코칭스태프는 언론에 자신들이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렸다. 자칫 주객이 전도되거나 선수들의 부담이 가중될까 염려해서였다. 대신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을 물심양면 지원했다. 선수들이 최상의 조건에서 훈련을 하고 기량을 가다듬는 데 힘을 쏟았다. 서정원 코치는 상대 전력을 분석해 대응 전략을 만드느라 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김태영 코치는 이케다 트레이너와 함께 뙤약볕에서 선수들의 몸 상태와 자세를 잡아주느라 쉴 새 없이 땀을 흘렸다. 카메룬전 선발로 나선 이범영이 실수로 실점을 내줘 마음고생을 함께했던 신의손 코치는 승패의 최후 갈림길에서 극심한 심적 부담에 흔들린 어린 수문장들을 다독이는 동시에 숱한 경험에서 체득한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에 열의를 받쳤다.
선수들에게 이들 코칭스태프는 큰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 때로는 혹독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선수들과 의견을 나누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줄 때면 큰형과 같은 넉넉한 품을 잊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나서 선수들을 존대할 정도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관계가 돈독했다. 김태영 코치는 박희성이 대회 초반 부진으로 팬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자 박희성을 찾아가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어렵게 취재진을 찾아 박희성의 가치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기도 했다. 박희성은 이후 연속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며 김태영 코치에게 보은했다. 신뢰와 존중, 그리고 헌신은 홍명보호 코칭스태프의 이집트 생활 주된 화두였다.
카이로=박문성 SBS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