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먹고 뽑은 칼로 ‘물 베기’ 해프닝
▲ ‘경제검찰’ 오락가락 ‘반 카르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호열 위원장은 최근 ‘LPG업계 1조 원대 과징금, 4대강 담합 정황’ 등 숙성되지 않은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사진은 국감에서 정 위원장이 질의에 답하는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공정위가 출고가격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소주업체에 총 22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를 통보하는가 하면 담합 혐의 정황이 포착된 LPG업계에 대해서도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 부과 방침을 정한 것도 정 위원장의 ‘친 서민 정책’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강한 의지와 저돌적인 추진력은 그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해 그 빛이 바래고 있다. 그는 LPG업계에 대한 과징금 액수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과징금은 1조 원대가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업계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정치권 최대 이슈인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도 ‘담합 정황’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으나 이틀 만에 발언을 번복해 ‘청와대 개입설’ 등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담합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고, 민주당은 국정조사 카드까지 꺼내든 상태다. 정 위원장의 발언으로 촉발된 담합 의혹 불씨가 여의도 정가는 물론 사회 전반으로 확전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 위원장은 공정위 새 수장으로 발탁될 당시 친기업·친시장적 성향으로 인해 호된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취임한 지 넉 달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4대강 담합 논란의 중심에 선 그의 인생 역정을 되짚어 봤다.
경북 영천 출신인 정 위원장은 경복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줄곧 학계에 몸담아 왔다. 아주대 교수를 거쳐 공정위원장에 발탁될 당시에는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했다. 정 위원장은 공정거래정책과 상사분쟁 분야를 두루 경험한 전문가로 통한다. 2003년부터 공정위 경쟁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해 오다 2007년 8월 위원장에 선임됐다. 그는 이러한 활동과 공로가 인정돼 지난해 ‘공정거래의 날’ 행사 때 홍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또 지난해부터는 한국경쟁법학회 회장직을 맡아왔고, 2007년까지 10년 이상 서울대 법학연구소에서 공정거래법 등을 강의한 이력도 갖고 있다.
정 위원장이 공정위 수장으로 발탁되자 정치권은 물론 공정위 내부에서 조차 ‘깜짝 인사’라는 평가가 많았다. 신임 공정위원장 하마평이 무성히 나돌았을 당시 그의 이름은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정호열 카드’에 대해 “언론에 포착이 안 됐을 뿐 정 위원장은 원래부터 후보군에 있었다”고 설명, ‘깜짝 인사’ 논란을 무색케 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위원장이 기업 규제 완화와 사후 감독 강화라는 현 정부의 공정거래 정책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던 점이 공정위 수장으로 발탁된 배경이 됐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현 정부 인사들과 친분은 별로 없지만 ‘MB 노믹스’와 현 정부의 공정거래 정책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적임자로 정 위원장을 선택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내부 출신 위원장을 학수고대 해왔던 공정위 직원들은 정 위원장 내정 소식에 “또 학자 출신이냐”며 다소 실망스런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말기 때 내부 출신으로 수장 자리에 오른 이남기 전 위원장 이후 내부 출신 위원장을 배출하지 못한데 따른 불만으로 풀이됐된다. 실제로 이남기 체제 이후 발탁된 강철규·권오승·백용호 전 위원장은 모두 학자 출신이었다. 공정위 내부에서는 이번만큼은 서동원 부위원장 등 신임 위원장 하마평에 자주 오르내렸던 내부 출신 인사가 수장으로 발탁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지만 또 다시 학자 출신인 정 위원장에게 수장 자리를 내준 셈이 됐다.
‘깜짝 인사’에 따른 내부 불만과 함께 정 위원장이 그동안 걸어왔던 친기업·친시장적 행보를 감안할 때 ‘재계 검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정 위원장이 생명보험사의 주식시장 상장과 삼성전자에 대한 주주대표소송 등과 관련해 일관되게 삼성의 입장을 대변해왔다는 점을 우려했다. 실제로 정 위원장은 2006년 생명보험사의 상장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됐을 당시 보험계약자가 아닌 보험업계의 이익에 부합하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생보사 상장 반대론자들은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법적으로는 주식회사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그간의 경영행태 등에 미뤄 상호회사 성격이 강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2006년 6월 금융학회 주최 심포지엄에서 “상호회사적 성격을 인정하면 규범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생보업계의 입장을 지지했다. 보험계약자가 생명보험사의 성장에 기여한 만큼 생보사는 상호회사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어 생보사의 상장 차익을 보험계약자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정 위원장은 또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현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한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과 관련해서도 사법부의 결정을 지속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그는 2002년 1월 언론기고문을 통해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1심에서 재판부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기업 지배구조를 잘못 이해했으며 균형을 잃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기고문에서 “기업은 도덕성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효율성을 지향하는 영리집단일 따름”이라며 삼성 입장을 대변했다. 2002년 3월 한국법제발전연구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도 정 위원장은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을 비판했으나 이 소송은 2005년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이처럼 친기업 성향이 강한 정 위원장이 공정위 수장으로 발탁되자 일부 야권과 시민단체는 크게 실망하며 깊은 우려의 뜻을 전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7월 29일 논평을 통해 “그동안 친삼성·친재벌 입장을 견지해 온 인사가 재벌정책을 총괄하는 공정거래위원장 자리에 오르게 돼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와 지배구조 개선이 얼마나 후퇴할지 걱정”이라며 우려감을 표했다.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정 위원장은 2003년 출자총액제한제 강화에 반대하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며 “정 위원장이 공정성 측면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공정거래위원장 자격에 의심이 간다”고 비판했다.
야권과 시민단체의 우려를 뒤로한 채 정 위원장은 취임 이후 ‘경제 검찰’ 수장으로서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친서민’ 행보와 맞물려 ‘반 카르텔(담합 등 부당 공동행위)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공정위가 11월 18일 출고가격 담합 혐의를 받고있는 11개 소주업체에 총 22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를 통보하는가 하면 담합 혐의 정황이 포착된 LPG업계에 대해서도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 부과(1조 원대) 방침을 정한 것도 정 위원장의 ‘반 카르텔 전쟁’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 위원장의 강한 의지와 저돌적인 추진력은 그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인해 그 빛이 바래고 있다. 그는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LPG업계에 대한 과징금이 1조 원대가 될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업계가 강력히 반발하자 “실제 부과되는 과징금 규모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말을 바꿨다.
정 위원장은 또 11월 11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치권 최대 이슈인 4대강 사업 논란과 관련해 “4대강 턴키공사 입찰에서 담합과 관련된 듯한 정황들이 포착되고 있다”고 발언해 파문을 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파문이 확산되자 이틀 만인 13일 “현재 담합과 관련된 구체적 사실이 포착된 정황은 없다”며 꼬리를 내렸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정 위원장이 청와대 눈치를 보며 ‘말 바꾸기’를 하고 있는 만큼 4대강 담합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선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4대강 담합 의혹과 관련한 정 위원장의 ‘말 바꾸기’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담합 정황 포착은 와전된 것’이란 해명이 나온 지 하루 만이어서 ‘청와대 지침’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 이성남 의원은 11월 13일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박 수석의 발언은 청와대의 가이드라인 제시”라고 비판했고, 무소속 신건 의원도 “박 수석의 와전 발언 이후에 공정위의 해명 자료가 나왔다.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는 말은 증거는 없어도 담합 자료가 있을 때 하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경실련도 긴급 논평을 통해 “정 위원장이 언급한 4대강 턴키 사업의 나눠먹기 담합은 이미 건설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것이었고, 다만 누가 이것을 공개하느냐가 문제였었다”며 “2차 가격경쟁 발주도 입찰 전에 낙찰자가 이미 결정되었다는 소문들이 있었다”며 담합 관계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담합 의혹이 증폭되자 급기야 민주당은 4대강 사업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11월 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4대강 사업 턴키공사 담합에 대해 공정위가 입장을 번복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확한 파악을 위해서라도 국정조사를 꼭 해야 한다”며 국정조사 추진 방침을 분명히 했다.
정 위원장의 발언으로 촉발된 담합 의혹이 가뜩이나 시끄러운 4대강 사업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든 만큼 담합 의혹 불똥은 이제 여의도 정가로 옮겨 붙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으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반 카르텔 전쟁’을 선포하면서 담합 정황이 포착된 업체에 대해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는 정 위원장이 4대강 담합 의혹에 대해서도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한 진상규명을 할 수 있을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준규 정호열 닮은꼴 수난
'사정기관 총수들' 영이 안 서네
▲ 김준규 검찰총장 | ||
김 총장은 천성관 전 검찰총장 내정자의 중도하차로 공석이 된 검찰총장에 전격 발탁됐고, 정 위원장 역시 백용호 전 위원장이 국세청장으로 영전하면서 공석이 된 공정위원장 자리에 깜짝 발탁된 바 있다.
사정기관 중추인 검찰과 ‘재계 검찰’로 통하는 공정위 수장 자리에 오른 두 사람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김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탈세 의혹 등이 불거져 자질 논란에 휩싸인 바 있고, 정 위원장은 청문회 대상은 아니었지만 친기업·친시장적 행보로 인해 야권과 시민단체로부터 ‘부적격 인사’라는 악평에 시달려야 했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두 사람은 서서히 조직을 추스르면서 본연의 사정업무를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으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취임 4개월이 채 안된 상항에서 대·내외적인 갖가지 악재로 또다시 수난을 겪을 형국이다.
김 총장은 자신의 ‘돈봉투’ 파문에 이어 검찰 인사들의 잇따른 비리 의혹 사건이 불거져 총체적인 위기 국면에 직면해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1월 15일 대검찰청 소속 모 검사는 음주운전을 하다 추돌 사고를 내 본인과 동승자가 중태에 빠지는 사고를 일으켰다. 또 서울중앙지검 소속 수사관 2명은 억대의 공짜 술을 마신 정황이 포착돼 징계 대상에 올라 있다. 서울북부지검 소속 직원 최 아무개 씨는 구속된 피의자를 석방시켜주겠다며 1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총장을 비롯한 검찰 직원들의 부적절한 행위가 잇따라 터지자 급기야 이귀남 법무부 장관 은 11월 19일 검찰에 ‘복무기강 확립 특별지시’를 하달했다. 검찰 공무원들의 비리와 사건사고가 잇따라 우려를 사고 있으니 복무자세를 가다듬으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정 위원장도 부적절한 언행으로 정치권과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취임 이후 ‘반 카르텔 전쟁’을 진두지휘 해 온 정 위원장은 LPG업계에 대한 과징금이 1조 원대가 될 것이란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업계의 강력한 반발이 잇따르면서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
정 위원장은 특히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담합 정황’ 발언을 했다가 파문이 확산되자 말을 바꾸는 등 ‘경제 검찰’ 수장으로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언행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정 위원장 발언 이후 청와대와 여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반면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대여 공세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사정기관 총수’ 동기나 다름없는 김 총장과 정 위원장이 안팎의 악재로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모양새다.
취임 이후 첫 번째 시련에 직면한 두 사람이 과연 위기를 극복하고 실추된 명예와 사정기관 수장으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