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떡 먹은 회장님 동치미(외환은행 인수)도 군침?
▲ 지난 4일 KB금융 차기 수장으로 내정된 강정원 회장.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처럼 그는 성실함과 철두철미한 업무스타일로 유명하다. 연합뉴스 | ||
1950년생 호랑이띠로 내년 호랑이해를 맞으며 날개를 단 강정원 회장은 서울 출신이지만 학력이 독특하다. 강 회장은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서울 중앙중학교를 다녔다. 경기고등학교(65회)에 입학했지만 졸업은 홍콩외국인학교에서 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다트머스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그는 미국 타후트대학교 플레처스쿨 국제법 및 외교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 졸업을 하면서 강 회장은 씨티은행 뉴욕본사에서 금융계 첫발을 내딛게 된다. 1983년에는 뱅커스트러스트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주로 리스크 관리와 경영에 관여했다. 13년 후에는 이 은행의 한국 대표를 맡았다. 이어 1999년 뱅커스트러스트은행과 도이치뱅크가 합병하자 도이치뱅크그룹 한국 대표직을 역임한다. 이때 이헌재 당시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의 눈에 띄어 재정경제부 장관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 국제금융분과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런 인연 등으로 강 회장은 2000년 6월 매각이 추진되던 서울은행의 행장으로 취임해 국내 금융계로 진출한다. 서울은행장으로 2년 정도 재직하면서 외국계 투자자들에게 서울은행을 매각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그러다 2004년 국민은행장으로 취임, 3년 후에는 연임에 성공했고 최근 KB금융 회장 자리까지 꿰찼다.
그는 하루에 두 갑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체인 스모커’. 취미인 골프는 싱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강 회장은 말수가 적어 조용한 편이지만 회의석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는 백 마디 말보다 더한 카리스마가 있다는 평을 듣는다.
사실 강 회장이 은행장에 취임했을 당시 국민은행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2004년 11월 신임 행장으로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인사차 방문한 강 회장에게 윤 위원장이 “국민은행이 큰일입니다”로 취임 인사를 대신한 것으로 전해질 정도였다. 국민은행의 자산건전성, 수익성, 자본적정성 및 경영관리 등 모든 부문에서 취약점이 드러난 상태였던 것. 감독당국에서는 ‘국민은행이 이러다 망한다’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강 회장은 이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국민은행장 임기를 시작하면서 경영의 안전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2004년 3.26%로 은행권 최고 수준이었던 국민은행의 연체율은 5년 만에 은행권 최저 수준인 1.05%로 안정됐을 뿐만 아니라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도 국내 최고 수준인 13.16%로 개선됐다. 경쟁 은행들이 중기대출, 주택담보대출, 해외진출 및 M&A(인수·합병) 등으로 몸집을 키우는 동안에도 강정원의 국민은행은 몸 추스르기에 전념했다.
강 회장은 국민은행과 금융감독 당국의 불편한 관계도 개선시켰다. 전임 김정태 행장이 ‘규제당국과 시중은행이 싸우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발전한다’는 지론을 가졌던 만큼 당국과의 관계는 소원했다. 하지만 강 회장은 “감독기관과 원만한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윤증현 당시 금감위원장도 “도울 일이 있으면 적극 돕겠다”고 화답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국민은행 추스르기에 성공해 자신감이 붙은 강 회장은 ‘회심의 카드’로 외환은행 인수를 준비했다. 이는 아시아 리딩뱅크로 한 단계 올라선 뒤 글로벌뱅크로 도약하려는 국민은행의 장기적인 전략이었다. 그리고 2006년 국민은행은 론스타와 외환은행 주식 4억 5706만 주(지분 70.87%)를 주당 1만 5200원, 총 6조 9474억 원에 인수하는 본계약을 체결하는 단계까지 갔다. 하지만 ‘먹튀’ 논란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론스타가 그해 11월 재매각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회심의 카드는 물거품이 됐다.
당시 강 회장은 외환은행 인수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측근인 ‘전략통’ 최인규 부행장을 실무책임자로 임명하고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할 정도였다는 것.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일각에서는 그가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했다면 치적을 인정받아 지주사 출범 때 황영기 전 회장을 제치고 KB금융 초대 회장에 무난히 안착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결국 강 회장은 지난해 실시한 초대 회장 선임 과정에서 황영기 전 회장과 맞붙어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KB금융 회추위는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반수인 5명 이상의 표를 얻으면 당선된다. 사외이사의 의견이 회장직을 결정하는 데에 절대적인 것이다.
당시 이사회와 친분을 다지고 있었던 강 회장이 5명 이상의 표를 얻어 선임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황 전 회장의 5 대 4 역전승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황 전 회장이 ‘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사외이사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강 회장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황 전 회장이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투자한 상품으로 인해 우리은행이 1조 6000억 원가량의 손실을 입은 것에 대해 금융당국이 책임을 물은 것이다. 금융당국은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결정했고 황 전 회장은 지난 9월 KB금융 1주년 기념식을 끝으로 물러났다.
강 회장은 바통을 이어받아 회장 직무대행을 시작했고 일주일도 안 돼 KB금융 핵심 임원과 부서장들에 대한 ‘속전속결식’ 인사를 단행했다. 강 회장은 이 깜짝 인사를 통해 자신의 측근들을 전진배치하고 황 전 회장 라인은 배제해 KB금융 회장직을 노리고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이러한 친정체제를 기반으로 강 회장은 유리한 고지에서 KB금융 회장 ‘선거’에 나섰다. 게다가 초대 회장 인선에서 강 회장을 지지했던 4명의 사외이사들이 건재해 있었다. 강 회장의 라이벌은 관료 출신인 이철휘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과 김병기 포스코 사외이사. 하지만 이들은 회장 선임절차의 공정성 문제를 거론하며 회추위 면접에 불참했다. 특히 이 사장은 사외이사들이 특정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회장 인선 과정이 불공정하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강 회장은 단독 면접을 강행해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회장으로 추천되기에 이른다.
최근 관가에선 강정원 회장이 선임된 것과 관련해 청와대 측이 불편한 심기를 나타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면접에 불참한 이철휘 사장과 김병기 사외이사는 현 정부와 친분이 두터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정당국에서 강 회장 때 국민은행 주최 행사를 주시하고 있다’는 루머가 돌면서 일각에서는 벌써 강 회장 흔들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회장 추천 과정에서의 파행 여파 때문일까. 강 회장은 현재 외부 접촉을 삼가고 있다. KB금융 내부 관계자는 “강 회장은 내년 1월 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회장으로 공식 선임될 때까지 언론 접촉은 물론 공식 행사도 나가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편 ‘KB금융호’를 이끌 강 회장이 선결해야 할 문제로 M&A를 통한 KB금융의 몸집불리기가 거론되고 있다. 금융지주사임에도 국민은행이 97%의 비중을 차지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해야 하기 때문. 과거 실패 경험이 있는 외환은행 인수 재도전이 강 행장의 능력을 검증할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 회장으로선 회장 대행에 취임하자마자 황영기 전 회장 측근들을 물갈이하면서 금이 간 조직을 추스르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게다가 회장 선임 과정에서의 불공정 시비가 정통성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 회장으로서는 KB금융 안팎 모두에 신경을 써야 할 처지인 것이다. 이처럼 앞에 놓인 암초들을 어떻게 헤치고 나갈 것인지 강정원 회장의 행보에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포스코와 주식거래 왜
회장 대행 때 2500억 '선뜻'
전자공시에 올라온 포스코의 최근 분기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 10월 KB금융지주와 상호 주식 매입을 한 사실이 ‘경영상 주요 계약’에 나와 있다. 포스코는 KB금융의 주식 약 400만 주를 매입하고 KB금융은 포스코 주식 약 46만 주를 매입한 것으로, 금액으로는 2500억 원 상당이다. 특히 강정원 회장이 회장대행을 수행하고 있을 당시에 이뤄진 것이라 금융권에서는 포스코가 강 회장을 밀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 강 회장의 KB금융 회장 선임 가능성이 미지수였음에도 불구하고 2500억 원이나 되는 거래를 지시한 게 의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KB금융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도 포스코와 상호 주식 매입이 있어 이 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하면서 갖게 된 자사주를 포스코의 자사주와 교환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서로 각 업계를 대표하는 포스코와 KB금융이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자사주를 상호 매입한 것으로 강정원 회장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를 바라보는 노조의 달라진 시선
'낙하산'에서 '한 식구'로
▲ 지난 9월 물러나는 황영기 회장(왼쪽)과 강정원 행장. | ||
그런데 노조는 회추위 면접을 앞둔 지난 1일 성명서를 내 “작년처럼 사외이사 개인의 이해관계나 득실에 따라 새로운 회장이 선택된다면 조직의 안전성을 저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권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이미지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노조는 “민간기업인 KB금융의 회장 인사가 신 관치금융과 노조 탄압이 예상되는 정부와의 코드 맞추기 형태의 낙하산 인사로 귀결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노조의 총력투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성명서는 강정원 회장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관치금융이 될 수 있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 반대한 것으로 강정원 회장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직원들 사이에서 강 회장의 선임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금융권 노동조합 관계자는 “강 행장에 대한 국민은행 안팎의 평가가 처음엔 별로였는데 황영기 전 회장에 대한 내부 반감이 커 강 행장이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