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발탁’ 인사 정치적 중립 지킬까
고 위원장의 컴백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사회통합위원회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고 위원장이 기대와 우려의 시선 속에서 ‘사회통합’을 이뤄내는 데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그가 걸어온 삶과 최근 행보를 통해 해답에 다가가 봤다.
“저는 그동안 사회봉사, 민간 활동에 전념해 왔는데 청와대의 거듭된 요청이 있어 정치적 중립을 전제로 사회통합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저는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지키면서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해소하는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데 정성을 쏟고자 합니다.”
고건 위원장은 사회통합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보도 자료를 통해 이와 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고 위원장 측이 밝힌 입장에는 그동안의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정치적 중립’을 전제로 위원장직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은,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공직을 맡는 것에 대해 부담이 적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고 위원장 측 김덕봉 전 공보수석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처음 고 전 총리가 정치적 중립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것은 그렇게 하면 청와대에서 철회를 할 것으로 알고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청와대에서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니까 더 이상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중립과 함께 고 위원장이 내건 조건은 ‘비상근직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김 전 공보수석은 “상근직이 되면 업무 추진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으로 비상근직을 요구했다. 환경재단 이사장을 겸임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 위원장이 처음 사회통합위원장직 제안을 받은 것은 2개월여 전이었다고 한다. 당시엔 위원장 후보로 여러 명이 물망에 오르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진현 건국60주년 기념사업위 집행위원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등 후보에 거론되던 이들 모두가 고사했고, 유력후보 중 한 명이었던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마저 “정치권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본인의 뜻이 워낙 강해 무산됐다는 후문이다.
고 위원장 역시 처음엔 완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무렵 고 위원장을 만났던 한 측근은 기자에게 “(당시) 고 전 총리는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의구심이 컸다. 굉장히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계셔서 결국 받아들이지 않을 줄로 알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고 위원장 측 김덕봉 전 공보수석 역시 “그동안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으로 활동을 열심히 해오셨고 본인도 보람을 많이 느끼고 계셨다. 처음 제의가 왔을 때 굳이 새로운 일을 맡겠다는 의향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이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고 위원장은 이를 뿌리치지 못했다고 한다. 맹형규 청와대 정무특보는 ‘칠고초려’라고 표현될 정도로 수차례 고 위원장을 만나 설득해왔다. 맹 정무특보는 “굉장히 귀하게 모셨다. ‘공직은 할 만큼 했다’며 민간에서 국가에 기여할 일을 하겠다고 극구 고사했었다. 정말 삼고초려다”고 그동안의 어려웠던 과정을 밝히기도 했다. 또 지난 12월 6일~20일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총회 참석차 덴마크에 머무르다 온 고 위원장에게 이 대통령과 청와대 측은 “돌아올 때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해 함께 돌아오자”는 제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 역시 기후변화협약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17~19일 덴마크를 방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고 위원장 측은 “대통령과 일정이 달라 현지에서도 직접 만나지 못했다. 전용기를 타고 함께 돌아오는 것이 어색할 거 같아 사양했다”고 설명했다.
사회통합위원회의 출범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상황에서도 이토록 청와대가 ‘전직 총리 고건’을 ‘욕심’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 위원장은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지만 세간에서는 그의 발탁에 대해 ‘정치적 이유’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호남(전북 군산) 출신으로 최연소 전남도지사를 지내고 서울시장 경력도 가지고 있는 그가 ‘민심 흡수’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정치 분석가는 “세종시와 4대강 문제 등으로 충청권은 물론 호남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 이 대통령이 고 전 총리를 통한 민심 수습 효과도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 위원장은 그간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지만 대중성은 ‘여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군이 부상하기 전까지 그는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급작스레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그 이후에도 차기 대선후보 인물난을 겪던 열린우리당은 고 위원장을 ‘모시려’ 애썼고 대선이 임박했던 11월까지도 여권 주변에서는 출마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정계를 떠난 고 위원장은 지난 2008년 2월 출범한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으로 추대돼 환경운동을 벌여왔다. ‘환경운동가 고건’의 행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도 “고 전 총리가 4대강 사업과 저탄소 녹색성장 등 이명박 정부의 환경 연관 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사회통합’이라는 명목하에 고 위원장을 ‘다용도’로 활용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참모들 역시 이 대통령에게 ‘고건 전 총리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조언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고 위원장은 박정희 정부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장관을 세 번, 서울시장과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한 ‘행정의 달인’으로 평가받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국가원수직을 대신 수행한 전력도 있다. 오랜 공직 생활 동안 그는 ‘미스터 클린’이라 불릴 만큼 부정부패에 연루된 적이 없고 스캔들도 거의 없다. 서울시장 재임 중 그는 민원 과정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오픈시스템’을 도입해 국제투명성기구가 수여하는 ‘2001 세계청렴인상’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63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경력으로 ‘위기관리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는다. 당시 상황에 대해 고 위원장은 “국가적인 위기였다. 순전히 대통령 권한대행인 내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려 있었다. 권한대행이 된 뒤 첫 24시간 동안 비상전화 옆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상황을 진정시켰다. 국가안보, 대외 관계, 우리 경제의 해외 신인도, 사회 안정, 경제 안정 등의 문제에 대해 나의 직감적인 판단으로 순서를 찾아 상황을 진정시키며 위기를 관리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세간엔 ‘지도자 고건’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 소극적이고 근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제기되는 지적이다. 과거 그가 대통령 후보에 거론되었을 때 과연 혹독한 후보 검증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부호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그가 관선을 거쳐 2대 민선시장으로 안정적으로 당선되었음에도 ‘서울시장을 두 번 한 것으로 족하다’며 재선에 도전하지 않은 것을 봐도 안정을 추구하는 고 전 총리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적지 않다. 또한 처세에 능한 그를 향해 “고 전 총리는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스타일이다. 그것도 승산이 있는 곳에만 얹는다”고 비판을 하는 이도 있다.
고 위원장의 역할을 떠나 사회통합위원회 자체가 제 구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발한 사회통합위원회가 자칫 ‘들러리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맹형규 정무특보는 이와 관련해 “사회통합위원회는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에 따라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힘이 쏠릴지는 모르겠다”며 “고 전 총리의 정치중립은 의지의 문제”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간위원들의 면면 또한 ‘중도인사’를 기용하려는 흔적이 엿보이지만 ‘우파인사’들에 치중되었다는 점은 우려를 갖게 한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라종일 전 주일대사,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 이원덕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강지원 전 청소년보호위원장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위원으로 위촉되었지만, 진보색채가 강한 인사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여기에 박효종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와 소설가 이문열, 복거일,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은 보수성향이 강한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고 위원장 측 관계자는 “위원들의 구성에도 고 전 총리의 의사가 반영되었다. 대부분은 충분히 자격이 있는 분들이라고 평가하며 만족했지만 한두 분은 막판에 고 전 총리가 거절했다”고 전했다.
고 위원장은 사회통합위원장직에 먼저 후보로 거론되었던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도 여러모로 비교될 가능성이 높다. 고 위원장의 영입으로 두 조직의 역할과 두 위원장의 행보에 대한 관심도 더 뜨거워진 상황. 이에 대해 김덕봉 전 공보수석은 “국민권익위는 기존 조직이 통합된 것이고 사회통합위는 새로 신설된 조직이다. 기능이 중복되어선 안 될 것이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율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위원장은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부친인 고형곤 박사(2004년 작고)의 조언을 들어왔다고 한다. 그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던 고 고형곤 박사가 고 위원장이 공직생활을 시작할 당시 ‘줄서지 마라, 돈 받지 마라, 술 잘 먹는다고 소문내지 마라’는 ‘공직삼계’(公職三戒)를 내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 위원장이 고심 끝에 다시 공직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기까지 그의 마음속엔 선친의 가르침이 되새겨졌을 법하다.
180㎝로 동년배에 비해 유난히 키가 큰 편인 그는 젊은 시절 친구, 동료들과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균형감 있는 사진을 위해 가운데에 서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사진 아래엔 “또래보다 키가 커서 사진 찍을 때마다 위치 선정에 고심했다” “여럿이 함께 찍은 사진은 대부분 산 그림이 그려집니다”라는 글귀가 써 있기도 하다. 그가 사진 찍을 때마다 ‘가운데에 서서 중심을 잡던’ 습관처럼 앞으로 사회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이뤄내는 데 무게중심 역할을 하게 될까. 사회통합위의 공식 출범을 하루 앞둔 지난 22일 밤, 기자는 고 위원장 자택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인터뷰 요청을 정중하게 사양하면서 “앞으로 지켜봐 달라”는 말만 건넸다.
'고건 스타일' MB와 통할까
코드는 몰라도 마음은 오픈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2월 23일 오후 청와대에서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위촉식 및 간담회가 열리기 전 고건 위원장과 환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고건 위원장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내향적 감정형’으로 분류한다. 이런 사람은 인내심이 많고 포용력이 있으며 관용을 잘 베푼다고 한다. 일례로 고 위원장은 내무부 지방국장 시절 부하 직원들과 낚시를 하러 갔다가 직원 한 명이 낚싯대를 크게 젖히는 바람에 눈두덩이를 꿰인 적이 있었다. 직원이 ‘이제 죽었구나’ 하며 다가갔지만 당시 고 국장은 침착하게 가위를 가져오라고 해서 낚싯줄을 자른 뒤 차분히 바늘을 빼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낚시를 계속했다고 한다. 직원에게도 그 일에 대해 질책하지 않았다.
또한 고 위원장은 그간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어왔다. 실제로 그는 골치 아픈 민원에 대해서도 열심히 들어주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는 믿음을 지론으로 갖고 있다고 한다. 반면 이러한 유형의 단점은 소극적인 형태로 현실에 순응하는 점이라고 한다. 고 위원장이 처세에 능한 것으로 비치는 것도, 그에게 “결정적 순간에 ‘노’라고 말하지 못 한다”는 평가가 뒤따르는 것도 모두 ‘현실 순응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불도저’라는 별명처럼 과감하고 도전적인 업무 스타일을 선호하는 이 대통령과는 대조적인 면모다.
고 위원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았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누구와 코드를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총리 시절 주례 모임 때면 코드가 아니라 개방적인 주파수를 열어놓고 대통령과 협의·토론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 등 무려 8개 정부에서 공직을 지낸 고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서는 어떤 주파수로 대응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