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청순과 섹시 사이 길을 찾았다
▲ 소녀시대가 2집 타이틀곡 ‘Oh!’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연합뉴스 | ||
소녀시대가 데뷔한 2007년 이전까지 가요계는 다양한 세력들이 패권을 다투는 춘추전국시대 같았다. 2006년 가요계를 돌아보면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비를 중심으로 한 댄스가수, 김동률 성시경 등 오랜 시간 가요계의 왕좌를 지켜온 발라드 가수, 동방신기와 빅뱅 등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남성 아이돌 그룹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소녀시대가 가장 먼저 맞붙어야 하는 섹시 여가수들도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솔로 가수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이효리를 필두로 채연 현영 박정아 LPG 등 섹시 여가수들이 남성 팬층의 사랑을 독점한 것. 그런데 4년 뒤인 2010년엔 이효리가 소녀시대의 맹위에 눌려 새 앨범 발매 시점을 조절하고 있다.
2006년 가요계의 또 다른 이슈는 SM이 데뷔를 겨냥해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한 새 여성 그룹 ‘슈퍼걸즈’였다. 11인조 그룹으로 알려진 슈퍼걸즈의 멤버들 프로필이 알려지면서 데뷔도 하기 전에 팬클럽까지 생겼지만 슈퍼걸즈는 결국 데뷔하지 못했다. 원더걸스 때문인지 이름을 소녀시대로 바꾸고 멤버도 9명으로 조정해 새로운 그룹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소녀시대, 다시 말해 소녀들의 그룹이다. ‘슈퍼걸즈’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강한 임팩트를 포기하고 ‘소녀’라는 단어가 주는 풋풋함과 청순함을 팀 이름에 담았다. 이로 인해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섹시 여전사들과의 정면 승부를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소녀가 소녀로만 머물 순 없다는 점이다. ‘소녀’의 청순함만 강조해선 섹시 여가수들과의 정면 승부가 불가능하니 결국 섹시로 승부하는 여가수들과 공존하는 청순 강조 그룹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물론 소녀시대의 아홉 멤버는 하나 같이 ‘섹시’ 스타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출중한 몸매를 바탕으로 한 섹시한 외모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녀시대의 이미지는 늘 청순을 기반에 두고 있다. 결국 소녀시대의 성공 여부는 ‘소녀’라는 이름으로 억눌러 놓은 멤버들의 섹시미를 어떻게 드러내 조화시킬 수 있느냐였다.
이를 위해 소속사에선 자극적인 의상이나 안무를 최대한 자제하며 ‘소녀’라는 이름에 걸맞은 청순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섹시 코드도 다분히 내재돼 있다. ‘Gee’로 활동할 당시의 무대 의상은 컬러 스키니진, ‘소원을 말해봐’ 당시엔 해군제복을 활용한 ‘마린룩’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치어리더 복장. 섹시 여가수들이 과감한 노출을 가미한 무대 의상으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데 반해 소녀시대는 긴 다리를 강조한 스키니진으로 청순함과 섹시함을 조화시켰다. 이후 해군 제복과 치어리더 의상에선 긴 다리만 노출하는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섹시미를 내보였다.
항간에선 해군 제복에 이은 치어리더 복장을 두고 비판의 소리도 있다. 다음 앨범에선 간호사나 스튜어디스 복장을 입고 나올 것이냐며 소녀시대의 무대 의상이 각종 제복에 집착하는 변태적 성적 판타지와 묘하게 맞닿아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연이어 빅히트를 한 ‘Gee’와 ‘소원을 말해봐’의 가사를 잘못 해석하면 상당히 성적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소녀시대의 멤버 가운데 고등학생이 여럿이었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논란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사안들이다.
그럼에도 소녀시대는 고유의 청순함을 유지하며 이런 지적을 피해갔다. 신곡 ‘Oh!’의 가사는 오빠를 짝사랑하는 소녀의 설렘을 표현하고 있고 안무 역시 더욱 발랄해졌다. 김봉현 음악칼럼니스트는 최근 칼럼을 통해 “소속사가 소녀시대를 통해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정확히 자극한 것은 대단히 유효한 전략이었다”라며 “그렇지만 그 부분을 지적할 경우 오히려 귀여운 여동생을 보고 천박한 생각을 한다며 경멸어린 시선을 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말했다.
2007년 가요계에서 중·고교생 위주의 멤버들로 뭉친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는 걸그룹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로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그렇지만 이들의 성공 여부에는 물음표가 많이 뒤따랐다. 소녀시대의 경우 아홉 명이나 되는 멤버가 문제였다. 한 무대에 같이 서기엔 너무 멤버가 많다는 지적부터 아홉 명의 멤버가 두루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할 경우 질투와 왕따 등으로 인해 팀이 깨질 위험성도 제기됐다.
또한 실제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는 듯했다. 데뷔 초 가장 돋보인 멤버는 단연 윤아와 태연이었다. 윤아는 이미 드라마 <9회말2아웃>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던 터라 다른 멤버들에 비해 지명도에서 한 발 앞서 있었다. 이후 윤아는 일일드라마 <너는 내운명>에 출연해 주부층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등 배우로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이게 된다.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 역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는 등 데뷔 초 그룹의 중심축이 됐다. 태연의 재기 발랄한 매력은 큰 사랑을 불러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리더 태연과 배우 출신 윤아만 돋보이는 소녀시대는 오래갈 수 없다. 그렇지만 다행히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멤버들도 하나 둘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무한도전>에서 박명수와 듀엣 곡 ‘냉면’을 부른 제시카다. 또한 수영은 탁월한 몸매를 바탕으로 청순 글래머의 대표 주자로 주목받았다.
비교적 덜 관심을 받았던 유리와 서현은 이번 2집 앨범을 통해 가장 주목받고 있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SM)은 신곡 ‘Oh!’를 선보이며 무대 중심에 서현과 유리를 세웠다. 유리는 이미 지난해 열린 소녀시대의 첫 번째 콘서트에서 화려한 단독 무대를 선보이며 이제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고, 팬들 사이에서 ‘서현의 재발견’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올 정도로 최근 서현의 인기도 급상승하고 있다. 멤버가 서너 명에 불과한 그룹에서도 주목받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가 구분되는 게 아이돌 그룹의 특징인 데 반해 소녀시대는 아홉 명의 멤버가 두루 사랑을 받는 데 성공함에 따라 비로소 ‘전성시대’를 누리게 된 것이다.
소녀시대가 가요계 최고의 자리에 서기 위해 극복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제한된 팬층을 극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남성 아이돌 그룹의 경우 10대 여성 팬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지만 그 한계가 분명했다. 동방신기 이후의 아이돌 그룹이 과거보다 더 강력해진 까닭 역시 20대 30대 여성 팬들, 소위 말하는 누나부대를 섭렵했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 그룹은 여성 팬에 비해 훨씬 덜 적극적인 남성 팬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도 10대와 20대로 한정된. 결국 여성 팬과 보다 폭넓은 연령층을 아우르지 못할 경우 절대 최고는 될 수가 없다.
다소 무리로 보인 아홉 명의 멤버는 각기 매력을 선보이며 10대와 20대 남성 팬들에 어필하기 시작했다. 소녀의 청순한 이미지를 확실히 구축한 뒤 ‘Gee’부터 시작된 약간의 성적 판타지 가미는 점차 팬층을 30대 이상 회사원들에게까지 넓히는 효과를 불러왔다.
가장 어려운 대상인 주부층을 뚫어낸 일등공신은 단연 윤아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일일드라마 <너는 내운명>에 출연해 주부층의 관심을 소녀시대로 확장시킨 것. 이런 과정을 거치며 소녀시대는 전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최고의 걸그룹으로 성장했다. 또 하나의 관문은 한류 스타로 거듭날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해 소녀시대는 지난해 12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올해 중국 상하이, 일본 도쿄, 태국 방콕 등에서 아시아 투어 공연을 이어간다. 이제 소녀시대는 또 다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소녀시대의 미래
핑클언니들 닮고 싶어요
소녀시대의 전성기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어쩌면 이 질문은 지난해부터 가요계에 불어 닥친 걸그룹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소녀시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쉽게도 이들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멤버들이 소녀일 순 없기 때문이다.
가장 자연스런 해체는 멤버들이 따로 또 같이 활동을 시작해 각자의 영역에서 모두 성공하며 서서히 소녀시대의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다. 여성 아이돌 그룹의 원조 격인 SES와 핑클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소녀시대 역시 데뷔 초부터 따도 또 같이 활동을 병행했다. 소속사 SM 측 역시 멤버들의 개별 활동을 막기보다는 적극 후원한다는 입장이다. 멤버들이 개별 활동을 벌이다 주기적으로 앨범을 발표해 소녀시대의 인기를 이어가다 점차 앨범 발매 주기를 늘려 서서히 해체하는 시나리오다.
가장 부담스런 해체는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인한 그룹 해체다. 현재 동방신기가 겪고 있는 해체 위기가 대표적인 경우다. 과거 HOT 역시 노예 계약 파문에 휩싸이며 재계약 과정에서 해체됐다. 또한 슈퍼주니어의 경우처럼 멤버 한두 명이 계약 내용에 불만을 품어 소송을 제기하는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아홉 명이나 되는 멤버 사이의 불화설 왕따설 등을 통한 해체, 일부 멤버의 열애 및 결혼으로 인한 해체, 급격한 인기 하락에 의한 해체 등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가장 확실한 해체 계기는 소녀시대가 그 정체성을 잃어 활동이 위축되는 것이다. 결국 더 이상 그들이 소녀일 수 없는 시기가 바로 해체 시점이라는 것. 그 시점은 결국 청순과 섹시의 조화를 통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들이 그 조화를 잃는 순간이 될 전망이다. 다만 일본의 일부 걸그룹처럼 청순과 섹시의 조화를 잃은 뒤 너무 섹시에만 치중하다 심하게 망가져 버리는 전철만은 밟지 않기를 바란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