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등 거론…최약체 야당 탓 아베 장기집권 가능성 농후
일본 언론에 따르면 “조만간 아베 총리가 중의원을 조기 해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총리가 의회 해산권을 가지고 있는데, 아베 총리는 2년 전 국회를 해산하고 중의원 선거(총선)을 다시 실시해 정국을 장악한 바 있다. 당시 이를 두고 ‘정치적 꼼수냐’ ‘승부수냐’하는 논란이 거셌다.
현지 언론들은 “만약 이번에도 아베 총리가 유리한 시기에 국회를 해산하고, 이어진 총선에서 자민당이 좋은 결과를 거두면 2021년 9월까지 장기 집권하는 구상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과연 아베 총리의 행보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 일본 정치부 기자들의 시각을 통해 들여다본다.
일본 정치부 기자들의 80%가 아베 신조 총리가 2020년까지 장기집권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진은 자위대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는 아베 총리. EPA/연합뉴스
“모든 것은 역사에 아베 신조라는 이름을 남기기 위함이다.” <주간겐다이>가 일본 정치부 기자 100명에게 “아베 총리가 2020년까지 총리직을 역임할 수 있을까”라고 물은 결과, 80명 가까이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본 집권 자민당은 당 총재 임기 제한을 현행 2회에서 3회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내년 3월 당 대회에서 개정안이 채택될 경우, 아베 총리는 임기가 3년 더 늘어나 2021년 9월까지 집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3500일이 넘어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된다. 역대 재임기간 1위는 가쓰라 다로 전 총리로 2886일이다.
<요미우리신문> 기자는 “사실상 아베 총리의 임기연장은 확정적이다. 포스트 아베의 부재, 지리멸렬한 야당 탓에 선거를 치러도 과반수는 무난하게 확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사히신문> 기자 역시 “장기집권에 대한 총리의 야심이 대단해, 적어도 2020년까지는 집권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배경으로는 헌법 개정과 2020년 도쿄올림픽을 꼽았다.
그간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이 필생의 과업”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아베 총리가 임기를 늘려 개헌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 짓고 싶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자민당이 당규를 개정하면서까지 장기집권을 지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일요신문DB
물론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에 걸림돌이 없는 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는 게 바로 ‘건강’ 문제다. 아베 총리는 궤양성 대장염을 지병으로 갖고 있으며, 스트레스에 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집권 1년 만에 사임한 것도 지병이 원인이었다. 당시 그는 스트레스로 인해 엄청난 복통에 시달렸고, 변기가 새빨갛게 물들 정도로 다량의 하혈을 하기도 했다. 한 정치 칼럼니스트는 “최근 외교 실적이 신통치 않아 아베 총리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약으로 유지·관리하고 있는 심신상태가 어디까지 버텨 줄지가 관건”이라고 귀띔했다.
더불어 일본이 직면한 국내외 정세도 만만치 않다. 특히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당선된다면 힘겨운 정권 운영이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가 미·일 동맹관계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일본 외무성은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 “일본의 외교 및 안보정책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일왕의 생전퇴위 문제도 중대한 변수다. 이와 관련 <마이니치신문> 기자는 “일왕 퇴위에 잘못 대응했다간 여론의 반발로 아베 내각 지지율이 급락하고, 정권이 쓰러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지방창생상. AP/연합뉴스
두 번째로 많은 표(21표)를 얻은 사람은 이시바 시게루 전 지방창생상이다. 2015년 파벌 ‘이시바파’ 결성했으며 올여름에는 “내각에 잔류하라”는 아베 총리의 제안을 뿌리치고, 독자 노선을 선택했다. 이시바는 “영원히 이어지는 정권은 없다”는 말로 차기 총리 도전 의사를 강하게 밝히는가 하면,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지지통신’ 기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뒤에 패권을 잡은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이처럼 아베 총리 후임은 노선 차이가 분명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아베 총리가 임기를 연장하고 나면 당내뿐만 아니라 일본인 사이에서도 아베 노선에 대한 권태로움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그는 독자 노선을 걷는 이시바 대망론을 예측했다. 반면에 “자민당 내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이시바의 아킬레스건으로 꼽는 기자도 많았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AP/연합뉴스
한편, 일본 정치권에서는 “아베 총리가 내년 1월 중의원 해산 카드를 꺼내들 것”이라는 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중의원 해산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부인했지만, 일본 언론들은 “당내 구심력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아베 총리가 적절한 시기에 국회를 해산하고 새로운 판을 짤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여기엔 중의원 해산 후 아베 총리가 선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이와 관련, 재무관료 출신인 다카하시 요이치 가에쓰대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현재로서는 아베 총리에 필적할 만한 경쟁자가 눈에 띄지 않아 장기집권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역대 가장 강한 총리라서가 아니다. 야당이 역대 최약체이기 때문이다. 견고한 아베 정권은 과연 언제까지 순항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유권자의 판단이 결정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