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월드컵멤버가 역대 최강입니다”
▲ 이주연 프리랜서 | ||
이청용은 “원래 감독님이 장난을 잘 치신다”라고 설명했지만 이청용에 대한 오언 코일 감독의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지난해 8월, 한국인 7호 프리미어리거란 타이틀을 안고 영국 땅에 첫 발을 내딛은 이청용. 불과 8개월 만에 팀의 주전 자리는 물론 리버풀 이적설이 제기되는 등 ‘블루 드래곤’의 가치를 마음껏 펼치고 있는 그를 <일요신문> 창간 18주년 특별 인터뷰에 초대했다. 지난 4월 9일(한국시간) 영국 볼턴 원더러스 훈련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청용은 최근 영국 언론을 뜨겁게 달군 자신의 이적설에 대해 처음으로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청용은 원래 인터뷰를 즐기는 선수였다. 멀리 한국에서 영국까지 찾아온 기자들한테는 허물없이 자신의 속내도 비치고 같이 식사도 하는 등 친근하게 행동했다. 현지 통신원들한테도 이청용은 ‘나이스 가이’로 통했다. 그러다 인터뷰 요청이 많아지고 사진촬영할 때나 인터뷰 중간에 다양한 요구 조건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인터뷰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에이전트가 아닌 구단에서 이청용의 모든 인터뷰를 관리한다. 시간도 한정돼 있고 구단관계자가 인터뷰 환경을 통제한다. 프리미어리그 데뷔 첫 해 치른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처음엔 인터뷰를 즐기는 편이었어요. 재미도 있었고, 외롭고 적적할 때 인터뷰를 하다 보면 기분도 좋아지고요. 하지만 그 수요가 많아지고, 선수가 할 수 없는 요구들을 해오니까 힘들더라고요. 굉장히 기분 상한 일도 있었고 해서 인터뷰를 잘 안 하려고 했었죠.”
이청용은 월드컵을 앞둔 상태라 인터뷰 요청이 더 많아진 것 같다면서 축구와 자신에 대한 관심은 월드컵 이후에도 계속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첫 질문은 조금 말랑말랑한 내용으로 시작하려 했지만 솔직히 가장 궁금한 사항을 두고 돌아가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최근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리버풀 이적설에 대해 물었다. 영국의 한 언론에선 리버풀에서 이청용을 데려오기 위해 이적료 800만 파운드(137억 원)를 준비했다고 보도했던 부분도 끄집어냈다. 이청용은 그 얘길 듣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소식을 접하는 건 인터넷 기사로 보는 게 다예요. 직접적으로 이적 얘길 듣지 못했으니까요. 팀 이적을 해도 시즌이 끝나야 결정할 문제가 아닐까요? 지금은 볼턴 선수이고, 다음 시즌에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볼턴 유니폼을 입고 뛰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아요. 리버풀은 굉장히 유명한 팀이고 좋은 팀이라 소문만 들어도 은근히 흥분되는 걸요. 팀에서 별로 걱정 안 해요. 제가 동요하지 않으니까 그럴 수도 있고요. 한 1년 정도는 더 볼턴에서 뛴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물었다. 이청용이 정말 뛰고 싶어하는 팀이 어느 팀인지를. 그가 꿈꾸는 무대는 프리미어리그를 찍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이었다.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을 갔다가 우연히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관전하게 됐어요. 정말 경기를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선 굵은 축구를 추구한다면 스페인은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축구 스타일이었어요. 제가 그런 곳에서 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정말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 ||
요즘 이청용을 둘러싼 새로운 화두는 ‘체력’이다. 지난해 3월 개막한 K-리그에서 전반기를 소화한 뒤 곧장 프리미어리그를 뛰게 되었고 그 이후 단 한 경기도 빠지지 않고 출전하는 등 13개월 넘게 쉼 없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청용은 조금씩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체력에 대한 걱정 없이 뛰었어요. 지친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고요. 그런데 자꾸 주위에서 체력 운운하니까 저도 모르게 경기하면서 지치는 것 같고, 후반전 들어가면 이상하게 피로가 많이 쌓이는 기분이 들어요. 1년 이상을 휴식 없이 뛰다 보니까 아무래도 힘들긴 힘들겠죠. 그래도 요즘 열흘간 경기가 없어서 충분히 휴식도 취했어요. 남은 5경기가 우리 팀이 강등권으로 떨어지느냐 살아남느냐를 결정짓기 때문에 몸을 사릴 수가 없어요.”
엄청난 체력과 에너지 소비로 인해 다음 있을 남아공월드컵이 걱정된다고 하자, 이청용은 “그건 핑계밖에 안 된다. 그렇지 않으려고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하고, 이 부분은 허정무 감독님이 잘 컨트롤해주실 것으로 믿느다”고 대답했다.
이청용은 비록 이제 한 시즌을 보낸 팀이지만 볼턴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팀이 강등권을 오락가락하는 운명에 놓인 부분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감독님이 중간에 교체되면서 오언 코일 감독님이 원하는 걸 우리 선수들이 100%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아요. 볼턴은 쉽게 밑으로 내려갈 팀이 아니에요. 앞으로 더 좋아질 수 있는 팀이란 걸 확신합니다. 이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서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이 있는 매력적인 팀이라면 분명 다음 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게 될 것입니다.”
데뷔 첫 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엄청난 평가를 받고 있는 이청용. 조금은 부담이 될 듯싶다. 하지만 이청용은 그런 평가조차 즐기고 있었다. 자신이 매 경기마다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 게 부담이 아닌 고마움, 감사함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때론 부진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고 그로 인해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이 볼턴이고 볼턴 팬들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절 데려오신 개리 맥슨 감독님 대신에 오언 코일 감독님이 오셨을 때는 그냥 좀 서운했어요. 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죠. 아무래도 개리 맥슨 감독님은 절 계속해서 경기에 내보내셨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제 위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감독님께 정말 고마운 것은 그런 제 마음까지 꿰뚫어 보시고 절 불안하지 않도록 계속 게임에 내보내셨다는 부분이죠. 오히려 저한테는 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화제를 바꿔서 이청용에게 이런 질문을 해봤다. ‘내가 만약 기자가 돼서 박지성 선수를 만난다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질문이 무엇인가?’ 이청용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정말 재밌는 질문”이라며 이런 내용을 들려줬다.
▲ 인터뷰 중인 이청용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장난 치는 사람이 바로 볼턴의 감독 오언 코일이다. | ||
축구를 위해 중학교 중퇴를 결심한 이청용은 일찌감치 프로에 진출하면서 학업과는 멀어지게 됐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단다.
“제가 별로 공부와는 친하지 않아서 솔직히 공부 안 하고 축구만 하는 게 진짜 좋았어요.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했거든요. 게다가 돈도 벌게 됐잖아요. 첫 월급 받은 날이 기억나요. 2004년 1월에 통장에 140만 원이 입금됐거든요. 제가 열일곱 살 때였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 돈보다 더 많은 액수를 받지만 그때처럼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아마도 첫 월급이라서 그러겠죠?”
이청용은 안양LG에 첫 입단 후 2년 넘게 2군에서만 생활했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2군에서의 고달픔, 어려움, 1군 선수들에 대한 부러움 등은 갖지 않았다고 한다. 워낙 선수들과 마음이 잘 맞았고, 자신이 원하는 축구를 하는 등 지금까지 가장 신나고 재미있게 축구를 했던 기억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자연스레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이청용은 2010 남아공월드컵에 뽑히는 선수들이 역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라고 말했고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강조했다. 누가 최고의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단번에 ‘기성용’이란 이름이 튀어 나왔다. 같은 선수로서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선수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국대표팀이 16강 진출에 성공하기 위해선 큰 무대에서도 자기가 가진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도 필요하고요. 수비요? 전 걱정하지 않는데요. 코트디부아르의 드록바(첼시)가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잖아요. 분명히 월드컵에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겁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중2 축구부 숙소에서 선후배들과 함께 월드컵을 시청했고, 2006년에는 FC서울의 박주영이 월드컵에서 뛰는 걸 마냥 신기한 눈으로만 쳐다봤다는 이청용. 박주영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대표팀이 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지금의 남아공월드컵이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는 솔직한 고백도 이어졌다. 말이 나온 김에 1998년 월드컵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흘러나온다.
“글쎄요, 프랑스월드컵하면 네덜란드한테 5 대 0으로 진 것밖에 기억에 없는데요? 아! 하나 더 있다! 하석주 선배님이 퇴장당하신 거랑요.”
영국 볼턴 훈련장=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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