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서 길 잃었나… 관중들 혼란
▲ 선거 캠프의 브리핑룸 개소식에 모습을 나타낸 손학규 전 지사(왼쪽)와 대변인 우상호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지난 2006년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386세대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보도하면서도 고려대 함성득 교수의 말을 인용해 “386세대는 너무 일찍 권력을 얻었다”며 “그들은 국가를 이끌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당 안팎의 386 의원들을 향한 실망의 원인은 전문성의 부족과 과도한 이념우선주의를 앞세워 정치권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386세대보다 한 세대 위로 분류되는 유시민 의원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의) 많은 기대를 안고 (국회로) 들어왔지만 자기 브랜드를 가진 정치인이 없지 않나. 임종석 의원은 여전히 임수경과 얽혀서 기억되는 인물이다. 또 아무개 의원하면 전대협 몇 기 의장이라는 식이다. 전대협은 20년 전의 과거 아닌가. 자기의 정체성이 타인에게 과거와 얽혀서 인지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굉장한 불행이다. 도전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라며 이들을 비판했다.
이처럼 그동안의 정치활동이 실망감을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386 의원들 중 다수가 최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심한 정체성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시발은 상당수의 386 의원들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첫 주자는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지낸 우상호 의원이다. 우 의원은 지난 9일 손 전 지사 캠프의 대변인으로 공식 합류하면서 “오랜 고민 끝에 손 전 지사가 ‘혁신’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해 손 전 지사 대통령 만들기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 의원의 손 전 지사 캠프행 이후 소위 386 의원의 상징으로 분류되는 임종석, 송영길, 김영춘 의원 등이 손 전 지사를 지지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이들 386 의원들과 함께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선도했던 비정치권의 386 인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비정치권의 386세대인 박호열 씨(성대 80학번, 열린시민교육센터 사무국장) 외 145명은 지난 9일 우상호 의원의 손 전 지사 캠프행에 대해 ‘수치심을 버린 386에게 묻는다’는 제목의 ‘풀뿌리 386 선언’이란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이 성명에서 “지금 ‘과거 세력을 이겨내고 미래로 가야 한다’는 그 사람(손학규)은 과거 민자당에 입당할 때 분명 우리 전 세대의 민주세력을 과거로 치부했을 것이다”고 손 전 지사를 비난했다. 또한 손 전 지사를 지지하는 386 의원들에 대해 “독재세력의 후신, 극우세력의 온상, 재벌경제의 수호당인 한나라당 안에서 10여 년을 호의호식했던 한 인사가 밀려나오자마자 그에게 지지를 보낸다 한다. 그에게 우리 조국의 미래를 맡기자고 한다”며 “젊음도, 양심도, 정의도, 이름도 모두 내쳐버린 그들은 이제 ‘386’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최근 민주신당행을 거부한 김혁규 전 의원 측도 “‘광주정신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광주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해 버린 손학규 후보를 감싸는 우상호 의원의 역사인식은 문제”라며 “80년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다는 훈장을 달고 있는 우상호 의원은 지금부터라도 역사인식을 다시 하기 바라며 범여권대통합과 정권재창출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원웅 의원도 지난 13일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당직자들과의 간담회에서 “386 의원 가운데 싸가지 없는 사람들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망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또한 유시민 의원은 우상호 의원이 손 전 지사의 대변인으로 간 것에 대해 “정치인은 자기가 선택하고 국민에게 선택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분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며 “각자의 선택이 역사의 격랑을 거치면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좋은 평가를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유 의원 측 허동준 공보특보는 “유 의원의 이러한 발언이 386의 현재 움직임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고 단지 개인의 선택은 철저하게 개인의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라며 “다만 386이란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간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안팎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22일 공식 발족한 손 전 지사의 선대본부 임원에는 우상호 조정식 정봉주 조경태 의원 등 다수의 386 인사가 참여했다. 386 의원들의 맏형 격인 김부겸 의원은 선대위 부본부장을 맡았으며 조정식 의원이 기획조정실장, 정장선 의원이 특보단장을 맡았다. 송영길 의원은 그동안의 비난여론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지난 2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손학규 전 지사와 함께 열심히 뛰겠다”라며 손 전 지사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당초 손 전 지사 캠프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던 임종석 오영식 의원 등 대표적인 386 운동권 출신 의원 10여 명은 일단 행동을 유보했다. 범여권 내부뿐만이 아니라 밖으로도 손 전 지사 캠프 합류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다시 중립을 표방한 것이다.
임종석 의원 측 관계자는 임 의원이 갑작스럽게 중립을 선언한 이유에 대해 “(민주신당)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고 그 자리가 원내대표를 도와서 총괄지휘를 해야 하는 바쁜 자리이기 때문에 대선캠프를 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한 캠프의 소속 활동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결국 손 전 지사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임 의원이 맡은 자리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오영식 의원 측 관계자는 “오 의원은 손 전 지사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중립의사를 확실히 했다. 또한 민주신당 측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386 의원 중 다수가 비난 여론 때문에 손 전 지사 지지를 확실히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에 조사된 386 의원들의 지지성향을 살펴보면 현재 손 전 지사를 지지하는 386 의원들 중 정봉주 우상호 의원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지했던 인물들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당시에 김 전 의장을 지지하던 인물 중에는 현재 중립을 선언한 오영식 이기우 의원 등이 있다. 또한 손 전 지사를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다가 현재 중립을 선언한 김영춘 임종석 의원 등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손 전 지사 지지를 공식 발표한 송영길 의원 역시 친 정동영 계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현재 정동영 전 의장을 지지하는 386 의원에는 정청래 김현미 송갑석 의원 등이 있으며 이해찬 전 총리 측에는 서갑원 한병도 의원, 한명숙 전 총리 측에는 백원우 김형주 의원, 유시민 의원 측에는 김태년 의원 등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 정치사에 하나의 실험으로 평가되는 386 정치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정계는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