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하이킥’ 물타기한 공영방송 제대로 물먹였다
종편은 그동안 기득권을 공고히 한 지상파 3사와 날로 성장하는 케이블채널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치우친 이념과 자극적인 콘텐츠로 도마에 오르기 일쑤였다. 하지만 개국 5년차를 맞은 종편은 최순실 게이트를 다루는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재평가받고 있다.
특히 JTBC와 TV조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비리의 온상으로 손꼽힌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존재를 수면 위로 처음 끌어올린 곳이 TV조선이라면 자칫 유야무야 끝날 수 있었던 사건에 불을 댕긴 곳은 JTBC였다. 서로 다른 이념적 성향을 보인 두 종편이 최순실 게이트를 두고는 ‘밀고 끄는’ 협업을 한 셈이다.
특히 손석희 앵커가 이끄는 JTBC <뉴스룸>의 존재감이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최순실이 미리 받아봤다는 증거가 담긴 태블릿 PC를 공개하며 상황은 급반전됐다. 대통령이 이를 일부 시인하며 첫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고 최순실 게이트의 문이 활짝 열렸다.
JTBC <뉴스룸> 홈페이지
이후 <뉴스룸>의 시청률은 수직 상승했다. 태블릿 PC 속 비밀을 공개한 지난달 24일 4.28%(닐슨코리아 기준)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31일에는 8.784%로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괄목할 만한 점은 같은 시간대 방송되며 5~6% 시청률에 머물고 있는 MBC, SBS의 뉴스를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등을 통해 생중계되는 <뉴스룸>을 스마트폰으로 챙겨본 네티즌까지 감안하면 JTBC는 이번 사태에서 프레임을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뉴스 시청률이 오르고 신뢰감이 상승하면서 전체 JTBC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시청자의 눈도 달라졌다. 지난 3일 방송된 <썰전>은 9.287%로 이날 방송된 종편 전체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역대 JTBC 프로그램 중 역대 3위에 해당되는 시청률이었고, <썰전>에서 거론된 이야기들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평소 1~2%에 머물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최순실 게이트를 다룬 10월 30일, 11월 6일 방송이 각각 6.069%, 4.859%를 기록하며 JTBC 시사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방증했다.
이와 함께 3%대였던 <냉장고를 부탁해>가 4%로 올라서고, <비정상회담>도 소폭 상승하는 등 JTBC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한 종편 관계자는 “<뉴스룸>이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 먼저 채널을 틀고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같은 시간대 방송되는 MBC, SBS 뉴스 시청률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며 “단순한 시청률 상승보다 더 값진 것은 JTBC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믿음이 단단해졌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JTBC와 달리 그동안 친정부 성향을 보였던 TV조선도 이미지 쇄신에 성공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알력 싸움에서 잠시 보도 공세를 멈추기도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후에는 그동안 축적했던 취재파일을 공격적으로 공개하며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다.
MBN 역시 오후 6시부터 방송되는 <MBN 뉴스와이드>와 <MBN 뉴스8>이 4%대 시청률로 고공행진 중이다.
이런 시청률은 결국 민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매 주말 열리고 있는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때 JTBC 취재진이 등장하면 시민들은 박수를 보내며 격려한다. 자발적으로 길을 터주고 취재 여건을 보장하며 그들의 취재를 독려한다.
하지만 한 지상파 뉴스의 경우 시민들의 냉대를 받아야 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이 지상파의 소속 기자와 카메라맨이 광화문 광장에서 리포팅을 하려고 하자 주변을 둘러싼 시민들이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반감을 보였다. 카메라맨이 양해를 구하며 촬영을 진행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결국은 철수하는 모습으로 이 영상은 끝난다.
상황이 이렇자 각 지상파 방송사 내부적으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시국에서도 정부 비판 보도를 자제하고 단어 선택마저 신중히 하려는 경영진을 규탄하고, 보도국장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한다.
게다가 뉴스 프로그램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반면, 예능과 드라마 등에서는 발빠르게 최순실을 패러디하고 풍자하는 등 사회적 공기로서 방송사의 제 역할을 하려는 모습을 보여 보도국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결국 최순실 게이트는 향후 한국 방송가의 프레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방송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면 차츰 종편 시청률은 다시 하락하고 지상파 시청률은 상승하겠지만, 채널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바뀌었기 때문에 지상파와 종편 간 장벽은 충분히 넘나들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또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한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지상파 3사가 보여주는 방향으로 여론의 추이가 그려졌다. 하지만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면서 여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고, 대중이 스마트폰 등을 통해 정보를 빠르게 공유하고 자기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며 ‘주입식 정보’는 사장됐다”며 “향후 최순실 게이트는 정치적 사안을 넘어 한국 방송 시장의 변혁을 가져온 역사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