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도 개입? 정치권 ‘최순실 라인’ 존재하나…리스트 오른 여당 인사 좌불안석
최순실 씨 입김이 청와대를 넘어 국회에까지 닿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정윤회와 최순실. 사진제공= 한겨레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지난 6일 대구 수성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최순실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며 ‘최순실 라인’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최순실 때문에 장관이 되고 공천받은 사람은 조사해 직을 박탈해야 한다. 특히 새누리당 내에 썩은 것(최순실 세력)을 싹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도지사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도 “최순실 때문에 관직에 임명되거나 장관이 된 사람이 나는 분명히 있다고 본다. 조사해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때 ‘박근혜 키즈’라 불렸던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도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이 전 위원은 지난달 27일 ‘아시아포럼21’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지난 20대 총선 공천 문제와 최순실 씨의 연관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선거 때 ‘진실한 사람’이 논란이 됐는데,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당에 사람이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최근 새누리당에서 가장 이상했던 일은 공천과정이었다. 최 씨가 권력을 남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권력을 남용하는 방식이 청와대 비서진에 국한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20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옥새 투쟁, 존영 논란, 공천 학살 등 다이내믹한 공천 파동을 겪었고, 이는 곧 총선 참패로 이어졌다. 비박과 친박은 총선 참패의 원인을 두고 옥신각신하며 탓을 돌렸고, 당 내부에서는 컷오프된 예비후보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았다.
지난 3월 28일 열린 새누리당 공천자대회.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총선 후보 공천과정에서 컷오프된 한 친박계 예비후보 측은 “지난 총선 때 경선 발표 직전 박 대통령이 지역을 방문해 여러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고 갔다. 때문에 당시 우위에 있던 후보들이 줄줄이 떨어졌다. 말로만 오픈프라이머리니 상향식 공천이니 했지, 사실상 미리 정해두고 결정하고 간 것이라는 내부 불만이 많았다”며 청와대 발 ‘내려찍기’ 공천을 비판했다.
지난 4·13 총선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당내 불만이 현재 최대 이슈인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맞물리면서, 청와대 발 내려찍기 공천에 최 씨 일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더불어 최 씨 일가 지인의 인터뷰와 총선 당시 컷오프된 예비후보들, ‘멀박’ ‘쫓박’으로 분류된 인사들의 연이은 폭로도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최 씨 일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은 한 언론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수면위로 떠올랐다. 모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순실 최순득 자매와 20여 년간 알고 지낸 지인은 “최순실의 언니 최순득 씨가 모임에서 술이 들어가면 주변인들에게 ‘국회의원들이 한자리 차지하려고 돈 보따리 들고 찾아온다’고 자랑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정가에서도 ‘최순실 라인’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4·13총선에서 공천을 신청했다 컷오프돼 포항시 북구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박승호 전 포항시장은 최근 김정재 의원에 대해 “김 의원이 최 씨 일가와 아는 사이일 가능성이 있다. 총선 당시에는 김 의원 뒤에 정윤회 씨가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박 전 시장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총선 당시 김 의원이 2006년 지방선거 지원유세 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피습당했을 때 병원에서 간호한 인연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김 의원 측은 총선 당시 이를 부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를 홍보하며 ‘친박’임을 알렸다. 하지만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커터칼 피습을 당하고 최순득 씨 집에서 일주일가량 머물렀고, 최순실 최순득 자매가 간호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김 의원은 최근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불거지고 나서야 당시 언론보도가 오보임을 주장한다”고 말했다.
박 전 시장 측은 이어 “김 의원은 공천을 며칠 남겨두고 ‘중앙의 언질을 받았다’며 포항 북으로 지역구를 옮겼다. 남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들여 선거운동을 하다 한순간에 지역구를 버리고 포항 북으로 갈아타는 것은 정치인들에게 큰 모험이다. 확신 없이는 결코 그렇게 쉽게 옮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김 의원이 말했던 ‘중앙의 언질’의 배후가 매우 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며, 최순실 자매나 정윤회 등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이에 김정재 의원 측은 “박승호 전 시장의 개인적 주장이다. 사실이 아니므로 대응할 가치조차 못 느꼈다”면서 “박 대통령 간호 보도 내용도 오보임을 밝혔다. 또한 ‘중앙의 언질’ 관련 부분은 지역지 기자와의 전화통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문맥을 따져보면 그런 내용이 아니었고, 당시 명확히 부정하지 않아 허위 사실이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재 의원도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모든 의혹을 끌어들여 음해하려는 것 같다. 사실 직접 해명을 한다해도 그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피해다. 박 전 시장 측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거듭 밝혔다.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 의원은 친박이었던 그가 2012년을 기점으로 ‘멀박’이 된 이유에 대해 “부당한 일을 시키는 대로 안하고 바른소리 하는 사람, 저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그분’이 많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며 “대변인으로서 지근거리에서 도와보니까 간혹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생겼다. 캠프의 공식 라인에서 결정한 행보를 갑자기 번복해 다른 비선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 비선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며 사심 없던 분들이 떠나는 상황이 되자 수상한 사람들에게 줄을 대는 그런 분들이 요직을 차지한다는 이상한 소문들이 더 심해졌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가시고 나서는 그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며 “그 시점을 계기로 당에도 아예 완장 찬 사람들로 채워졌다. 비선에 대해 점점 사람들이 확신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비선의 농단을 말리던 이들은 ‘멀박’ ‘쫓박’이 된 가운데, 비선의 편에 선 사람들은 완장을 차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은 과거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3개월 뒤 여성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 같은 의혹에 김 전 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 정 씨를 옹호한 것은 야당의 정치 공세인 줄 알았기 때문이며, 여성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그 일과는 관계없다”고 해명했으나, ‘최순실 라인’ 의혹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됐다.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
2년 전 정유라 씨를 옹호했던 강은희 현 여성가족부 장관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과거 강 장관은 “과장과 허위가 많으니, 정유라 씨의 명예를 회복해줘야 한다”며 주장한 바 있다. 강 장관은 ‘정유라 옹호 발언’ 논란이 확산되자 4일 공개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강 장관은 이날 국회 여성가족위 회의에서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발언에 대해서는 “조금 더 면밀히 정황을 살펴보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라며 “일방적으로 최순실 씨와 관련된 것을 비호할 생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1979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직접 올린 문건을 통해 최순실 씨의 아버지 최태민 씨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공천에 개입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 조사 보고서’에는 새마음봉사단 사무총장을 지낸 신 아무개 씨가 최 씨를 통해 공천을 받았으며, 최 씨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바쳤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