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는 깨진 약속” 우리 떨고 있니
트럼프는 대선후보로 출마한 이래 지속적으로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해왔다. 트럼프는 쇠락한 동부 제조업 지대인 러스트 벨트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FTA에 대해 공세를 계속해왔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예상 밖 약진을 한 것도 러스트 벨트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누른 덕이다. 트럼프는 특히 FTA 중에서 한미 FTA를 꼭 짚어서 비판의 날을 세워왔다는 점에서 한국 경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당선되면서 한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뉴욕에서 투표하는 트럼프 후보 부부. AP/연합뉴스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한미 FTA는 깨진 약속”이라며 “한미 FTA 때문에 무역수지 적자는 2배 이상 늘었고, 7만 개 늘어날 것이라던 일자리는 10만 개가 줄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문제는 이런 트럼프의 발언을 한국 정부가 반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미 경상수지 흑자는 2013년 362억 달러, 2014년 409억 달러, 지난해 338억 달러나 된다.
현대차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76만 2000대를 판매했다. 전체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18%에 이른다. 승용차 무역 흑자도 한미 FTA 체결 직전인 2011년 86억 달러에서 지난해 163억 달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삼성전자의 북미 지역 매출액은 지난해 42조 5042억 원, LG전자의 북미 지역 매출액은 16조 3963억 원에 달한다.
미국은 한국이 ‘환율 조작’을 통해 무역에서 이처럼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10월 15일 발간한 환율 보고서에서 한국을 ‘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통상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외국 경제 연구기관들도 트럼프 당선이 한국 수출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산하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국과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수출 국가들이 막대한 타격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트럼프가 덤핑관세 등 강한 무역제재 조치를 취할 경우 트럼프 재임 기간에 한국 제품에 대한 관세는 지금보다 평균 20% 정도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중국산 제품에 부과되는 관세 상승분은 45%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 중국에 중간재를 많이 수출하기 때문에 중국산 제품의 대미 수출이 막힐 경우 이중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트럼프 당선 이후 대 북한 정책이 예측 불가능해지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 점도 경제에는 악재다.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김정은과 만나 대화하겠다는 입장도 내놓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해왔다.
트럼프는 올 6월 미 애틀랜타 선거 유세에서 “그(김정은)가 미국에 오겠다면 만나겠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핵 협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가 북한에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며 한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다.
트럼프가 한국을 대상으로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고 있는 것 역시 경제에는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방위분담금 상향 조정을 요구할 것이 확실하다. 이로 인해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 유출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9일 트럼프 당선 확률이 올라가자 한국 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트럼프 약진 소식에 장중 50포인트 이상 급락하면서 2000선이 무너져 1950선까지 단숨에 내려앉았다. 환율은 급등세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중 20원 가까이 오르면서 달러 당 1500원선을 넘어섰다.
이승현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