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멀지만…‘생명’ 바꾸면 지름길 보인다?
지난 11월 11일, 삼성생명은 이사회를 열고 삼성증권이 보유한 자사주 835만 9040주를 추가 매입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미 삼성증권 지분 19.16%를 갖고 있던 삼성생명은 이번 주식 매입으로 지분율이 30.1%로 늘었다.
지분율 30%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상장 금융회사의 경우 지분 30% 이상 확보해야 계열사로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자산운용의 지분 98%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1월에는 삼성전자가 갖고 있던 삼성카드 지분을 모두 사들여 지분율을 71.86%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 이번 삼성증권 주식 매입으로 지주사 전환시 3개의 금융계열사를 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
삼성증권과 카드 입장에서도 그동안 나돌았던 매각설을 불식시키고 안정적인 경영구조를 이어갈 수 있는 수혜를 입은 셈이다. 남은 과제는 손해보헙업계 1위 삼성화재를 어떻게 자회사로 편입시킬 것인가다.
삼성생명은 현재 삼성화재 지분 14.98%를 보유 중이다. 삼성화재를 금융지주 산하로 편입하려면 15.02% 이상의 주식을 더 사야 하는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다. 금융권에서는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의 자사주를 사들이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화재는 때마침 15.93%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매입할 경우 30.95%로 지주회사 요건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 매입에 걸림돌이 생기면서 금융지주사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삼성 서초타운. 박은숙 기자
하지만 28만~29만 원대를 넘나드는 주가가 부담이다. 현 시가대로 15% 이상의 주식을 사들이려면 2조 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3분기 말 기준 삼성생명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386억 원가량이다. 당장 지분 매입에 나서려면 다른 방법으로 자금을 동원해야 가능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돈이 있어도 여전히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는 점이다. 현행 보험업법상 보험사의 계열사 투자한도는 총자산의 3% 이내, 자기자본의 60% 이내로 묶여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삼성생명의 계열사 투자한도는 54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이번 삼성증권 자사주 매입에 투입된 3000억 원가량을 제외하면 투자한도는 2400억 원가량으로 더 줄어든다. 투자한도가 삼성화재 자사주 15.93% 매입에 필요한 2조 원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금융권에서는 일단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팔아 투자한도 여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생명은 9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7.21%, 삼성중공업 3.38%, 에스원 5.34%, 호텔신라 7.30%, 삼성경제연구소 14.80% 등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시가를 기준으로하면 삼성전자 주식 2%만 팔아도 4조 원에 달하기 때문에 투자한도 확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문제는 이 주식을 누가 사갈 것인가다. 상장사 주식의 경우 시장에 내다팔면 되지만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특히 최대 주력사인 삼성전자 주식의 경우 이미 엘리엇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한 만큼 제3자가 지분을 가져갈 수 있도록 시장에 내다팔기는 어려울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대안으로는 사업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에 삼성전자 지분을 넘기는 방법이 있는데, 삼성물산의 자금 여력이 문제다. 수조 원에 달하는 지분 매입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화재 지분 매입이 단순히 삼성물산의 고민이 아니라 그룹 차원의 난제인 이유다.
이 문제는 삼성생명이 금융지주사로 전환하려면 비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낮춰야 하는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른 현행법상 금융지주사는 비금융계열사들의 지분을 5% 아래로 떨어뜨려야 하는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75%를 갖고 있다.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5% 미만으로 낮추려면 최소한 2.25% 이상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는 시가 기준으로 약 5조 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액수다. 결국 삼성물산이 이 지분을 사들일 경우 5조 원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돌파구로 거론되는 중간금융지주법은 당분간 국회 통과 가능성이 낮다는 걸림돌에 봉착해 있다. 현재의 시국상황과 국민정서 등을 감안하면 ‘삼성을 위한 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중간금융지주법이 허용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권의 일반적인 정서다.
이는 삼성 측도 일정 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삼성생명 고위 관계자는 최근 열린 기업설명회(IR)에서 “만약 삼성생명이 삼성화재 지분을 산다고 가정한다면, 삼성화재 시가총액이 크기 때문에 보험업법 규정상 당장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삼성생명의 금융지주 전환이 단기간에 실행되기는 어렵다고 시인한 셈이다.
이와 관련, 증권가에서 나온 한 리포트에는 의미심장한 단어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발행한 <삼성생명, 금융지주사 전환 아직 일러>라는 리포트를 통해 “삼성생명이 앞으로 삼성화재 지분을 추가 취득하기 위해서는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투자 여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 뒤 “계열사에 대한 투자 여력은 약 3000억 원 남아 있어, 기존 투자를 줄이지 않고서는 ‘보험사’ 형태를 유지하면서 삼성화재에 대한 유의미한 지분 확보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보험사 형태를 유지하면서’라는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삼성생명이 더 이상 보험사가 아닐 경우에는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이는 여러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부분으로, 이미 알려진 지주사 전환은 물론 투자금융사 등 다른 형태의 금융회사로 변신할 가능성을 열어놓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보험사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당장은 짐작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글로벌 금융투자회사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한다면 예상 밖의 답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